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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Bro로 4G 기술의 문을 열다

안지환 ㈜세드나 대표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무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든 기술은 무엇일까?
바로 2003년 개발에 착수하기 시작해 2006년 상용화에 성공한 와이브로(Wireless Broadband Internet, WiBro) 기술이다.
와이브로는 느리고, 비용도 비쌌던 이동전화의 무선 인터넷의 단점을 모두 보완하는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당시 총괄 사업 책임자였던 안지환 대표는 묵묵하게,
그리고 식지 않는 열정으로 연구에 임했던 그 시절을 회상했다.

ETRI 웹진 구독자들에게 본인의 소개와 근황을 전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1982년도에 ETRI에 입사해 2020년까지 TDX, CDMA, WCDMA, WiBro와 관련된 연구를 하다가 현재는 ㈜세드나의 대표로 일하고 있는 안지환이라고 합니다.

ETRI 재직 시절 주력했던 연구는 무엇인가요?

TDX 전전자교환기 호처리 소프트웨어, CDMA 이동통신 시스템의 교환국과 제어국, WCDMA(IMT-2000) 기지국, WiBro 시스템 연구개발 등 통신 분야 연구개발에 주력했어요.

재직 기간 동안 제 삶의 방향을 바꿔주신 특별한 분이 있어요. 바로 이동통신용 교환기 CMS-MX 개발 기간 동안 부장님으로 실장을 겸직하셨던 이헌 부장님이신데요. 1994년 2월 말 CDMA 제어국 실장을 맡아 달라는 부장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이동통신기지국연구부의 통화제어실에 연구실장으로 합류하게 됐어요.

1999년 말에는 채종석 본부장님의 권유로 IMT-2000본부의 이동통신기지국연구부 부장을 맡게 됐습니다. 두 분 덕분에 이동통신 분야 핵심 연구개발 사업의 사업 책임자 역할을 맡게 된 기회가 됐죠.

박사님께 와이브로(WiBro)는 뗄 수 없는 기술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와이브로 개발 당시 기억에 남았던 순간은 무엇인가요?

삼성전자·KT·SKT·KTF·하나로텔레콤 컨소시엄이 연간 120억씩 3년간 민간 연구비를 투자하는 과제의 총괄 사업 책임자를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땐, 당황스러웠어요. 사업 기획에 참여하지 않았던 만큼 부담을 느꼈고, 당시 소장님이셨던 한기철 소장님이 총괄 사업 책임자를 맡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죠.

와이브로 기술의 국내 표준화를 위해 TTA PG302 표준화 그룹이 결성되고, 정보통신부의 긴급 현안 회의가 시작됐습니다. 미국 상무부는 한국의 와이브로 국내 표준화가 자국 통신 시장을 폐쇄적으로 운용하는 수단으로 판단해 WTO 규약 위반이라는 항의 서한을 보냈어요. 이에 정보통신부와 TTA, 삼성전자, KT, SKT, KTF, 하나로텔레콤 등의 관계자들이 대책 회의를 진행했어요.

2004년 WiBro 첫 통화 성공 기념사진 (왼쪽부터) 안지환 대표, 삼성전자 조세제 전무

이 과정에서 미국의 무선통신 사업자 스프린트와 넥스텔과 공동 표준안을 만들기로 했어요. 미국의 무선통신 사업자와 단말에 이동성 기능을 추가하고, 주파수 대역폭을 10MHz로 하는 광대역 OFDMA 기술 요구를 반영하는 표준화를 미국의 IEEE 802.16의 WiMAX 표준에 동시 진행하면서 미국 상무부의 문제 제기에 대응하기로 했죠. 2003년 미국 상무부의 이의 제기에서부터 정보통신부의 지원 하에 한국과 미국의 표준 협력 네트워크를 결성해 미국 정부를 설득하고, 미국 정부의 지원 하에 2007년 와이브로 기술이 이동통신 표준으로 채택되는 성과를 거두기까지 많은 연구원의 노력과 정부통신부의 지원, 삼성전자의 지속적인 연구비 지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왼쪽) 2005년 WiBro 시연 노무현 전 대통령 방문 기념사진(3번째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안지환 대표), (오른쪽) WiBro 성과발표 당시 모습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께 와이브로 성공 시연을 준비하며 동료 연구원들이 전적으로 믿고 함께한 시간, 2005년 11월 부산 에이펙 총회 기간 와이브로 시연을 준비하던 중 삼성전자의 요청으로 기지국 간 소프트핸드오버 기술을 완성해야 했던 순간도 생생합니다.

OFDMA 통신 기술은 사용 주파수를 90도 위상 지연으로 중첩해 주파수 사용 효율을 높이는 것이 핵심인데요. 인접 기지국 간 소프트핸드오버가 되지 않으면 통화가 끊기고 주파수 이용 효율이 크게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거든요. 저희 팀의 제안으로 소프트핸드오버가 가능하게 돼 와이브로의 OFDMA 기술이 완성됐고, 3세대, 4세대, 5세대 기술로 확장하는 기반이 됐죠.

