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비롯한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할수록 인터페이스에 대한 감각 피드백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기존 사람과 관련된 감각 재현기술은 대부분 시각과 청각 위주로 발전했지만, 최근에는 촉감재현 기술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이에 국내 연구진은 촉각을 이용한 정보전달을 위해 ‘비접촉식 촉감 디스플레이’ 개발에 나섰다.
‘촉감재현 기술’은 인공적인 촉감을 만들어내는 기술로 감각의 종류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근육과 관절에 위치 정보와 힘을 전달하는 역감재현(Force Feedback)입니다. 두 번째는 물체의 미세한 표면구조(Texture)와 진동을 피부로 전달하는 진동 촉감 재현(Vibrotactile Feedback)입니다. 이러한 촉감의 재현을 위해서는 구동기에서 만들어지는 힘, 움직임, 진동 등 기계적 자극이 사용자의 신체에 전달되어야 합니다. 이때 구동기에서 만들어진 자극을 사용자의 신체에 직접적인 접촉이나 기계적인 연결 없이 공기 중으로 신체에 전달하는 기술을 ‘비접촉식 촉감 디스플레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국내·외에서는 본 기술의 구현을 위해 다양한 방법이 연구되어왔습니다.
ETRI는 초음파 원격 햅틱기술과 광신호 기반의 촉감 생성기술을 통해 비접촉식 촉감 디스플레이 구현을 연구해왔습니다. 먼저 초음파 원격 햅틱기술은 공기를 통해 전달되는 초음파 대역(20kHz 이상)을 공중의 한 점에 집중시키고, 사람이 느낄 수 있는 크기로 증폭하는 방법입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초음파 스피커에서 생성하는 초음파 신호는 일정한 범위의 방사각 내에서 공기의 진동을 만들어 소리와 같은 속도로 퍼져 나가는데요. 초음파 원격 햅틱기술은 수십 개 이상의 초음파 스피커에서 만들어낸 공기의 진동을 공기 중 원하는 위치에 중첩시키고, 공기압 초점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성된 초음파 초점의 공기압은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진동이나 압력 크기로 증폭됩니다. 그리고 초점 위에서 작은 바람이 살랑거리는 듯한 촉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아울러, ETRI는 레이저를 이용한 촉감 생성기술도 연구 중입니다. 바로 레이저의 열 효과로 필름의 기계적 변형을 만들어내 굴곡이나 진동의 형태로 촉감을 만들어내는 기술입니다. 이 기술은 다른 기술에 비해 응답속도가 매우 빠르고 정밀한 제어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외에도 촉감 생성기술에는 플라즈마 생성, 전자기력 등의 방식들이 있습니다.
‘햅틱기술’이라고도 불리는 촉감재현 기술은 콘텐츠의 효과를 증폭시키거나 시청각을 사용할 수 없는 환경에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개발되었습니다. 아마 일반인들은 삼성전자에서 출시한 햅틱폰 덕분에 햅틱이라는 단어가 익숙할 것 같은데요. 덕분에 ‘햅틱’을 본래의 뜻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닌 휴대전화의 이름이나 애칭으로 아는 사람들도 종종 있습니다.
현재 촉감 재현기술은 4D 영화관의 모션 체어와 같이 부가적인 정보전달을 위해 시청각과 함께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개발된 ‘옵타콘(Optacon)’이라는 점자 디스플레이도 있는데요. 가장 오래된 비접촉식 촉감 디스플레이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옵타콘은 인쇄된 문자를 점자 형식으로 변환하여 시각장애인이 손끝으로 감지하여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기계입니다.
