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눈앞에 보이는 현실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가상현실·증강현실을 통해 현실에서 볼 수 없었던 상상 속 미지의 세계가 펼쳐질 전망이다. 또한, 눈과 귀로 보고 듣는 수준을 뛰어넘어 현실과 가상 세계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이처럼 ICT는 시간과 공간의 벽을 넘어 새로운 오감 체험과 상상력을 제공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요즘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의 인기가 뜨겁다. 뉴스나 언론 매체에서 관련 보도들이 연일 화제에 오르내리고 있고, 전시회나 테마파크 한복판에 체험 공간을 운영해 관람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디지털 콘텐츠 기술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아울러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과도기에서 콘텐츠 기술들이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오늘날 콘텐츠는 기술과 사람을 연결하는 핵심 매개체로 사람들에게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인간의 삶을 더 편리하게 더 실감 나게 구현하는 디지털 콘텐츠 기술이 어느새 인간 삶의 중심에 파고들어 우리를 또 다른 세상으로 안내하고 있다.
과거 20년 전 디지털 콘텐츠 기술의 핵심은 게임이었다. PC 게임 엔진을 비롯해 게임 콘텐츠, 게임 스튜디오, 게임 테스트베드 등을 통한 기술개발이었다. 현재도 게임 기반 기술들을 계속적으로 연구 중이다. 게임 분야의 예처럼 콘텐츠 기술은 다양한 테마를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게임 이후에 콘텐츠 기술은 컴퓨터그래픽(CG)으로 그 발전을 거듭해왔다. 연구원들은 크리처(Creature :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해 가상 존재를 실사 수준의 존재처럼 구현한 입체 캐릭터) 기술을 통해 사물에 적용했고, 이후에는 사람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바로 디지털 액터 기술이다.
ETRI가 디지털 콘텐츠의 한 부문으로 크리처, 네이처, 액터를 연구한 것은 약 15년 전의 일이다. 이를 통해 물, 불, 연기, 폭발 장면 등을 실감 나게 연출해냈다. 또한, ETRI 연구진은 세계적인 CG 분야의 최고 학술대회인 시그라프(SIGGRAPH)에 참가하여 기술력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2007년 시그라프에서는 세계인을 놀라게 할 만한 콘텐츠 기술력을 뽐내 논문의 표지에도 실리고 세계무대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0년 초반 당시 ETRI CG 연구팀장을 맡았던 이인호 박사는 CG 전문 창업 기업인 매크로그래프(Macrograph)를 창업했는데, 현재 미국 할리우드와 중국의 영화 시장에 진출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인다. CG 분야를 거쳐 콘텐츠 기술은 2013년부터 가상현실, 증강현실 그리고 가장 최근의 혼합현실(MR, Mixed Reality)로 이어졌다. ETRI의 이길행 콘텐츠연구본부장은 “향후 기술의 흐름은 ‘가상현실-증강현실-혼합현실’로 설명할 수 있다. 증강현실의 경우 가상현실에 비해 일반인이 접하기 쉬워 교육 등의 분야에 우선적으로 적용됨으로써 시장 확대가 쉬워지고 빠를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말했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혼합현실 또한 빠른 성장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혼합현실은 가상현실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실감 나는 느낌을 들게 하며, 스마트 안경 밖의 상태도 볼 수 있다. 또 안경 내에서도 디스플레이가 되기 때문에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다. 몇 년 전부터 주목받고 있는 가상현실은 그에 비해 시장 안착이 더딘데 왜 그럴까? 그것은 바로 진입장벽과 같은 장애물 탓이다. 가상현실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HMD(Head Mounted Display)’라는 장치를 머리에 쓰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장치를 머리에 써야 하는 이 방식 자체를 사람들은 부담스럽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여성의 경우 머리가 헝클어지고 화장이 번지고 장치에 묻기도 해서 즐기기를 꺼리기도 한다. 게다가 어떤 사람은 HMD를 쓰고 영상을 보다가 어지러움을 호소하기도 하고 심하게는 토하기도 한다.
