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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곳곳에 스민 비밀
- 허균·허난설헌 생가터

Vol.248 February

하늘 높이 치솟은 아파트와 빌딩이 익숙해진 요즘이다.
그러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것은 6.25 전쟁 이후부터로, 역사가 짧은 편이다.
서양건축이 들어오기 이전에는 모든 집이 한옥이었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의 기후에 안성맞춤이었던 한옥.
골조부터 뼈대까지 이유 없이 만들어진 것이 없었다.
허균·허난설헌의 생가를 둘러보며, 한옥이 지닌 비밀들을 찾아본다.

사대부의 집

img3사대부 한옥의 형태를 띠는 허균·허난설헌 생가터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이범수

허균·허난설헌 생가터는 강릉 초당동에 자리 잡고 있다. ‘강릉 초당동 고택’, ‘강릉 이광노 가옥’으로도 불리는 생가터는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 안에 복원되어 있다. 이 생가터는 1912년 초계 정시의 후손, 정호경이 가옥을 늘리고 고쳐 현재까지 보존된 곳으로,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59호로 지정됐다. 생가터는 무성한 솔숲을 지나면 볼 수 있는데, 사대부 한옥의 형태를 띤다.

당시 사대부를 비롯한 상류층의 한옥 구조는 남성과 여성의 생활공간이 철저하게 분리됐다. 솟을대문이라 불리는 큰 문으로 들어서면 바로 사랑채가 보이고 이곳은 남성의 생활공간으로 활용됐다. 손님을 맞이하고, 학문을 익히는 공간이었다. 사랑채 뒤 담장 너머에는 안채가 있었는데, 이는 외부인들의 출입이 어려운 여성들의 생활공간이었다.

허균·허난설헌 생가터도 이런 구조와 비슷하다. 솟을대문을 통해 들어가면 2개의 대문과 낮은 담장이 안채와 사랑채를 한 번 더 구분하고 있다. 위에서 보면 사랑채와 안채, 곳간채가 ㅁ자로 배치됐지만 남성과 여성이 내외할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생가터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사랑채 마당은 향나무와 매화나무로 가꾸어져 있고, 생가터 전체를 솔숲이 둘러싸고 있어 신비로운 느낌마저 감도는 곳이다.

지혜의 집결체, 한옥

img3허균·허난설헌 생가터의 안채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이범수

한옥은 구조뿐 아니라 나무와 황토 같은 자재, 처마, 대청마루, 마당, 구들 등 고유의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 요소들 속에는 모두 과학적 비밀들이 스며있다. 벽에 주로 사용되는 황토는 천연 단열재의 역할과 습도 조절의 역할을 한다. 뜨거워지고 차가워지는 속도가 느리고 다공질 구조를 지닌 흙의 성질을 활용한 것이다. 더불어 창호지에 쓰이는 닥나무로 만든 한지의 역할도 이와 비슷하다. 미세하고도 무수한 구멍들이 방 안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데 활용된다.

한옥의 시그니처라고 해도 무방한 처마도 그 역할이 분명하다. 건물의 바깥쪽으로 내민 지붕을 뜻하는 처마는 계절마다 달라지는 태양의 높이와 관련이 깊다. 해가 높은 여름철에는 햇빛이 마루를 뜨겁게 달구지 못하게 차단해 주는 역할을 하며, 해가 완만한 겨울철에는 해가 건물 깊숙이 들어와 실내를 따뜻하게 해준다. 또한 방과 방 사이에 설치된 대청마루는 바람의 통로로, 여름철을 시원하게 날 수 있는 공간이다. 지면과 떨어뜨려 설치된 대청마루는 지열이 올라오는 것을 막고, 좁은 틈을 낸 마룻바닥의 널빤지 사이사이로 바닥의 찬 공기가 올라올 수 있도록 설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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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면 구들을 활용한 난방 방식을 통해 집을 따뜻하게 유지했다. 구들은 음식을 하는 아궁이에 불을 때는 열을 활용했기 때문에 효율적인 난방 기술이었다. 아궁이에서 열이 통하는 길을 좁게 만들어 열기가 빠르고 세게 지나갈 수 있도록 했다. 열이 전달된 공간에 잘 달궈진 구들은 그 열기를 오래 간직해 집을 오래도록 훈훈하게 만들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마당에는 흰 모래를 깔아 햇빛을 반사시키도록 했다. 이 천연 간접조명을 통해 한옥의 내부까지 환하게 밝히는 데 사용한 것이다.

선조들은 사계절이 뚜렷해 온도의 기복이 큰 환경 속에서도 쾌적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방편들을 한옥에 심어놓았다. 그리고 이런 원리들 모두 자연 친화적인 방식이라는 것이 눈여겨볼 만하다. 이처럼 다양한 선조들의 지혜를 떠올리면서 허균·허난설헌의 생가터를 거닐어보길 권한다. 한옥 곳곳에 숨겨진 보물을 찾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생가터가 있는 기념공원에는 허균과 허난설헌의 기념관이 조성되어 있어 건물이 주는 감동뿐 아니라, 두 남매가 쓴 문학작품을 통한 감동도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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