2017년, ETRI 연구진은 자율주행차의 핵심 기술인 고성능 프로세서를 개발했다. 이는 저전력으로도 자율주행차를 운행할 수 있는 기가헤르츠(GHz)급 자동차 전용 프로세서(CPU)로, ‘알데바란(Aldebaran)’이라고 명명했다. 알데바란이란 가장 밝게 보이는 별인 1등성 중 하나다. 광활한 우주의 선두에서 비추는 알데바란처럼 전 세계에 우리나라의 프로세서가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았으면 하는 연구진의 소망이 녹아든 이름이다.
연구진이 개발에 성공한 프로세서는 반도체 핵심 기술 중 하나다. 2017년 개발 당시 1년 후에는 반드시 업그레이드해서 세계 선두를 달리겠노라고 인터뷰한 바 있는데 그 약속을 지킨 것이다. 연구진은 지난 2016년에 개발한 자율주행차용 고성능 프로세서 성능을 2017년에 크게 향상시켰다. 이로써 자율주행차의 모든 센서로부터 수집된 데이터를 하나의 칩으로 통합 처리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연구진은 세계 최소 저전력 수준인 1와트 내외로 자율주행차가 필요로 하는 영상인식은 물론 제어 기능을 통합해 실행하는 프로세서 칩을 개발했다. 기가헤르츠급 능력을 갖춰 초당 90억 회의 연산 수행이 가능하다. 전력이 높을수록 고장이 많고 배터리도 제한적인데, 이런 문제를 해결해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 정한 기능 안정성 요구 사항까지 전 세계 어떤 국가보다도 한발 앞서 만족시켰다. 자율주행차의 성능을 결정하는 요소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핵심 프로세서는 그동안 우리나라 고유의 기술이 없었다. 이번 연구 성과는 해외 기술에 의존해왔던 프로세서 기술을 국산화했다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ETRI 연구진이 지난번 연구개발에 이어 성능을 개선한 분야로는 프로세서 코어를 2017년에 4개에서 9개로 늘린 것이다. 이는 18개 명령어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다. 2016년에 기술 개발을 약속한 사항이다. 이처럼 두뇌가 배 이상 커진 만큼 데이터 처리 속도도 더욱 빨라졌다. 더 깨끗하고 선명하며 용량이 큰 영상 구현도 가능해졌다. 다양한 영상 장비에 대한 소화가 가능해졌고 자율주행차의 필수 영역인 ‘안전’ 부분의 신뢰도가 특히 높아졌다. 성능도 세계적 수준으로 뛰어나지만 우리나라 기술로 일군 프로세서 설계 자산(IP)이어서 의미가 더 크다. 사람의 생명과 관련되는 자율주행차의 경우, 무엇보다 각종 센서로부터 수집된 데이터를 정확하고 안전하게 처리해야만 한다. 손톱 절반만 한 크기에 1억 6,000만 개의 트랜지스터가 담긴 프로세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작은 연구 성과가 하나둘씩 모여 마치 레고를 맞추듯 세심한 정성이 필요하다.
연구진이 성능을 개선하면서 인식 기능도 크게 좋아졌다. 현재 실시간 초고화질(UHD) 영상 처리는 물론 차량, 보행자, 차선, 움직임 인식이 가능하다. 아울러 레이더 및 GPS 신호처리 인식 실험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 같은 인식 기능은 라이다(Lidar), 초음파에도 응용된다. 특히 연구진은 프로세서 칩을 하나로 만들어 원칩(One-chip)화했다. 이 칩에는 카메라 영상 처리 기능을 갖추고 운전자 지원 시스템(ADAS)을 보강해 움직임 인식 처리까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연구진이 만든 칩은 블랙박스 기능도 갖추고 있다. 차량 보안이나 사고 증거의 확보를 위해 자율주행차 영상을 저장 및 플레이할 수 있게 만들었다. UHD급 해상도 지원을 위해 국제표준을 만족하는 고효율 비디오 코딩(HEVC) 기능도 포함되었다. 아울러 국제표준화기구의 기능 안전 국제표준(ISO 26262)을 만족하는 프로세서 코어를 2017년 2개에서 4개로 두 배 늘렸다. 이로써 서로 다른 기능 안전을 수행하는 SW를 운영하기 쉬워졌다.
