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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감지 기술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학창시절, 수업 중 갑자기 복도를 가득 메우는 경보음이 들려 수업이 중단됐던 경험을 한 번씩은 해봤을 것이다.
귓가를 찌르는 따르릉 소리가 그칠 줄 모르는 듯 학교 전체에 울려 퍼지다가 이내 사그라들면,
화재는 나지 않았고, 오경보이니 수업에 집중하라는 교내 방송이 나왔다.
이런 경우는 아파트에서도 잊을만하면 생겼다.
놀라서 뛰쳐나온 주민 몇몇이 항의하는 목소리가 아파트 단지에 울리기도 했다.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화재를 예방조치 하는 것에는 찬성한다.
하지만 양치기 소년처럼 변해가는 화재 감지기는 신뢰를 잃고 있다.
화재 감지기, 이 기술은 어떻게 보완되어 가고 있는 것일까?

화재 감지 기술의 변천사

건물에 설치돼 울리는 화재 감지기를 사용하기 이전, 인류의 최초 화재 감지기는 무엇이었을까? 17세기 초, 미국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당시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야경꾼들이 인류 최초의 정식 화재 감지기의 역할을 했다. 그들은 마을을 순찰하면서 불이 났는지 확인했다. 야경꾼들은 나무로 만든 래틀벨(Rattle Bell)을 가지고 다녔다. 래틀벨 소리는 독특했기 때문에 위급한 상황이나 불이 났을 때 경보음 역할을 했다. 이후 도시의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래틀벨보다 더 크고 효과적인 위험 정보 수단이 필요해지면서 화재 감지 기술은 점차 발전한다.

19세기로 들어서면서 전기가 등장하고, 모스 전신 시스템을 활용하게 되면서 도시 화재 경보 시스템이 등장한다. 1851년 윌리엄 채닝은 전신기 기반 도시 화재 경보 시스템을 제안해 관련 법안을 통과시킨다. 이 시스템은 도시 곳곳에 신호를 보낼 수 있도록 나무 상자들을 설치하고, 일련번호를 부여했다. 불이 났을 때 이 나무 상자를 이용해 신호를 보내면 신호를 받는 곳은 불이 난 위치를 즉각 알 수 있어 매우 효과적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화재 감지 기술은 사람의 의존도가 높았다. 사람이 불이 났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신호를 보내야 했다. 이러한 시스템은 점차 기계화, 자동화되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1873년 윌리엄 와킨은 용융점이 다른 두 개의 금속을 회로에 사용한 열감 지기를 만들었다. 금속이 녹는 것으로 화재를 감지하는 원리를 사용했다. 이후 1920년 하인리히 그레이나커는 챔버 안의 공기에 전압을 높여 이온화하는 기술을 개발했고, 1930년 월터 예거는 이 기술을 활용해 담배연기의 입자를 감지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게 된다. 1950년 두 기술을 활용해 이온화식 연기 감지기가 개발됐고, 트랜지스터화 된 회로로 인해 생산 비용을 낮춰 전 세계로 보급하게 된다. 이후 1972년, 리차드 리카디는 불이 났을 때 불꽃에서 자외선을 감지하는 불꽃 감지기를 제작하면서 점차 발전해 나간다.

화재 감지 기술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

화재 감지 기술은 화재를 빠르게 발견하고, 이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으나 예상치 못한 부분이 있었다. 바로 오경보에 대한 부분이다. 소방청 자료에 의하면 2021년부터 2022년 7월까지 화재 경보로 인한 출동은 모두 25만 8,220건에 달한다. 그러나 이중 오작동에 의한 경보는 96.6%를 차지했다. 오경보 출동으로 인해 연간 200억 원에 이르는 비용이 낭비되고 있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더불어 오경보가 반복되면 경보의 목적은 흐릿해진다. 오경보에 익숙해지면 경보를 무시하게 되기 때문이다. 양치기 소년 이야기 속 마을 주민들처럼, 실제로 사고가 일어났을 때 대처하지 못하고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화재 감지기의 오작동률을 높일 방법은 없는 것일까?

ETRI는 오경보 문제를 해결할 지능형 화재 감지 기술을 개발했다. 빛의 파장에 따라 달라지는 입자의 산란도를 측정해 화재로 인한 연기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AI 센서를 화재 감지기에 접목한 것이다. ETRI는 오경보를 일으키는 기존의 화재 감지기를 분석했다. 기존에 사용되던 화재 감지기는 연기가 유입됐을 때 감지기 내에 있는 광원과 부딪히며 생성되는 산란광의 양을 파악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산란광이라 판단되면 경보음이 울리는 원리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화재로 인한 연기 이외에도 먼지나 습기, 담배 연기, 음식을 하면 생기는 연기 등에도 반응하기 때문에 오작동하기가 쉽다.

ETRI는 이러한 다양한 연기, 즉 에어로졸 입자의 종류별 산란 특성을 측정해 DB를 구축했다. 이를 학습시킨 AI 센서가 화재 감지기에 사용되는 것이다. 이제 화재로 인한 연기인지, 아닌지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센서가 등장했다. 더 정확해진 화재 감지기로 인해 오경보가 울리지 않을 내일을 기대해 본다.

ETRI Webzine Vol.246 DECEMB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