이렇듯 기존 촉감 기술은 주로 사람이 직접 커다란 장치에 손을 대거나 진동모터가 내장된 핸드폰을 손에 들었을 때 드르륵 하고 느낄 수 있는 형태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초음파, 레이저 등을 이용한 촉감재현 기술을 통해 공기 중으로 에너지 전달이 가능해질 예정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직접 장치를 착용하지 않아도 공중에서 촉감 전달이 가능해지는 것이죠. 이젠 사용 방법이 훨씬 간편하고, 중간에 사용자가 바뀌거나 여러 사람이 사용할 때에도 유리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햅틱기술
각종 디지털기기에 진동이나 힘, 충격을 발생시킴으로써 사용자가 촉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한 기술
촉감재현 기술은 최근 VR(가상현실)·AR(증강현실)·MR(혼합현실) 등에서 활발하게 접목되고 있습니다. 가상환경에서는 손을 이용한 조작이 자주 일어나는데요. 촉감재현 기술은 가상물체와 상호작용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여 몰입감과 작업 성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습니다. 먼저 온라인 쇼핑에서 그동안 최대 단점으로 여겨져 왔던 것들이 가능해질 전망입니다. 바로 제품을 미리 만져볼 수 있게 되는 거죠. 이로써 온라인 쇼핑에 촉감재현 기술이 널리 쓰일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지금 인터넷에서 옷을 살 때 사진을 아무리 봐도 이게 어떤 재질인지 분명하게 알지 못하잖아요. 이럴 때 판매자가 촉감 신호를 구매하려는 사람에게 보내줄 수 있다면, 집에 있는 촉감재현 장치로도 옷의 재질을 직접 느껴볼 수 있습니다.
또한, 원격수술에도 촉감재현 기술이 활용될 전망입니다. ‘다빈치’라고 불리는 수술 로봇을 한 번쯤 들어보셨을 텐데요. 수술 로봇은 의사가 로봇팔을 원격으로 조종해 수술하는 로봇을 말합니다. 그동안 로봇의 손은 환자의 장기에 닿거나 혈관을 절개할 때 의사에게 촉각적인 피드백을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의사는 혈관을 잘랐는지 안 잘랐는지는 눈으로만 확인할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수술에 대한 확신이 떨어졌죠. 하지만 향후 촉각 피드백을 제공하게 되면 수술 로봇을 조종하는 의사가 확신과 직관을 가지고 수술에 임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수련하는 의사들이 거의 경험해 볼 수 없었던 희소병 환자 수술에도 촉감재현 기술이 적용될 예정입니다. 그동안 의사들이 희귀성 질환자를 직접 수술할 수 없어 참관하거나 보면서 연습했다면, 이제는 촉감재현 시뮬레이터를 만들어 수술 연습도 보다 쉽고 실제처럼 가능해집니다.
또 다른 분야로는 홀로그램입니다. 현재 홀로그램 기술이 개발되고 있고, 앞으로도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요. 향후 디스플레이를 착용하지 않고 홀로그램으로 입체를 볼 수 있게 된다면, 촉감 재현기술을 더해 실제 이미지가 있는 것처럼 실감나게 느껴지도록 재현도 가능합니다. 즉, 홀로그램에 손을 갖다 댔을 때 허공이 아닌 실제 홀로그램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죠.
촉감재현 기술
거칠기, 냉온감, 진동감과 같은 물리적 자극을 사람의 피부에 가해 마치 실제 표면을 만지는 것과 유사한 촉감을 재현하는 기술
현재 기술 수준에서는 가상현실에서 필요로 하는 정밀한 힘이나 피부 촉감의 재현을 위해 크고 복잡한 장치가 필요합니다. 현재 출시된 리모컨형 컨트롤러에서는 손에 단순한 진동이나 부분적인 촉감만 표현할 수 있어 추가적인 연구가 더 요구됩니다. 최근 개발되고 있는 초음파와 레이저를 이용한 원격 촉감 기술은 사용자가 직접 착용하지 않으므로 편이성과 자유도는 높지만, 아직 효율성과 안전성 문제로 강한 실감효과를 만들어내기 어렵습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했을 때 향후 안전성을 유지하면서 촉감의 강도를 높이는 연구를 이어갈 예정입니다.
‘촉감재현 기술’은 현실의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어 실제로 경험하기 어려운 환경을 실제처럼 체험해보는 것이다. 일종의 도전이다. 황인욱 선임연구원은 이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이 기술의 분명한 장점은 시각장애인이 겪는 정보전달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입니다. 점자책의 수요는 부족하고, 정보를 자세히 표현하기도 어렵습니다. 특히 그림이나 그래프는 점자로는 설명이 아직도 쉽지 않은 형편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촉감재현 기술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울러 누구에게나 양질의 콘텐츠와 정확한 정보전달을 할 수 있도록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계획입니다.” 그의 말대로 ‘촉감재현 기술’은 다양한 산업과 서비스를 아우르며, 엔터테인먼트 부분은 물론 복지 측면에서 도움을 줄 것이다. 레이저를 이용한 촉감 생성 기술은 이제 시작한 과제이지만, 가까운 미래에 우리 삶의 가치를 높이고 따뜻한 ICT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