이런 시스템을 통해 자동차 충돌 인지 등과 같은 위험 인식을 더 손쉽게 만들어 줄 것이다. 프로세서가 내장된 칩은 국제표준 기준에서 정한 오류 방지율도 99% 이상 충족했다. 예를 들어 차량 급발진 사고로 전자 장치가 고장 났을 때 알데바란 프로세서가 이를 확인해 99% 해결한다. 반도체 칩이 차량의 고장 여부를 스스로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다. 이는 자동차를 위한 혁신적 반도체 기술이다. 앞으로 연구진은 새롭게 열리고 있는 자율주행차와 같은 고가의 첨단 차량에 요구되는 서비스에 꼭 필요한 반도체 개발을 목표로 할 계획이다. 최근에 연구진이 개발한 알데바란 칩의 성능은 세계적 수준이다. 앞에서 강조했듯이 우리나라 연구진이 원칩화한 것에 반해 글로벌 경쟁 업체가 내놓은 것은 분리형 칩이다. 따라서 내장된 모듈 가격만 해도 수 십만 원대다. 이 가격을 수만 원대로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여 우리나라가 가격 경쟁력에서도 앞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향후 ETRI 연구진은 신경망 기술을 활용하여 영상인식 엔진에 초고성능의 인공지능 기술을 탑재해 칩화한다는 계획이다. 연구진은 이 프로세서가 인공지능 시대의 정보 기기에 응용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로 개발하기 위해 현재 영상인식 지능을 실시간, 저전력으로 실현하는 설계를 완료한 상태다. 또한, 올해에는 현재보다 영상인식 엔진 성능이 100배 이상 향상된 인공지능 프로세서를 제작할 계획이라고 연구진은 포부를 밝혔다.
이와 같은 연구 성과 뒤에는 ETRI의 프로세서연구그룹이 있다. 연구진은 “향후 사람처럼 움직이는 모든 물체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또한 “기계와 사람 간의 대화에서 목적지를 정하고 길을 스스로 찾아가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칩 개발이 가능할 전망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인공지능 반도체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국내 지능형 반도체 산업계가 정체 상태에 있는 시점에서 이 프로세서 기술은 미래 시장을 주도할 신기술 개발로 평가되고 있다. 연구진은 이제 연구 목표를 고부가가치화하기 위해 마지막 고개를 넘어야 한다. 바로 칩에 인공지능(AI)을 탑재하는 일이다. 자율주행차의 핵심이 안전이다 보니 정확도,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인공지능 기술의 적용이 필수적이다. 알데바란은 ‘높은 성능의 안전한 프로세서 반도체’이기에 인공지능으로 더욱 안전한 전자 시스템을 구현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가트너에 따르면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매출 규모는 약 3,436억 달러다. 즉 우리나라 돈으로 390조 원에 달하는데 이는 우리나라 1년 예산과 맞먹는 규모다. 우리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라고는 하지만 메모리는 786억 달러 내외 규모로 반도체 전체의 23%에 해당한다.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노른자인 셈이다. 이 시장이 바로 ‘프로세서 반도체’ 분야에 해당한다. 그런데 지금도 우리는 해외에 많은 비용을 주고 반도체 설계를 사다 쓰는 실정이다.
이에 ETRI는 새로운 고부가가치 시장을 개척하고자 중소기업과 손잡고 차근차근 미개척 반도체 시장을 열어가고 있다. 알데바란 프로세서 발표 이후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해외 기업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기술 독립의 문이 조금씩 열리고 있다. 반도체 중심의 수출 경제를 이루고 있는 국가적인 입장에서는 더더욱 환영할 일이다. 기술 혁신은 기존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보다 먼저 발을 내디뎌 세계 시장으로 나설 용기가 있어야 한다. 경험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먼저 바다에 뛰어드는 ‘퍼스트 펭귄’의 리더십과 ‘게임 체인저’ 의식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 스스로 더 이상 남을 좇는 것이 아닌 꾸준한 기술 혁신과 신뢰, 그리고 기술 리더십으로 무장하는 것만이 세계 일류로 나아갈 길이라 할 것이다.
본 글은 ETRI가 2018년 발행한 Easy IT시리즈 “세상을 바꿀 테크놀로지,『디지털이 꿈꾸는 미래』”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저자 ETRI 성과홍보실·정길호 출판사 콘텐츠 하다
ETRI가 펴낸 『디지털이 꿈꾸는 미래』는 우리에게 제4차 산업혁명의 의미를 알려주고, 다양한 ICT 트렌드를 소개하여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흥미롭게 조망해 보는 책입니다. 본 도서는 예측 불가능하고 더 빨라진 기술 세상에서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적응하고 미래의 위험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데 좋은 지침이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