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의식주(衣食住)에 해당하는 ‘의(衣)’에 해당한다. 매일 입는 옷이지만, 우리는 옷을 만드는 섬유나 ‘의’라는 가치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많지 않다. 그래서 탄생한 곳이 ‘대구섬유박물관’이다. 이곳은 옷과 섬유의 의미를 일깨울 수 있는 흥미롭고, 신선한 박물관이다. 한 시대를 주름잡던 유행을 더듬어보고, 삶을 풍요롭게 해준 섬유 산업 이야기와 최첨단 섬유까지 만나볼 수 있다.
지난 2015년 5월, 섬유의 A to Z를 담은 흥미로운 DTC(대구 텍스타일 콤플렉스)섬유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대구는 아시아의 ‘밀라노’라 불릴 만큼 우리나라의 섬유를 대표하는 도시다. 또 섬유가 태어나서 사람들의 몸에 걸쳐지기까지 모든 과정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섬유 제직뿐만 아니라 원사, 준비, 염색, 가공, 봉제, 유통, 무역 등 섬유 산업이 총집합한 도시는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가장 큰 섬유 시장인 서문시장은 물론, 전국 최대의 섬유 공단이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섬유박물관은 패션의 중심지, 섬유의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대구에 어울리는 박물관인 셈이다.
박물관 입구에 세워진 노랑, 초록, 빨간색의 커다란 실뭉치와 하늘을 찌르듯 거대한 바늘 조형물은 이곳을 방문한 관람객을 가장 먼저 반겨준다. 그리고 1층에 들어서면 ‘명예의 전당’이라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곳은 섬유박물관에 전시된 자료와 의상 등을 기증한 이들을 기념하는 공간이다. 본격적인 관람은 2층 ‘패션관’부터 시작된다. 로비 중앙에는 신비로운 조형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천장에서 내리는 반짝이는 실 끝에 스커트와 재킷, 모자가 빛난다. 이 조형물은 ‘고요 속의 움직임’으로 광섬유를 이용해 만들었다.
본격적으로 가장 먼저 둘러볼 곳은 ‘패션관’이다. 패션관은 우리나라 패션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담아낸 전시관으로, 1900년대부터 시대별로 유행했던 옷들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1960년대 배우 윤복희가 입어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미니스커트가 눈에 띈다. 1970년대 패션 앞에 서면, 나팔바지를 입은 마네킹이 영화 ‘써니’를 연상케 한다. 또 1990년대를 주름잡던 힙합 패션은 ‘토토가(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의 여운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것만 같다. 이뿐만 아니라 패션관에서는 시대별 브랜드 제품의 트렌드까지 알 수 있다. 1951년에 크리스찬 디올이 제작한 비즈드레스는 한 땀 한 땀 수놓은 정교한 구슬 장식이 예술 작품을 연상케 한다. 고전적인 디자인이지만, 68년이 지난 현대에 입어도 손색없을 만큼 아름답다.
관람시간
a.m. 9 ~ p.m. 6입장료
무료매주 월요일 휴무
이곳 ‘산업관’은 섬유의 역사와 소재 그리고 기계의 발전 과정을 담은 공간이다. 뻔한 전시물 형태보다는 큐브룸과 포켓 영상실 등 관람객이 좀더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또한, 현미경으로 보는 ‘섬유·직물 관찰시스템’도 준비되어 있어, 아이들이 체험하기에 좋다. 역사 속의 섬유는 감동과 재미를 동시에 선사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발표된 ‘전시생활개선법’ 문서를 읽다 보면, ‘양단, 벨벳, 하부다에, 레이스, 나이롱’등 당시 금지된 섬유가 기록되어 있다.
