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프랑스에서 15년간 식물인간 상태였던 환자가 의식을 회복하면서 세계가 놀라움에 빠졌다. 2017년 9월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실린 논문 내용이다. 프랑스 리옹 제1 대학의 마르티나 코라졸 교수팀은 15년 전 교통사고로 뇌신경이 손상된 프랑스 청년의 뇌에 신경전극을 심었다. 그리고 약 1개월 동안 지속해서 환자에게 전기자극을 줬더니 15년 만에 눈동자와 머리를 좌우로 움직였다.
또, 전신마비 환자의 뇌에 신경전극을 이식해 생각만으로 모니터 커서를 움직이는 일이 펼쳐지기도 했다. 이 기술은 현재 고속타이핑을 기대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 중이다. 이렇듯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놀라운 일들에 사용된 기술이 바로 ‘신경전극’이다.
신경전극은 뇌세포 단위의 신경신호를 측정하거나 전기 자극에 사용되는 전극을 말한다. 이를 활용한 사례로 보철 팔이 있다. 현재 팔이 절단된 장애인의 보철 팔은 신경전극을 통해 거의 온전한 팔과 같은 수준으로 제어되고 있다. 향후 보철 팔에 부착된 인공 감각센서를 통해 실제처럼 감각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 밖에도 신경전극으로 뇌신경을 자극해 실험용 쥐의 기억을 조작하는 기적과도 같은 임상 결과가 속속들이 발표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기술의 보급은 더딘 편이다. 뇌 등 인체에 직접 전극을 삽입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또는 거부감도 한 몫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ctivity) 발표에 따르면 근본적인 이유는 뇌에 삽입된 신경전극의 이식 내구성이 채 1년을 넘기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신경전극의 내구성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세계의 연구자들은 전극에 대한 신뢰성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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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성에 신뢰성을 더한 신경전극 개발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ETRI는 생체 내에서 화학적 부식 우려가 없는 ‘유연 신경전극’을 개발했다. 기존 신경전극에는 크롬(Cr)이나 티타늄(Ti)을 접착용 금속으로 사용하는데, 이들 접착층은 생체에서 부식되는 문제가 있다. 연구진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크롬과 티타늄 등의 접착용 금속을 사용하지 않고 금(Au)전극과 테플론 필름(Teflon Film)만을 사용했다.
금과 테플론 필름은 생체 친화적이며 화학물질에 대한 내구성이 아주 강하다. 아울러 연구진은 개발한 ‘유연 신경전극’을 섭씨 70℃의 진한 질산에 1시간 이상 담가도 부식되지 않는 화학적 안정성까지 확인했다.
이를 통해 연구진은 지난 2016년 신경세포를 전기적으로 자극할 수 있는 신경전극 개발에 성공한 바 있다. 뇌신경에 공급되는 전하주입효율은 세계적으로 15% 이하의 수준이었지만, 국내 연구진은 이를 25%까지 끌어올렸다. 신경자극용 전극은 가장 최근 리뷰 논문에 게재된 세계 최고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이 기술은 최근 개발한 유연 신경전극에도 효율성은 똑같이 적용했기 때문에 재료 측면에서도 신뢰성이 크고, 성능 면에서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화학적 부식 문제가 없는 유연 신경전극은 신경전극 외에도 인체내장형 바이오센서, 강산과 강염기 환경에서의 센서 구현에도 매우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신경전극이 뇌에 이식되면 또 다른 문제점이 발생한다. 뇌세포에는 뇌의 활동을 도와주는 교세포가 있는데, 이 일부가 신경전극을 이물질로 인식하는 것이다. 교세포는 뇌세포를 보호하기 위해 단백질을 분비해 신경전극에 절연막을 형성한다. 생물학적 이슈로 분류되는 이 문제는 신경전극의 신경신호 측정 및 전기자극 효율을 감소시킨다.
현재까지 연구된 결과는 신경전극의 기판이 부드러울수록 면역 반응이 감소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는 개발한 전극의 표면을 더욱 부드럽게 만들기 위한 연구에도 주력하고 있다.
부식과 면역반응 문제가 없는 신경전극은 탁월한 이식 안정성으로 인해 이식거부감을 줄여주고 수술 횟수를 최소화한다. 연구진은 향후 개념 검증 단계에 있는 많은 뇌 제어 기술의 보급을 앞당겨 신경계 장애인들이 사회 및 경제생활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돕고자 노력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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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 트라우마, 지울 수 있을까?
이 밖에도 뇌연구와 관련해 영화에서나 볼법한 ‘기억’을 지우거나 조작하는 일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전 세계적인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2017년에 개봉한 영화 ‘공각기동대’처럼 사람의 기억을 지우거나 새로운 기억을 주입하는 연구인 셈이다.
2013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 일본 이화학연구소 공동 연구팀은 실험용 쥐의 신경세포를 자극해 기억을 조작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연구팀은 유전자 조작으로 신경세포가 작동할 때 빛을 내는 실험용 쥐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쥐를 상자(1)에 넣고 어떤 부위의 신경세포가 작동하는지 알아냈다. 쥐가 상자(1)을 기억할 때 사용한 신경세포를 찾은 것이다.
그런 다음 쥐를 다른 상자(2)에 넣고 전기 충격을 가해 무서운 기억을 주입했다. 동시에 쥐가 상자(1)을 기억할 때 사용한 신경세포들을 자극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쥐를 상자(1)에 넣었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쥐가 무서운 기억을 떠올린 듯 근육이 경직되고 좀처럼 움직이지 못하는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는 상자(2)에서 전기 충격을 받았지만, 신경세포를 자극했더니 상자(1)인 다른 장소에서도 전기 충격을 받은 것으로 기억이 바뀌었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은 또 실험용 쥐의 무서운 기억을 지우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연구팀은 쥐를 특정한 장소에 넣고 반복적으로 전기 충격을 가해 무서운 기억을 주입한 다음 제논 가스를 들이마시게 했다. 가스를 마시기 전 특정 장소에 넣으면 전기 충격을 가하지 않아도 겁에 질린 모습을 보였지만, 제논 가스를 마신 뒤에는 태평한 모습을 보였다. 제논 가스가 신경세포 활동을 억제해 무서운 기억을 떠올리지 않도록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제논 가스는 이미 인체에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나쁜 기억을 제논 가스로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은 실현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다. 이로써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희망을 걸어볼 만 하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