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느끼는 천년 고도의 숨결
경주는 누군가에게 수학여행의 추억이 깃든 장소로 기억될 수도, 오랜 전통이 빚어낸 달콤한 황남빵의 맛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 한 가지, 모두가 경주를 생각할 때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이미지는 천년의 역사가 만들어낸 소중한 문화유산을 품고 있는 도시라는 점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경주의 문화재, 그 속에 스며든 과학과 경주의 또 다른 모습을 뒤따라 가본다.
역사상 가장 화려한 천년의 시간을 품은 곳
경주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황금기를 누린 신라시대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1천 년 간 지금의 경주에 터를 잡고, 자신들만의 고유한 문화를 만들어간 신라인들은 후세대가 감탄할 만큼 수많은
문화재를 남겼다. 특히 경주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많은 유적과 보물이 있다. 경주의 문화재는
옛 조상들의 슬기로운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그 시대의 생활상뿐만 아니라 왕조의 생활, 문화, 과학적인 요소까지
연구할 가치가 높다. 최근에는 경주의 문화재를 더 가까이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체험프로그램도 진행되고 있다.
자전거로 천천히 경주를 둘러보는 사람도 늘고 있는가 하면, 경주 동궁과 월지는 아름다운 야경으로
경주의 새로운 관광명소가 되었다. 동궁과 월지는 호화스러운 통일신라시대 왕권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정원이다.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이 오면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동궁과 월지는 보통 안압지라고
많이 알려져 있다. 1980년 안압지에서 발굴된 토기 파편 등에 ‘월지(月池)’라고 불렸던 사실이 확인되어
명칭이 바뀌었다. 야경이 펼쳐진 월지에 달이 환하게 비추는 모습을 바라보면 이곳이 ‘월지’라고 불리었다는 것에 납득이 간다.
그런데, 안압지의 물은 어떻게 관리되었을까? 이곳에서는 오래전 조상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시설이 있다.
신라인은 물을 깨끗하게 순환할 수 있도록 입수부와 배수구를 만들었다. 연못 주위의
개울에서 배수구를 통해 끌어온 물을 수조에 고이게 하였다가 계단을 통해 폭포처럼 연못으로 떨어지게
만들었다. 물이 빠져나갈 때에는 못 바닥의 침식을 막기 위해서 판판한 돌을 깔아놓는 세심한 지혜도 잊지 않았다.
과학으로 복원하는 신라의 역사
경주의 문화재는 마르지 않는 샘이다. 아직도 발굴이 한창인 곳이 많다.
신라의 옛 궁성인 월성과 황룡사, 동궁과 월지 등 8개 지역에서 대대적인 발굴 조사와 복원정비가 이루어지고 있다.
동궁과 월지에서 걸어서 10분 정도에 있는 월성은 발굴이 진행되는 과정을 직접 살펴볼 수 있다.
월성은 역대 왕들이 지냈던 신라 천년을 상징하는 유적이다. 왕들의 거처였던 만큼 지역 또한 허투루
고르지 않았다. 오래전 고구려, 신라, 백제는 초승달 모양의 터를 나라의 운을 들어오게 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인지 신라의 월성 지역도 멀리서보면 초승달 모양이라고 한다. 속담 중 ‘달이 차면 기울기 마련’이라는 이야기가
있듯 오래전 선조들은 보름달은 기우는 일 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단다.
월성 지구 복원에는 다양한 과학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최신 ICT 기술을 활용해 디지털기록화
연구를 수행하고, 성벽 축조공법, 고대 지역 생태환경연구 등 다양한 학제 간 융합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제물로 바쳐진 것으로 추정되는 인골 2구가 출토되었는데, DNA와 콜라겐 분석 등 과학기술을 이용해 당시 사람들의 체질적
특성이나 인구 구조, 질병, 식생활, 유전적 특성 등을 밝혀낼 수 있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땅 밑에 숨겨진 천년의 역사가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수많은 궁금증을 안고 월성 근처를 둘러보다보면 오래전 냉장고 역할을 했던 석빙고를 만날 수 있다.
겨울에 얼음을 채취해서 이곳에 저장하였다가 무더운 여름에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지금은 집에서도 손쉽게 얼음을 만들 수 있지만, 오래전에는 얼음이 매우 귀해 백성들은 구경하기도 힘들었다.
석빙고의 원리는 지하에 깊게 굴을 파서 돌을 쌓아 올리고 빙고 안의 녹은 물을 내보낼 수 있는 배수구를 설치했다. 안 쪽의 더운 공기는
지붕의 구멍으로 빠져나가고, 빙고 아래의 찬 공기는 오래 머물 수 있도록 설계하여 얼음이 잘 녹지 않도록 했다.
경주의 랜드마크를 만나다
경주하면 빼놓을 수 없는 랜드마크(Landmark)가 있다. 바로, 첨성대이다. 수학여행으로 경주를 방문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첨성대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첨성대는 선덕여왕 시절
지어진 것으로, 천문을 관측할 수 있는 용도라고 알려져 있다. 농업 중심의 시대에서는 하늘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적당한 햇빛과 충분한 강수량이 농작물을 잘 자라게 만들었기 때문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또, 하늘의 변화를
하늘의 명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하늘을 관찰하였다. 첨성대도 우주와 하늘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데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첨성대를 만든 돌의 숫자는 365개 안팎이고, 몸통은 27단으로 쌓여져 있다.
이는 선덕여왕이 27대 왕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다. 가운데 창문을 기준으로 위쪽 12단과 아래쪽 12단으로
나누어지는데, 이는 24절기와 같아 첨성대를 통해 절기를 나타낸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아직 많은 과학적인 신비와 의문을
갖고 있지만, 첨성대는 신라를 대표하고 경주를 대표하는 과학적인 유산이라는 것임은 분명하다.
첨성대 주변은 아름다운 꽃길로 꾸며져 더욱 많은 볼거리를 자아낸다. 가녀린 몸을 바람에 흔들리며
가을을 알리는 코스모스와 핑크율리 등 외국의 꽃들이 문화재와 만나 펼쳐지는 이국적인 풍경이 아름답다.
첨성대에서 걸어서 10여 분 남짓 이동하면 경주의 또 다른 자랑거리, 성덕대왕신종이 있다.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만든 것이다. ‘에밀레~ 에밀레~’ 하고 들리는 소리가
어머니를 부르는 아이의 울음소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아이를 넣어 만들었다는 전설과 함께 ‘에밀레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덕대왕신종의 형태와 무늬도 단순히 아름다움만을 추구한 것이 아닌, 과학이 숨겨져 있다.
연꽃돌기 모양은 소리를 조율하는 역할을 하고, 소리의 완충기능을 하는 소릿대도 만들어져 있다.
평소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니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오는 경주의 문화재들.
찬란한 천년의 역사와 함께 가을볕에 부셔지는 아름다운 풍경들이 조각조각 추억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