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RI가 개발한
전자코란?
특별히 냄새를 잘 맡는 사람에게 ‘개코’라는 별명을 붙이곤 한다. 개는 사람에 비해 1만 배 이상 냄새를 더 잘 맡는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의 특징을 이용해 공항에서 마약 탐지나 농산물 지킴이로도 활용하기도 한다. 인류는 수십 년 전부터 개처럼 뛰어난 후각을 구현하기 위한 센서 연구를 진행해 왔다. 전자코를 개발한 연구진을 만나 최신동향과 기술개발 스토리를 들어보자.
‘전자코’는 사람의 코가 냄새를 맡는 것에 착안하여 냄새가 들어오면 센서로 감지하고 식별하는 원리를 이용한 장치입니다. 센서들이 냄새에 반응해 전기적 신호로 변환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며 인공지능을 통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인 셈입니다. 예를 들면 냄새로 질병 유무를 판단하고 검진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겁니다. 이는 ‘바이오 미메틱(Biomimetic)’이라고 해서 생체 모방기술 이라고도 불립니다.
ETRI의 경우 ‘전자코’를 폐암에 적용했습니다. 폐암을 진단할 때 사용되는 비침습적 검사 즉, X-선·CT·MRI의 경우 방사선에 노출되는 위험이 있습니다. 이에 연구진은 입으로 불어서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 빠르고 안전하면서도 저렴하고 정확한 검사를 할 수 있는 ‘전자코’ 기술을 개발한 것입니다.
아울러 연구진은 장비개발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분당서울대병원과 함께 실제 환자 200여 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했으며, 그 결과 정확도가 75% 이상으로 나왔습니다.
현 전자코 시스템의
기술단계와
보완점은?
사람의 오감 중 그동안 시각, 청각, 촉각은 물리 센서로 물리량을 구현하는 부분은 기술개발이 많이 완성된 상태입니다. 가령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에도 카메라, 마이크로폰, 터치 센서가 들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비해 생화학적으로 구현하는 미각과 후각의 경우, 연구개발이 더딘 편입니다. 화학적 반응이기 때문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날숨 전처리, 센서 기술에다가 인공지능 딥러닝을 활용해 정확도를 계속 개선해 나가고 있습니다. 사람도 예전에 맡았던 냄새를 기억하듯, ‘전자코’에도 냄새를 기억할 수 있게 학습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정확도 향상을 위한 기계학습 방법들을 고도화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ETRI는 현재 개발한 ‘전자코’를 병원 의료기기용으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의료기기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정확도 및 특이도가 아주 중요합니다. 의료진들에 의하면 정확도가 90% 이상이 되어야 의료기기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확도에 대한 부분을 계속 연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연구진이 제작한 시제품은 추가적으로 성능개선이 필요합니다. 일단 냄새 양의 농도가 매우 낮기 때문에 그걸 감지할 수 있는 고감도, 특이성 특성을 가진 센서 개발이 필요합니다.
현재 ETRI는 3차원 나노 금속산화물 기반 고감도 고선택성 고기공 나노센서 소재 연구를 KAIST와 같이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센서의 신호를 빅데이터로 처리해서 정확하게 학습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인공지능 알고리즘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런 최적 알고리즘 기술개발을 통해 성능이 개선되면, 향후 의료기기로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현재 실용화를 위한 연구소기업 설립도 추진 중입니다. 연구개발이 빨리 되면 좋겠지만 의료기기라는 것이 성능 평가뿐만 아니라, 안전성 평가 및 임상 적용을 해야 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처 인·허가를 얻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런 정규적인 실용화 절차를 생각해 볼 때 대략 3~5년 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자코의 적용 분야와
상용화 기대효과는?
유럽의 경우, 와인의 산지 구별 혹은 숙성도를 확인하는 데 사용되고 있으며, 곡물의 보관상태 조사에도 ‘전자코’가 활용됩니다. 또 과일에도 질병이 있는지 확인하는 등 식품 분야와 군사용, 폭발물이나 화생방 가스, 마약 감지 등 분야에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공항에 가면 마약 탐지견이 있는데요. 사람보다 개의 후각 신경이 만 배는 앞서지만, 개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30분이 지나면, 후각 감각이 포화되어 냄새를 맡기 어려워집니다. 이 때문에 공항에서도 통상 30분 간격으로 탐지견을 교대한다고 합니다. 미래에는 개의 역할들이 전자코로 대체되어, 마약 모니터링용으로 공항에서 사용될 날이 올 것이라 기대됩니다.