또한, HMD를 쓰면 사용자는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이런 치명적인 문제가 시장 상용화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해상도도 문제다. 사람의 얼굴 구조에 따라 미간의 간격 차이로 HMD가 정확히 맞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애 요인은 HMD 상에서 3D로 보여야 할 부분에 사람마다 약간의 차이를 나타낸다. 이 같은 신체적인 차이로 인해 사람마다 어지러움 정도도 차이가 난다. 이런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가상현실을 시장에서 접근하기 어렵게 하고, 시장 형성도 늦어지는 이유가 되고 있다. 실제 기술적으로도 극복하기가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가운데 ETRI 연구진은 현재 국가 전략 프로젝트에 맞춰 부지런히 ‘가상현실-증강현실-혼합현실’로 연구를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다음에 올 현실은 무엇일까? 여러 기술을 들 수 있겠지만 지금 시점으로는 ‘홀로그램’을 꼽을 수 있을 듯하다. CG를 이용해 홀로그램을 만들고 실제 사람과 상호작용을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옆에 떠 있는 개인비서 홀로그램과 악수하고 대화를 나누듯이 말이다. 소프트웨어적 홀로그램은 사진을 스캐닝하여 3D로 만든다. 여기에 홀로그램을 띄우고 상호작용이 가능하게 하여 이동하면서 사람에 따라 움직이게 만들어야 하는데 이런 개발 과정이 매우 어렵다.
ETRI는 콘텐츠연구본부뿐만 아니라 ICT소재부품연구소나 방송미디어연구소에서도 홀로그램 연구를 하지만, 콘텐츠 영역에서의 홀로그램 연구는 약간 다르다. ETRI 연구진은 그동안 초다시점(super multi-view) 홀로그램에 주목해왔다. 향후 홀로그램의 연구는 소재 부품 기술뿐만 아니라 디스플레이, 콘텐츠, 자연어처리, 음성인식, 동작인식, 햅틱 기술, 합성 기술 등 다양한 학제적 연구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완벽한 홀로그램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인공지능 개인비서의 경우 스마트폰이나 스피커를 통해 음성으로 듣는 것보다 모니터 앞에 영상으로 띄워진다면 더욱 실감 나고 감성적인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2017년 5월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 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되었던 ‘AWE USA 2017’에서는 그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AWE(Augmented World Expo)는 세계 최대 증강현실 월드 엑스포다. 이곳 행사장에서는 홀로그램을 띄워 골무 같은 장치를 손가락에 끼고 영상과 상호 인터랙션 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악수를 하면 약간의 진동도 느끼게 설계되었다.
이렇듯 콘텐츠 기술의 진화는 사람이 느끼는 오감을 만족하는 기술로 정의되곤 한다. 기존 연구가 약간의 촉각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후각에 관한 기술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ETRI 연구진도 약 200여 가지의 냄새를 조합해 후각을 느낄 수 있도록 연구 중이다. 예를 들어 HMD를 쓰고 바닷가 소나무밭을 걷노라면, 바람이 살살 불고 바닷가 갯벌의 향과 소나무 향이 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실제 바닷가에 있는 듯한 느낌이 나게 하는 콘텐츠 기술을 구현하는 것이다.
해외 콘텐츠 기술 연구팀들도 미각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여러 미각 연구 사례 중 한 가지를 소개하면, 혀 밑에 칩을 심어 디스플레이 영상에 나타나는 장면에 몰입하게 하는 것이다. 그럼 영상에서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오면 칩에서 커피 맛이 나게 작동하고 짠맛, 단맛, 신맛 등을 연출하는 것이다. 디지털 콘텐츠 기술은 이미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고 있으며, 앞으로 다가올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동시에 국가 경쟁력을 한 차원 발전시킬 미래 성장 동력의 중심에 서 있다.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고 디지털 콘텐츠 기술은 그 중심에서 한 발 더 앞서 있다.
본 글은 ETRI가 2018년 발행한 Easy IT시리즈 “세상을 바꿀 테크놀로지,『디지털이 꿈꾸는 미래』”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저자 ETRI 성과홍보실·정길호 출판사 콘텐츠 하다
ETRI가 펴낸 『디지털이 꿈꾸는 미래』는 우리에게 제4차 산업혁명의 의미를 알려주고, 다양한 ICT 트렌드를 소개하여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흥미롭게 조망해 보는 책입니다. 본 도서는 예측 불가능하고 더 빨라진 기술 세상에서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적응하고 미래의 위험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데 좋은 지침이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