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각 구현을
도와줄 ICT
후각은 시각과 청각, 촉각보다도 먼저 갖춘 인간의 감각 중 가장 오래된 감각이다. 그러나 정작 인간의 감각을 대체하는 기술 중 후각 분야 센서 개발이 가장 늦어지고 있다고 한다. 후각 수용체 유전자 종류만 해도 약 400여 개며 수용체 한 종류가 하나의 냄새만 맡지도 않고 뇌를 통한 종합 판단이 필요할 정도로 냄새를 맡는 과정이 생각보다 복잡한 탓이다. 과연 ICT는 인간의 후각을 구현하는데 성공할 수 있을까?
인간에게나 동물에게나 냄새를 맡는 후각 감각은 매우 중요하다. 인간의 후각 능력은 환경오염 물질, 매연, 독성 물질에 대한 경계를 잘 수행하도록 도와주기도 하며, 음식을 즐기고 돕고 달콤한 냄새를 음미하도록 해준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좋은 경험과 추억에도 후각은 영향을 미친다.
생리학적으로 냄새를 맡는다는 것은 가스 형태로 들어오는 입자가 콧속의 후각 수용체를 화학적으로 자극하고 후각 신경을 흥분시켜 뇌의 측두엽 안쪽에 위치한 후각 중추에 신호를 전달하는 행위다. 쉽게 말해 콧속으로 들어오는 냄새 입자를 식별하는 셈이다. 하지만, 인간의 후각 능력은 대부분 포유류나 파충류에 비해 매우 떨어진다. 가령 개의 후각은 비상해 사람의 후각보다 최대 10만 배나 예민하다. 군견들은 폭탄의 위치를 정확히 찾아낼 수 있을 정도다.
이처럼 인간의 낮은 후각 능력을 ICT를 기반으로 보완할 수 있다면 많은 분야에 활용이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이 지능형 후각 센서다. 지능형 후각 센서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냄새 분자가 미세 전류가 흐르는 센서에 닿을 때 전기적 특성이 변화하는 성질을 이용한다. 냄새 분자와 결합하면 색이 변하는 물질을 이용하는 방식도 있다.
개의 후각 능력을 이용해 질병을 찾아내는 것과 같이 개발 중인 지능형 후각 센서가 질병 진단에도 쓰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미 환자의 날숨을 분석하여 폐암 질병 및 관련 바이오마커(Bio-marker)를 진단하는 지능형 후각 센서 기술 등이 보고되고 있다.
호흡 이용해
폐암 찾는
‘전자코’
최근 국내 연구진이 날숨을 통해 폐 속 암세포가 만드는 휘발성 유기화합물을 감지하는 센서와 이로부터 얻은 데이터를 통해 폐암 환자를 판별하는 기계학습 알고리즘 기술을 개발했다. 본 기술은 국제학술지 ‘센서&액추에이터B(Sensors and Actuators B)’에 게재되면서 그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연구진은 사람의 코가 신경세포를 통해 냄새를 맡는 것에 착안해 데스크톱 날숨 샘플링부, 금속화합물 화학 센서 모듈, 데이터 신호 처리부 등 컴퓨터 크기로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 기술을 개발했다. 전자 센서 소자를 이용해 마치 사람의 코처럼 냄새를 맡아 전기적 신호로 바꾸고 질병 유무를 판단, 검진하도록 만든 기술이다. 연구진은 본 기술을 ‘전자코’라 명명했다.
ETRI가 개발한 기술을 활용하면 사람의 호흡만으로 간단한 검사가 가능하다. 우선 검진자의 날숨을 비닐 키트에 담는다. 날숨이 찬 비닐에 탄소 흡착제 등을 기반한 샘플링 모듈로 호흡 중 배출되는 여러 가스 성분들이 포집된다. 다시 이 모듈을 ‘전자코’ 시스템이 집어넣고, 시스템을 구동하면 내장된 센서를 통해 가스가 붙은 정도에 따라 전기 저항 신호가 달라진다.
이렇게 날숨의 구성성분 데이터를 알고리즘으로 분석해 환자의 날숨 정보와 비교하면 폐암 유무를 판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연구진은 분당서울대병원의 도움으로 폐암 환자 37명과 정상인 48명 날숨을 채취해 200회를 분석한 뒤 데이터베이스화했다. 이를 기반으로 기계학습 모델을 개발하여 본 시스템을 이용하여 동 병원 흉부외과 연구팀의 임상적 유의성도 확인해 약 75%의 정확도를 보여서, 폐암 환자 진단 보완재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특히 ETRI의 기술은 기존 병원 진단 장비에 비해 센서 제작 비용이 저렴하고 가격 대비 정확도가 높다. 편의성도 우수해 폐암 환자의 수술 예후 모니터링은 물론, 일반인의 자가 건강 관리에도 활용할 수 있다.
연구진은 후속 연구를 통해 환자 정보를 추가로 얻어 빅데이터를 구축하고 딥러닝 알고리즘을 적용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판별 정확도를 높이고 위암, 대장암 등의 다양한 암의 조기 진단 가능성도 추가 연구할 계획이다. 또한, 비만 환자가 운동할 때 지방이 분해되면서 날숨으로 배출되는 단내(아세톤)를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웨어러블 전자코 시스템’을 개발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현재 본 기술에 관심을 보인 한 기업체에 기술이전 및 연구소 기업화를 추진 중이다.
디지털 후각
인터페이스를
꿈꾸다
지난 2018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위해요소감지BNT 연구단에서도 바이오 나노 센서를 이용한 전자코를 만들었다. 본 기술을 활용해 냄새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 수 있다면, 거꾸로 냄새를 만드는 것도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또 2016년 프랑스 센서웨이크(Sensorwake)에서는 향기로 사람을 깨우는 알람 시계를 개발했다. 냄새는 미각까지 이어져 미국 스타트업 바쿠소(VAQSO)에서는 향기 카트리지를 이용해 VR에서 맛을 느끼는 장치를 선보였다.
이처럼 냄새를 맡는 전자코와 냄새를 전달하는 지능형 후각 센서 기술이 만난다면, 디지털 후각 인터페이스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후각 인터페이스의 등장은 우리가 생활 환경을 긍정적으로 제어할 힘이 된다. 가령 지금과 같은 코로나19로 인해 집안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할 때, 청량한 바다 냄새나는 여행지로 떠나는 영화를 볼 수 있다면, 답답함이 조금은 해소되지 않을까? 또는 냄새로 질병을 규명하듯, 냄새를 통해 빠르고 간편하게 코로나19 확진자 검사도 가능케 될 것이다.
모든 연구가 그렇듯, 전자코가 나아가야 할 방향도 정해져 있다. 더 싸고 저렴하고 감도가 좋아져야 한다. 스마트폰에 탑재할 정도로 작아지면 그 활용도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연구진은 25년째 바이오+ICT 연구를 꾸준히 병행 중이다. 연구진의 오랜 노력이 자연을 완벽하게 흉내 내는 결과물로 탄생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