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말에 개봉한 <판도라>는 상영기간 동안 관객 수 450만 명을 넘어서며 입소문을 타고 많은 사람의 발걸음을 극장으로 향하게 했다. 원자력 안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었던 터에 관련 영화가 개봉한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역대 최대 규모의 강진으로 인한 원자력발전소의 폭발을 다룬 재난 영화다. 방사능 유출에 대한 공포를 다루며 발전소 직원들이 온몸으로 2차 폭발을 막는다는 내용이다. 만약 2016년에 개봉한 영화 <판도라>처럼 원자력발전소가 붕괴되어 폭발의 위험이 생긴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원자로 내부의 상황을 알기 위해서는 누출 감지 센서가 작동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원자로가 폭발하는 상황이 닥치면 모든 전기가 꺼지고, 비상 전원마저 몇 시간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원자로 내부 상황을 알 방법이 없게 된다. 따라서 이런 블랙아웃에 대비한 ‘독립 전원’ 은 꼭 필요하다.
다른 사례로 부정맥 질환을 앓고 있는 A씨(60세)는 페이스메이커(심장박동기)를 심장에 달고 산다. A씨는 심장의 박동 상태를 심장박동기가 자동으로 감지하여 적절한 심박 수를 조절해준다. 하지만 심장 내 삽입형이어서 A씨는 걱정이다. 유일한 치료법이지만 10년마다 수술을 통해 박동기를 교체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배터리 수명이 5~8년에 불과해 환자들이 주기적으로 수술을 받아야 한다. 무한히 쓸 수 있는 배터리가 이런 질환을 겪고 있는 환자들에게는 꿈이다.
이러한 가운데 ETRI 연구진이 100년 가는 배터리 개발에 성공했다. 일명 ‘베타(β)전지’다. 이름이 말해주듯 방사성 동위원소가 붕괴하면 알파(α), 베타(β), 감마(γ)선이 나오는데 그중 하나다. 베타선은 다른 방사선에 비해 인체에 덜 유해하다. 또 안전하게 막는 차폐도 가능하다. 연구진이 개발에 성공한 전지는 순수한 베타선을 방출하는 방사성 동위원소로부터 반도체에 베타선을 흡수시켜 전류, 전압을 생성해주는 원리의 전지다. 태양 전지의 원리와 비슷하다. 베타선은 전자선과 똑같아서 쉽게 브라운관 TV를 생각하면 된다. 브라운관 TV에서 화면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전자선인데, 이것이 베타선과 똑같은 전자다. TV를 오래 보면 눈이 아프다. 이때 간단히 알루미늄 호일로 차폐는 쉽게 된다.
베타전지의 가장 큰 특징은 충전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이 점이 기존 스마트 폰에 들어가는 전지인 리튬이온 전지와 가장 큰 차이다. 스마트폰 전지의 경우 매일 충전해야 쓸 수 있다. 하지만 베타전지는 수명이 길다. 모아두었다가 필요할 때만 쓰면 되기 때문이다. 실제 100년을 쓸 수 있다. 100년이면 365일 동안 24시간을 쓴다면 현재 기술로 시간당 효율이 1마이크로와트(㎼)이므로 876,000마이크로와트 용량을 쓸 수 있다는 의미다. 향후 연구진은 배터리 효율을 지금보다 5배인 시간당 5마이크로와트로 늘릴 계획이다.
또 다른 베타전지의 특징은 일반적인 리튬이온 전지가 리튬(Li)이온을 주원료로 한다면 베타전지는 니켈(Ni-63)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방법에도 난제는 있다. 방사능 물질을 다루다 보니 차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전지로 사용하는 것은 아직 어려운 실정이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원자력발전소와 같은 재난 방지용 전지 나, 극지, 우주, 군사용 등 특수 목적의 전지로 활용하는 것은 충분하다. ETRI 연구진은 방사선을 흡수해서 에너지로 변환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개발했다. 공동으로 참여한 원자력연구원은 베타전지에 필요한 방사성 동위원소를 만들었다.
이와 관련하여 연구진은 원천기술에 집중하고 있다. 향후 지금의 전지 출력을 최대 5배까지 높이는 것이 목표다. 이를 통해 심장박동기에 장착되는 전지 등과 같이 의료용이나 재난 안전에 필요한 센서, 지진으로 인한 댐, 터널, 원전 등 대형 구조물의 균열 여부를 알아내는 센서의 배터리로 활용할 계획이다. 특히 작은 규모의 전지를 구조물 내에 센서로 매립할 경우 사람이 배터리를 교체한다는 것은 어렵다. 이처럼 베타전지는 향후 사람이 직접 하기에는 위험한 영역에 도움을 주는 데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지진이나 강력한 충격이 발생하게 되면 그때마다 전지가 탑재된 센서가 일정한 신호를 보내 알람을 주게 되는데, 이럴 때 특수 전지인 베타전지의 활약이 예상된다. 전력은 최소만 들게 하고 이를 통해 100년 정도를 전지가 버틸 수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이처럼 베타전지와 관련하여 장점이 많다 보니 세계적인 연구도 활발한 편이다. 미국의 경우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국방 예산을 통해 코넬대학교에서 전지를 개발한 바 있다. 러시아의 경우도 니켈(Ni-63)을 활용한 다이아몬드 반도체를 이용해 연구 중이다.
연구진은 실리콘 카바이드(SiC)를 사용한 전력 반도체를 사용한다. 높은 전압 특성과 고출력이라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극한 환경에 많이 쓰인다. ETRI는 반도체 전용 팹(Fab)이 있어 웨이퍼 제작의 처음부터 끝까지 공정 설계가 가능한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곳이다. 물론 공정은 두말할 필요 없이 매우 어렵고 힘이 든다. 공정 조건이 실리콘의 경우 800~900도(℃) 내외인데 반해 실리콘 카바이드는 2000도(℃) 이상 되는 가혹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베타전지는 전지 가운데 우물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차전지와 함께 쓰는데 이차전지를 항상 채워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차전지와 같이 베타전지를 일체형으로 사용한다. 이차전지가 한 번 에너지를 사용하면 베타전지는 사용한 만큼을 또 채워주기 때문에 항상 일정한 출력을 보장한다. 필요한 전력이 베타전지 출력보다 낮다면 베타전지만 따로 떼어서도 사용할 수 있다. 베타전지는 센서가 동작할 때만 전원을 주는 셈이다. 진동 센서가 움직이면 그때 전기신호를 발생해 신호를 보내주는 역할을 한다. 통신을 보내는 중요한 에너지원을 베타전지가 맡고 있다.
본 글은 ETRI가 2018년 발행한 Easy IT시리즈 “세상을 바꿀 테크놀로지,『디지털이 꿈꾸는 미래』”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저자 ETRI 홍보실·정길호 출판사 콘텐츠 하다
ETRI가 펴낸 『디지털이 꿈꾸는 미래』는 우리에게 제4차 산업혁명의 의미를 알려주고, 다양한 ICT 트렌드를 소개하여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흥미롭게 조망해 보는 책입니다. 본 도서는 예측 불가능하고 더 빨라진 기술 세상에서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적응하고 미래의 위험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데 좋은 지침이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