코로나19 같은 질병에도 활용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스라엘 나노센트(NanoScent) 기술보고에 의하면, 호흡기 질환인 코로나19에 걸리면 특이 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따라서 콧김을 불어 모은 냄새만으로도 코로나19 환자인지 아닌지 1분 내에 식별 가능했다고 보고한 바 있습니다.
‘전자코’ 상용화를 통한 가장 큰 기대효과는 국민건강 증진에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고령화 시대로 갈수록 국가 의료부담은 커집니다. 질병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으면 손쉽게 치료가 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의료 비용 절감이 가능해집니다. 이처럼 고령화 시대에는 빠른 진단을 통해 질병을 조기에 치료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암도 초기에 잡으면 치료가 쉽듯이 말입니다. 폐암의 경우에는 암 중에서 사망률이 매우 높은 편이라, 보통 아파서 병원에 가면 3~4기로 무서운 질병입니다. 또 3~4기일 경우 통상적으로 사망률이 70% 이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1~2기에 잡으면, 생존률이 70% 이상으로 올라가게 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초기에 잡으면 쉽게 치료할 수 있기 때문에 의료진도 ‘전자코’ 기술에 많은 관심을 보입니다.
또 예후 모니터링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대부분의 암은 재발에서 90% 이상 사망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암 수술을 하고 나면 3년~5년 주기로 생존율을 봅니다. 가령 3개월에 한 번씩 CT를 찍거나 이 외에 다른 검사를 하는데, 비용도 비싸고 방사선 노출 및 검사 절차도 번거롭습니다. ‘전자코’는 입김만 불면 되기 때문에 사용하기 쉽고 간편하고 안전하여 예후 모니터링에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전자코’를 실용화해서 건강검진센터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오시는 분들이 사용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피검사, 소변검사 하듯이 입김을 불면 특정 질환과 관련된 고위험군을 조기에 걸러 내는 것이죠.
향후
진단치료기연구실의
연구 방향은?
현재 ETRI 진단치료기연구실은 폐암 진단을 계속 진행 중이고 다이어트 모니터링에도 활용 가능한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운동을 하게 되면, 지방이 타게 되는데 입에서는 달콤한 냄새가 납니다. 그런 냄새를 감지해서 지방이 타기 시작하는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죠. 사실 지방이 연소되기 시작하는 시간은 사람에 따라, 운동량에 따라 다릅니다. 휴대용으로 간편하고 정확하게 이를 측정할 수 있는 장치가 아직 없습니다. 그런데 ‘전자코’ 기술을 활용케 되면 다이어트가 시작되는 타이밍을 적시에 알려줄 수 있게 됩니다. 다이어트 계획과 운동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이 외에도 앞서 말씀드린 마약 탐지 분야,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 감지 분야에서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그리고, 대기 혹은 실내 공기질 모니터링 등 다양한 응용 분야에서 선진국을 중심으로 연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Editor epilogue
마지막으로 최종 목표와 계획을 묻자 이대식 책임연구원은 “제가 전자코 시스템을 20년 이상 연구해 왔습니다.”라며, “그간 원천기술 연구만 주로 다루었는데, 이젠 일부 성숙한 연구 분야에서는 실용화 단계로 이어져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그의 말처럼 의료용 전자코를 상용화하기란 쉽지 않다. 의료기기는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로 식약처 허가는 물론 임상시험, 안정성 평가 등 넘어야 할 난관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ETRI 진단치료기연구실은 이번 폐암 발병 여부를 진단하는 전자코 기술개발을 통해 그 가능성을 보았다. 진단치료기연구실은 전자코를 발판으로 세계 최초 산업화로 나아가는 첫 발걸음을 뗀 셈이다. 그들은 계속해서 시스템 정확도를 고도화하고, 폐암을 넘어 다양한 암에 대한 동시 진단에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