와이브로 시스템은 삼성전자의 과감한 결단과 투자가 있어서 2003년부터 3년간, 이후 와이브로 이볼루션에 3년간 연 100억 원의 연구비로 연구개발을 지속할 수 있었어요. 2006년부터는 미국, 인도, 러시아 등 24개국에 수출하며 국내 최초의 독자 기술로 이동통신 강국의 기반을 구축했죠. 그러나 이후 정보통신부의 해체와 제4이동통신사업자 불발, 삼성전자의 사장 교체 과정을 겪으며, OFDMA-TDD 방식인 와이브로는 산업화에서 OFDMA-FDD 방식의 LTE에 길을 열어 주는 데 만족해야 했어요. 독자 시장 확장을 지속하지 못한 것에 대해 함께 노력했던 동료들께 아쉬운 마음을 전합니다.

박사님의 좌우명은 무엇인가요?

농경사회의 대가족 환경에서 자라 대학을 졸업한 뒤 연구소에서 36년간 좌우명 없이 맡은 일에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는 생각이 드네요.
ETRI에서 퇴직하고 삶을 되돌아보면서,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이니 앞으로 연구소 근무 기간만큼의 시간이 주어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은 여정은 신으로부터 창조됐지만, 자유로운 선택과 의지를 통해서 스스로 창조한 나를 만나는 길에서 소박하게 살아가고자 해요.
그래서 요즘 좌우명은 ‘세 번째 길을 가자’예요. 첫 번째 길은 어렸을 때 대가족 속에서 가족 구성원으로 살아갔던 가족의 길이고, 두 번째 길은 ETRI에서 근무했던 직장의 길이에요. 세 번째 길은 나를 찾아가는 ‘나의 길’인 거죠.

ETRI 연구원들에게 선배로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들려주세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제가 고향에서 지낸 20년은 농경사회로, 노동력으로 유지되는 사회였어요. 농경사회는 노동력이 필요해 사람 간의 협동으로 어울려 살아온 사회였다고 생각해요. 노동력이 기계로 대체된 산업화 이후의 사회에서 무엇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자주 자문하고 있습니다. 직장 동료 간에, 선후배 간에 자유롭게 어울려 살아가는 과정에서 각자 개인이 추구하는 꿈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2004년 친구들과 클라이밍을 시작하며 2005년 일본의 북알프스 정상에서 위급상황으로 1박을 하기도 했고, 2006년 네팔의 안나푸르나 서킷 트래킹으로 5,400미터의 고산 트래킹, 2011년 3월 네팔 랑탕리룽 트래킹을 마치고 카트만두에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접하기도 했어요. 설악산의 바윗길에서 많은 여름을 보냈고, 어느 해 여름에는 설악산 천화대 릿지의 범봉을 넘기도 했네요. 동료와 기술을 나누고, 취미를 함께하는 어울림 있는 생활을 하시길 바랍니다.

꿈을 꾸는 삶은 아름답다.
바람을 가꾸어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오늘 나의 바람을 가꾸어 가자.

동료들과 함께한 네팔 랑탕리룽 트래킹

ETRI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국가 출연연의 시작이자 목적은 기술 국산화일 텐데요. 이제 성년의 연구기관으로써 지역사회와 국가사회, 국제사회에 존재 이유와 무엇으로 이바지할 것인지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눈앞의 목표보다는 목적에 부합하는 기관으로 지속적인 성장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ETRI는 자타가 인정하는 ICT의 심장이라고 생각해요. 세계 시가 총액 100위 기업이 30년 이내에 출현하는 새로운 역사가 써지길 기대해 봅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조그마한 공동체를 만들고 싶은 게 꿈이에요. 두 사람의 책을 인상 깊게 읽었는데요. 하나는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라는 책이에요. 그 책에는 과학 얘기는 별로 없고, 과학자들이 어떻게 교류했는지에 대해 나오거든요. 일례로 닐스 보어가 자신의 저택에 하이젠베르크를 초대해서 연구와 관련된 질문들을 자유롭게 주고받으며 지식적 교류를 하는 장면이 나와요. 친목 도모도 하면서, 기술적인 대화도 편하게 나누는 거죠.

또 하나는 화이트헤드의 『과정과 실재』라는 책이에요. 좀 난해하긴 하지만, 과거의 대가들이 만들어놓은 이론이 무조건 옳다라는 생각을 깨주는 책이죠. 과학 하는 힘은 여기에 있다고 봐요. 계속해서 질문하고, 기존의 이론에서 오류가 발견됐을 때 계속 관찰하고 연구해서 나만의 새로운 이론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정신 같은 것 말이죠.

그래서 형식적인 콘퍼런스나 심포지엄과 같은 행사가 아닌 자유로운 ‘교류와 협력’의 공동체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과학적인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는 그런 공동체 말이죠. 이런 공동체 속에서 ‘함께하는 것’을 삶의 보람으로 살아가 볼까 해요.

안지환
충남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82년부터 2020년까지 ETRI TDX개발단, 교환기술연구단에서 TDX 호처리 소프트웨어 개발과 CDMA의 소프트웨어 개발에 힘썼다. 또한 통화제어연구실 팀장, 기지국기술연구부장, 기가통신연구부장을 역임하며 WDCMA 기지국 시스템과 WiBro 시스템 연구개발을 이끌었다.
2020년 4월부터 ㈜세드나의 대표이사로 현재까지 기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2024년 비영리법인 ‘대덕연구개발기술융합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