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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조각을 만나다

키네틱 아트

‘모빌의 삶은 기쁨과 경이로움으로 춤추는 한 편의 시’라고 말했던 알렉산더 칼더.
그는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접했던 모빌을 최초로 만든 작가다.
조각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미술계에 새바람을 불어 넣었던 칼더.
그로 인해 키네틱 아트가 시작됐다.

공대생이 미술계에 불러일으킨 혁명

알렉산더 칼더, <Untitled>, 1955, 43 x 59in
출처: Shutterstock-Pixelsquid / Shutterstock.com

조각가인 아버지와 화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알렉산더 칼더. 미술계에 자연스럽게 입문할 만도 하지만 어릴 적부터 기계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스티븐스 공과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에는 자동차 기술자, 기계 판매원, 능률 기사, 도안사 등 다양한 직업군에서 평범한 엔지니어로 살아왔다.

칼더가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은 1923년 뉴욕의 미술학교인 아트스튜던츠 리그에서 회화를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이후 파리로 넘어가 작가 활동을 지속해 나가며 몬드리안, 호안미로, 마르셀 뒤샹과 어울리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받게 된다. 특히 몬드리안의 작업에 영감을 얻은 칼더는 ‘몬드리안의 작품을 움직이게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모빌(Mobile)의 최초적 영감인 것이다.

칼더는 본인이 작업하고 있던 추상화 작업을 조각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움직이는 조각을 만들기 위해 가벼운 재료인 금속과 철사를 사용했고, 땅에 세워놓는 것이 아닌 천장에 매다는 방식을 선택했다. 새로운 형식의 조각이 세상에 등장하자, 기성품이었던 변기를 작품으로 승화시킨 것으로 유명한 마르셀 뒤샹은 칼더의 조각에 모빌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조각의 무게중심을 찾다

사실 뒤샹은 칼더가 작업하기 이전부터 움직이는 조각을 만들기 위해 작업에 힘썼다고 한다. 본인의 작품을 위해 모빌이라는 이름을 미리 지어놨지만, 칼더의 혁신적인 움직이는 조각을 본 뒤샹은 모빌이라는 이름을 칼더에게 넘겨줬다. 얇은 철사와 금속 도형으로 구성된 칼더의 모빌은 무게중심을 파악해 도형을 배치해야 한다는 특징이 있다.

무게중심(Center of Gravity)은 물체의 각 부분에 작용하는 중력이 모이는 작용점이다. 물체의 무게가 공평하게 나눠지는 지점인 것이다. 도형뿐만 아니라 모든 물체는 단 하나의 무게중심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평면도형을 사용한 칼더는 모빌의 끝에 달린 도형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무게중심을 찾으며 작품을 완성해나갔다.

칼더는 본인이 만든 모빌을 ‘움직이는 회화’라고 표현했다. 칼더의 모빌은 특별하다. 작품을 스치는 바람과 관람객의 움직임에 모빌은 시시각각 다른 형태를 보여준다. 이때 빛을 받아 반짝이는 철제 조각과, 불규칙적으로 만들어지는 그림자를 감상하는 것도 감상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요소가 된다.

칼더의 모빌들

알렉산더 칼더, <Black Elephant>, 1973, 33.5 x 48.0cm
출처: Shutterstock-Pixelsquid / Shutterstock.com

칼더는 작품 활동 기간인 50년 동안 약 2만 4천여 점의 작품을 조수 없이 혼자서 제작해 왔다. 부지런히, 그리고 성실하게 작품을 만들어낸 그의 작품을 감상해 보자. 칼더는 1925년 뉴욕의 잡지사에서 의뢰한 서커스 장면 스케치 작업 외주를 맡게 되는데 그 연장선으로 서커스의 동물들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검은 코끼리>도 연작 중 하나로 빨강, 파랑, 노랑의 색을 사용해 해, 달, 별을 표현했고, 검은색으로 코끼리의 모양을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칼더의 또 다른 작품인 <Snow Flurry, I>는 작품명대로 눈보라를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이다. 천장에 걸린 하얀색 원형 조각들이 미세한 공기의 흐름에 흔들리면 눈이 내리는 것처럼 우아하게 움직인다. 이 작품의 백미는 조각이 만들어내는 원형 그림자다. 벽에 새겨지는 원형 그림자는 모빌이 움직일 때 함께 흔들리며 눈송이의 움직임을 더 극대화한다.

“대다수 사람에게 모빌은 단지 움직이는 평면체일 뿐일 것이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에게는 시(詩)가 될 수 있다.”라고 말한 알렉산더 칼더. 오늘은 ‘균형 잡힌 물체’ 너머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칼더의 모빌을 통해 상상력을 펼쳐보는 것은 어떨까. 조각의 틀을 부순 칼더처럼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우리를 건드릴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