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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은 놀이터가 아니다
정주영창업경진대회 최우수상 겸 특별상, 공공기술 기반 기술창업 데모데이 대상, 스파크랩스글로벌로부터 초기 창업자금 유치, 중소기업청 청년창업사관학교와 창조경제혁신센터 6개월 챌린지플랫폼 연속 선정, 다음카카오의 투자전문회사 케이큐브벤처스 3억 원 투자 결정. 아직 채 한 돌도 되지 않은 신생 기업 ㈜엑소시스템즈의 크고 작은 성공들은 듣던 대로 주변 창업자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 자리가 ‘독이 든 성배’라 불리듯 스타트업을 향한 대중적 관심이나 투자유치 역시 ‘양날의 검’이란 사실을 잘 아는 이후만 대표는 주가가 치솟는 요즘이 오히려 더욱 조심스럽기만 하다. 그는 “외부의 기대에 책임감을 갖지 못하는 스타트업은 그냥 놀이터에 불과할 뿐”이라 믿는다. 이 대표는 “돈, 시간, 사람 뭐 하나 제대로 없던 때보다 오히려 요즘 더 창업의 어려움을 실감하는 중”이라며 웃는다. 덕분에 부쩍 잠을 설치는 날도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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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Home!” 쉽고 재밌는 재활치료
2017년 1월 설립된 ㈜엑소시스템즈는 ‘삶의 질을 높이는 적정기술’을 꿈꾸는 스타트업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질병이나 사고로 관절을 다친 이들의 재활훈련에 관심이 많다. 이들이 개발 중인 첫 제품 ‘엑소리햅(exoRehab)’은 닌텐도 위(Wii)처럼 환자들이 즐기면서 운동할 수 있는 체감형 재활솔루션이다. 로보틱스 기술에 데이터 분석 알고리즘, 사물인터넷과 게임설계 기술이 결합된 이 웨어러블 디바이스는 착용자의 동작을 정밀하게 인식해 분석한 뒤 그에 맞게 훈련 강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해준다. 기존의 재활프로그램이 고가의 장비를 기반으로 해 대중화가 어려웠던 것과 달리, 엑소리햅은 “누구나 즐겁게 효과적으로”란 모토에 따라 꼭 필요한 기술들만 골라 담는 보급형으로 개발되고 있다. 이동이나 비용 문제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언제 어디서나 손쉽고 재미있게 재활솔루션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단순한 신제품 개발의 차원을 넘어 재활훈련의 패러다임까지 바꾸고자 하는 이런 시도에는 “첨단기술보다 적정기술로 보다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엑소시스템즈의 꿈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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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감과 동경심 사이에서
이후만 대표는 26살에 ETRI 연구원 생활을 시작했다. 이른 나이에 안정적인 연구환경을 갖게 됐다는 것은 그와 가족 모두의 큰 자부심이기도 했다. “하지만 안정적이란 말은 현실에 안주하기도 쉽다는 말과 같지요. 시간이 흐를수록 젊을 때 할 수 있는 또 다른 많은 기회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쉽게 떨칠 수 없는 회의감의 반대편에서는 일찌감치 자신의 꿈을 좇아 창업에 나선 선배들에 대한 동경의 마음이 피어올랐다. 그 역시 어려서부터 뭐든 관심 가는 일은 직접 몸으로 부딪혀보기를 좋아했다. 중학생 때는 찹쌀떡을 팔고 고등학교 축제에서는 솜사탕 기계를 끌고 나타나 큰 환호를 받았다. 대학원 때는 재미의 차원을 떠나 본격적인 사업에도 접근해봤다. 도매 옷을 구하러 서울 시장을 찾았다가 종종 허탕을 치는 지방 상인들을 위해 온라인 도매 플랫폼을 연 것이다. 많은 소매점, 유명쇼핑몰과 제휴를 맺으며 짧은 기간 꽤 큰 매출도 올렸다. 하지만 공부에 전념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바람에 생애 첫 사업은 거기서 아쉽게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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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이 되는 적정기술
그러던 그가 다시 창업을 결심하게 된 것은 지능형 로봇시스템 연구그룹에서 양팔로봇을 연구하던 중이다. 여기에는 숨겨진 사업가 본능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안타까움도 작용했다. “당시 ETRI에서는 착용자의 모션을 센싱할 수 있는 착용형 로봇을 개발했는데 자꾸 요양병원에 계시다 돌아가신 할머니, 점점 연세가 많아지시는 부모님이 생각났어요. 이런 기술을 활용하면 활동량이 줄어 근육이 소실되고 결국 거동이 불편해지는 분들의 삶에 변화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였지요.” 축구를 좋아하던 이 대표 역시 꽤 오랜 기간 근육 소실로 고생한 경험이 있었다. 고관절 골절을 치료하느라 움직이지 않다 보니 그만 근육이 퇴화된 것이다. “첨단기술을 연구해서 우수한 논문을 작성하는 것보다 적정기술로 실제 삶에 도움이 되는 제품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꿈이 커져갔습니다. 착용형 외골격 로봇개발 경험을 잘 살린다면 정말 쉽고 재미있고 효과도 좋은 웨어러블 재활솔루션을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어요.” 눈 밝은 투자자들은 “재활환자들의 삶에 적정기술을 선물하고 싶다”는 이들의 꿈에서 고령사회에 따른 높은 성장 가능성 이상의 큰 미래를 발견하고 있다. 다년간의 연구개발을 통해 만들어진 ㈜엑소시스템즈의 기술력이 재활환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의료분야는 물론 산업현장과 일상생활에도 폭넓게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엑소시스템즈는 현재 첫 제품인 엑소리햅의 출시를 목표로 시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한 무릎 관절을 시작으로 엑소리햅의 버전을 다른 근육으로 확대하는 연구개발 역시 활발히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