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특정 소재 생산의 차질로 국내 휴대폰 생산이 위협받은 적이 있다. 당시에도 일본의 지질학적 리스크를 감안했을 때, 소재·부품·장비에 관련한 일본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후 국내 주요 부품들의 경쟁력은 향상됐고, 스마트폰 부품 국산화율도 크게 높아졌다. 그러나 소재·부품·장비의 완전 국산화는 여전히 요원하다. 하지만, 이제 글로벌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을 위한 국산화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되었다.
소재·부품이란 원자재에 1회 이상 가공공정을 거친 것으로 최종완제품 생산을 위한 중간재를 말한다. 금속, 그래핀, 화학, 세라믹, 섬유 등의 소재와 모터, 베어링, 컨트롤러, 인쇄회로기판 등이 주요 부품이다. 최근 일본이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한 가운데 국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산업 육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는 관련 산업의 국산화를 통해 일본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함이다. 한편 일반기계, 정밀기계, 정밀화학제품, 기계요소 및 공구류 등 일본의 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 5대 품목에 직·간접적인 피해가 예고되면서 유동성 확보 및 수입 다변화, 기술개발, 사업화 역량 강화 등 중단기 지원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연구원은 지난 8월 28일, ‘2019 8월 KOSBI 중소기업동향’ 보고서와 ‘일본 수출규제 영향 및 시사점’을 주제로 한 이슈 페이퍼에서 “일본 수출규제 사태를 계기로 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활력을 모색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중소 제조업 생산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중소기업의 취약한 대응 여력 등을 감안하면, 직접적인 피해 확산 가능성을 유의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중소기업연구원은 중장기 대책으로 중소기업 기술개발 및 사업 역량 강화를 지원하는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구체적으로는 중소 관련 기업이 연구인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세제 혜택 강화, 장학제도운영 등 유인책을 도입하고, 대기업, 중소기업 공동개발 및 중소기업 테스트 베드 지원 등 협업 플랫폼 구축이 시급하다고 봤다.
이러한 일환으로 정부 부처를 포함한 산·학·연에서도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을 비롯해 산업 전반에 실무능력을 갖춘 전문 인력 공급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의 경우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관련 기술인력을 양성하는 교육을 시작했다. 이 사업을 통해 올해부터 5년간 총 300명(연 60명)의 고급 R&D 인력이 양성될 예정이다. 석사학위 과정은 산업계 수요를 바탕으로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참여기업과 산학 프로젝트를 연계해 졸업 즉시 활용할 수 있는 고급 연구개발(R&D) 인력을 배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단기과정은 컨소시엄 기업 재직자, 참여 대학 학생 등을 대상으로 실습 설비를 활용한 교육에 나선다. 이를 통해 교육 참여자의 실무능력 향상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참여기업은 대기업보다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중견기업으로 배출 인력이 해당 기업에 취직할 수 있도록 추진한다. 양성된 인력은 반도체 분야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장기적으로 반도체 산업 가치사슬 전반에 걸친 성장을 뒷받침할 전망이다.
정부출연연구기관도 일본 수출규제에 따라 소재·부품·장비 분야 핵심기술을 빠르게 확보하고, 일본을 비롯한 대외의존형 산업구조를 탈피를 위해 나섰다. ETRI의 경우 지난 수십 년 동안 축적해 온 기술과 인력 및 인프라를 활용해 소재·부품·장비 분야 중소기업 지원 프로그램을 강화한다. 이를 통해 일본 수출규제로 인한 국내 중소기업 피해를 최소화하고, 기술 독립을 위한 경쟁력을 확보하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ETRI는 중소기업 지원 교두보 역할을 할 ‘ETRI 도우미상담센터(042-860-0911)’에 소재·부품·장비 전문 연구원을 배치해 시급한 기술 애로사항을 신속하게 상담할 방침이다. 또 1,800여 명 전문가 풀을 활용한 컨설팅도 진행할 계획이다.
아울러 ETRI가 보유한 1,900여 점 고가 연구·시험 장비도 중소기업이 테스트에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한다. 또한, 고급연구 인력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에 연구원을 파견해 지원하는 ‘연구인력 현장 지원’ 사업에도 소재·부품 기업 지원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본 사업은 1년 단위로 운영하던 파견 기간도 최대 3년까지 늘릴 예정이다. 이처럼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투입해 우리나라 소재·부품 기업이 위기를 극복하는데 기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편 지난 6월 27일, 새롭게 개편한 ETRI ICT창의연구소는 ‘파괴적 창의 연구를 통한 ICT 원천기술 선도’라는 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제4차 산업혁명 및 Beyond-5G 초연결 사회 구현에 기여하기 위해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미래기술들의 발굴 및 연구개발을 수행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가 소재·부품의 국산화를 넘어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국가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ICT창의연구소는 휴먼증강 디바이스, 클라우드 지능증강 디바이스, 뉴로모픽 디바이스, 양자컴퓨팅 SW·HW, 양자암호통신, 테라급 광·무선통신 융합부품, 웨어러블 초감각통신, 홀로그램 공간인터랙션 디바이스, 초경량 AR·VR 디바이스 기술 등 기존 산업계에 혁신과 혁명을 가져올 수 있는 최첨단 미래 분야의 핵심기술들을 연구개발하고 있다. 또한, 테라헤르츠 소자·부품, 시냅스 기반 감성인지 소자, 나노전자원 소스 2D·나노 반도체, 메타물질, 양자 소자 등 보다 기초 원천적인 기반 기술들을 발굴하고 연구개발 중이다.
특히 최근에는 그동안 일본을 비롯해 외국의 부품을 사다가 쓰는 경우가 많았던 우리나라 센서시장에 한 획을 그을만한 기술개발에 성공해 상용화를 이뤄냈다. 바로 음장(音場)센서다. 이 센서는 소리가 미치는 영역, 사운드 필드와 관련되는 센서다. 이 센서는 소리의 특성인 회절, 반사 현상을 이용해 만들었다. 음파는 온도에 따라 소리의 속도가 달라진다는 개념을 활용한 것이다. 음장 센서 내 내장된 스피커에서 음파를 발생시켜 음장을 만든 다음 음장의 변화를 마이크로 받아 알고리즘을 분석한다. 그리고 소리를 내면 음파가 커지면서 침입과 화재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이 기술은 문이나 창문이 열리는 등 침입시도 감지와 적외선 열선을 이용한 감지, 화재감지 등 세 가지를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최초의 센서다. 연구진은 최근 들어 독거노인이나 1인 가구가 증가함에 따라 최적의 센서로 활용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간단한 부품에 착안하여 다양한 모델의 센서를 만들고 있다. 즉 하드웨어 형태의 센서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형태로도 기존 센서나 AI 스피커에 탑재할 수 있어 활용 스펙트럼이 넓다. 이처럼 ICT창의연구소는 산업계 및 국내외 유관기관과의 협력연구로 시너지 창출을 이루고, 국내 ICT 부품·제조 기업들이 신시장을 선점하여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다. 나아가 우리나라가 반도체 및 ICT 디바이스 분양의 강국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