1960년대에는 우리나라 섬유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나일론의 등장이다. 과거에는 첫 월급을 타면 부모님께 빨간 내복을 선물하던 문화가 있었다. 흰색, 검정색도 아닌, 굳이 빨간 내복을 선물해야 했을까? 항상 궁금했던 찰나,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당시 염색기술의 한계로 나일론을 가장 손쉽게 염색할 수 있는 색이 빨간색이었기 때문이다. 나일론이 등장하면서 ‘나이롱 양말’, ‘나이롱 대학’, ‘나이롱 처녀’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그 이유는 1958년 우리나라에서 나일론을 처음 생산했던 ‘한국나이롱’이 당시 파격적인 직원 채용으로 화제를 모았기 때문이다. 기숙사를 제공하고, 1일 8시간 근무에 3교대를 실시하면서 가장 선망하는 직장으로 꼽혔다. 사람들은 대학에 견주어 ‘나이롱대학’이라고 불렀으며, 위아래로 나일론 옷을 차려입는 것이 꿈이었던 처녀들을 ‘나이롱처녀’라고 불렀다. 또 쉽게 구멍 나지 않고, 오래 신을 수 있는 튼튼한 ‘나이롱 양말’도 히트를 쳤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흡수성과 통기성의 단점이 하나 둘씩 언급되면서 나일론의 인기는 떨어졌다. 그러다 ‘나이롱’이란 말도 겉만 그럴싸한 가짜라는 의미로 변질되어 갔다.
산업관에는 대한민국 섬유 산업에 한 획을 그은 기업들의 연혁도 볼 수 있다. 현재 코오롱 한국나일론(주), 현 삼성 모태 기업인 제일모직 등 섬유 산업을 빛낸 기업들이 이뤄낸 성과와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다. 이처럼 한 시대의 유행을 선도하던 섬유는 지금의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준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가 오늘처럼 급성장할 수 있었던 저변에는 섬유 산업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1973년 우리나라 총수출에 섬유산업의 비중은 47.3%를 점유했고, 수출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후 1987년에는 100억 달러를 달성하며 섬유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느끼게 했다.
3층에서 섬유의 종류와 역사를 알아봤다면, 4층 미래관에서는 아직 우리 일상에서 만나볼 수 없는 최첨단 섬유를 만나볼 수 있다. 슈퍼 소재인 탄소로 만든 자동차를 타고 화면 속의 도로를 질주하며, 첨단 섬유와 함께 우리 미래를 만나보자. 미래의 소방복은 400도 이상의 고온을 견디고, 방탄복은 강철의 5배나 되는 강도를 지닌 신소재로 제작되었다. 또 선수의 안전을 보호하는 미래의 쇼트트랙 경기복과 펜싱복, 역도복도 전시되어 있다. 소리 반응 의류, 감성 전달 의류, 감광 센서 감성 보호 의류 등도 만나볼 수 있다. 버튼을 누르면 불빛이 나기도 하고, 소리에 반응하여 이퀄라이저의 무늬와 색채가 리듬에 맞춰 변화하기도 한다.
이밖에도 대구섬유박물관에서는 항상 다양한 체험과 교육 및 학습이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대구문화재단에서 지원하는 유아 문화 예술교육 ‘섬유야 놀자!’도 진행되었다. 6월부터 시작된 본 프로그램은 대구광역시 유치원과 어린이집 20개 기관을 대상으로 총 80회 진행되며, 6~8월까지 1~2회차 40회가 진행되었다. 9월에는 3회차 프로그램 ‘콕콕콕 바늘놀이(니들펀치)!’가 진행되어 바늘의 역사와 원리를 배우고, 니들펀치라는 독특한 바늘로 수놓기를 체험했다. 현재는 9~11월 마지막 주 수요일, 토요일에는 (사)한국박물관협회 지원사업 ‘2019 박물관 문화가 있는 날’에 선정되어 ‘패션도시 대구, 패션디자인을 알자’를 운영 중이다. 이처럼 무료관람과 무료 체험 활동 학습까지 이루어지는 이곳에서 옷의 새로운 가치를 알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