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아트
AI로 그린 그림이 예술이 될 수 있을까? 라는 논제는 지금도 생각해 볼 법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AI를 사용해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다.
AI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따라 모방작이 될 수도 있고, 창조물이 될 수도 있다.
2022년 8월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일이 일어났다. 생성형 AI가 그린 그림이 미국 콜로라도주박람회 미술전에서 1등을 했기 때문이다. 작품명은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 게임 디자이너인 제이슨 앨런이 텍스트를 그림으로 변환시켜 주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미드저니(Midjourney)를 사용해 제작한 그림이었다. 이 그림은 사람이 직접 그린 것인지, AI가 그린 것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생성형 AI의 존재감과 뛰어난 성능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생성형 AI는 데이터 세트에 있는 방대한 양의 텍스트, 이미지 등을 학습해 특징과 패턴을 파악한다. 학습을 마친 AI는 새로운 콘텐츠를 생성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이제 사용자는 원하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프롬프트(지시문구)를 작성하면 된다. 구체적이고 세세할수록 완성도 높은 콘텐츠를 얻을 수 있다. 이미지, 동영상, 음악, 글까지. 생성형 AI의 영역은 곳곳에 퍼져있다.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생성 AI 도구는 다양하다. 그중 Chat GPT, 미드저니(Midjourney), Stable Diffusion, Adobe Firefly, Dall-E 등 이런 생성형 AI는 몇 가지 원하는 조건을 제시하면 고품질의 시각 콘텐츠를 쉽고 편하게 얻을 수 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정도의 무수히 많은 학습량을 기반으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생성형 AI. 이는 예술인을 대체할 수 있겠다는 불안감, AI 예술의 저작권 관련 법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단점과 사용자가 사용하는 방식과 방법에 따라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창작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이점이 공존한다.
생성형 AI를 둔 경탄과 논란 속에서도 생성형 AI와 공존해 미술계를 놀라게 만들고 있는 작가가 있다. 바로 튀르키예 출신의 레픽 아나돌(Refik Anadol)이다. 그는 8살 때 어머니가 빌려온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아 이스탄불에서 시각예술을 전공했다. 이후 블레이드 러너의 배경인 LA로 넘어와 UCLA에서 미디어 아트로 석사를 취득했다.
꾸준히 미디어 아티스트로 활동하던 그가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된 계기는 2022년 뉴욕현대미술관(MoMA) 로비에서 선보인 ‘비(非)감독(Unsupervised)’이라는 작품 때문이다. 그는 AI를 활용해 모마가 소장한 138,151점의 근현대 작품 데이터를 학습시켰고 이를 시각화했다. 아나돌은 이를 통해 AI가 사람처럼 ‘상상’할 수 있도록 감독을 배제했다. 이 작품은 AI가 학습한 것을 복기하며 외부의 날씨와 관람객의 움직임과 소음 등을 파악해 시각화한다. 그래서 매번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AI를 활용한 그의 새로운 작품은 서울에서도 볼 수 있다. 9월 5일부터 12월 8일까지 푸투라 서울에서 진행될 전시회 <대지의 메아리: 살아있는 아카이브>는 자연을 주제로 삼았다. 아나돌과 그의 스튜디오인 ‘레픽 아나돌 스튜디오(RAS)’ 팀원들은 10년 동안 수집해 온 대량의 자연계 데이터와, 런던 자연사 박물관, 스미소니언 박물관 등이 보관하고 있는 데이터, 아마존과 같은 세계 곳곳의 삼림에서 얻은 사진, 소리, 3D 스캔 데이터를 사용했다. 이를 토대로 대규모자연모델(LNM)이라는 AI를 개발했다. 5억 개의 이미지와 50만 개의 향기 분자, 400시간의 소리 등으로 구성된 데이터는 시각, 후각, 청각을 건드리는 작품으로 탄생했다.
높이만 11m가량 되는 화면 속에서 수많은 입자가 모였다가 흩어지며 AI가 상상 속의 자연을 만들어낸다. 더불어 수집한 향기 분자를 기반으로 개발한 자연의 향기가 전시장을 가득 채운다. 방대한 분량의 소리 데이터로 만든 음악도 흘러나온다. 다채로운 작품을 통해 아나돌은 첨단 기술이 자연을 기록하고 감상하는데 새로운 가능성을 품고 있음을 보여준다. 데이터를 ‘마르지 않는 물감’이라 표현한 아나돌. 그를 통해 펼쳐질 또 다른 작품들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