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TV나 디스플레이 등은 정보 전달이 한 방향으로만 가능했다. 내가 TV에 명령을 내리거나 정보를 입력하는 것은 어려웠다. 물론 압력을 인지해 터치하는 디스플레이나 모션 인식 기능의 리모컨이 있었지만, 사용이 불편하고 인식이 잘되지 않았다. 이러한 형태를 사용자와 양방향 인터랙티브의 초기 버전으로 본다면, 위 연구 성과는 앞으로 훨씬 더 고도화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한 셈이다. 그동안 나의 위치를 기반으로 리모컨을 이용해 좌우 상하를 구분하던 기존 방식에서 사용자가 레이저 포인터와 같은 빛으로 정보를 입력한다는 것이다. 이 방식은 위치 인식 정보에 비해 훨씬 더 정교한 입력이 가능하다. 이 기술은 향후 빛으로 쓰는 전자칠판이나, 빛과 동작을 인식하는 자가 충전 디스플레이, 동작 인식 스크린, 빛으로 데이터를 송수신하는 라이파이(Li-Fi) 디스플레이 등에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연구는 국내 ETRI 연구원과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교, 다우(Dow) 사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 아령 모양의 반도체 양자점을 이용하여 LED 발광 특성 및 광 감지 능력이 뛰어난 광반응 디스플레이를 구현해냈다. 이 연구 성과는 2017년 2월 세계적인 학술지 <사이언스>에 게재되기도 했다. 당시 언론에서 많은 관심을 보여, 필자가 논문의 주저자 가운데 한 명인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오누리 박사와 스마트폰으로 인터뷰하여 언론에 제공했던 기억이 난다. 이 연구에서 사용된 물질은 최근 각광받고 있는 ‘양자점’이다. 자체적으로 빛을 발하는 수십, 수백 나노미터(nm) 크기의 반도체 결정이다. 이미 국내 TV 제조업체들은 QLED라는 이름으로 LCD 패널과 LED 백라이트 사이에 사용 중이다.
양자점의 특성은 코어(core)와 쉘(shell) 구조의 구형(球形)이며, 일반적으로 에너지 차이는 코어 부분이 작고 쉘 부분이 크다. 양자점은 큰 에너지의 빛을 선택적으로 에너지 차이에 해당되는 빛을 방출 또는 흡수하기 때문에 태양전지, LED, 광 검출기와 같은 광전자 소자 등에 응용된다. 하지만 이런 구형의 양자점은 주입된 전자와 정공을 다시 분리하거나 추출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진은 ‘이중 이종 접합 나노막대 양자점’을 연구해 개발했다. 나노막대 끝에 코어와 쉘 구조의 양자점이 마치 아령처럼 붙어 있는 구조다. 아령 모양의 양자점은 비대칭적인 에너지 차이를 갖고 있다. 대칭적 구조의 구형이며 코어와 쉘 구조의 양자점과는 다르다. 따라서 효율적인 전자와 정공 주입 및 추출이 가능하다. 두 개의 이종 접합으로 인해 전자와 정공의 운반이 독립적으로 조절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연구진은 아령 모양의 양자점으로 발광은 물론 광 검출 특성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따라 다양한 분야에 응용할 수 있다는 것을 검증하기 위해 ‘1inch×1inch’ 기판에 100개의 픽셀을 제작해 특성을 평가했다. 이처럼 연구진은 양자점을 아령 구조로 변경함으로써 에너지를 잃으면 빛을 방출하는 LED의 원리와 이와 반대로 빛 에너지를 얻으면 전류가 흐르는 광센서의 원리를 이용했다. LED와 광센서 역할을 하는 다기능 소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기기를 만든 것이 이 기술의 핵심이다. 쉽게 말해 기존 QLED 기술과는 다른 형태의 새로운 양자점을 이용해 합성하는 기술이다. 기존과 달리 LED가 빛을 방출하는 것뿐만 아니라 빛을 흡수하기도 해서 센서처럼 빛을 감지하는 소자를 개발한 것이다. 그 결과 빛이 없는 환경에서 LED가 자동으로 밝아질 수 있게 된 셈이다. 광량을 자동 조절하는 것이다.
이 연구에서는 레이저 포인터로 외부 빛을 가정해 활용했다. LED 픽셀에 빛이 들어오는 것을 감지하면 픽셀마다 외부의 전기적 신호가 들어오도록 했다. 따라서 실제 연구진이 만든 패널의 경우 펜이나 손가락의 터치 없이도 글씨 쓰기가 가능하다. 연구진은 연구 과정을 촬영한 동영상을 통해 패널에 선명하게 레이저 포인터가 비추는 영역을 따라 ‘UI’ 글씨가 표현됨을 보여주었다. (UI는 개발에 참여한 연구진의 모교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교의 약칭이다) 레이저 포인터로 픽셀에 빛을 쪼일 때마다 해당 픽셀에 불이 들어오는 것을 통해 빛에 감응하는 소자 기술을 성공적으로 구현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전자칠판이나 디스플레이 등에도 잉크나 펜을 통한 판서가 아닌 새로운 방법의 글쓰기가 가능할 전망이다.
이처럼 발광·감지의 이중 기능은 하나의 LED 픽셀이 다른 쪽 LED 픽셀과도 빛을 주고받는 가시광선 통신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진은 LED 빛의 깜박임을 통해 두 LED 픽셀이 서로 데이터를 주고받는 속도가 50kHz(킬로헤르츠)까지 가능하다는 것을 성공적으로 증명하기도 했다. 이것은 픽셀 수가 증가함에 따라 데이터 전송 속도 또한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빛을 이용한 통신인 라이파이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연구진은 양방향 빛 감응 디스플레이가 태양전지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증명했다. 4개의 픽셀을 직렬로 연결해 전기 충전하면 충전된 에너지로 해당 픽셀들의 불이 다시 켜지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 자가 충전이 가능한 양자점 LED 구현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 연구진은 이 기술을 바탕으로 나노 입자의 구조 및 성분을 조절해 발광 및 광 감지 효율을 높이려 노력하고 있다. 또 에너지 변환 효율이 더욱 좋은 디스플레이 장치를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상용화 시점은 5~10년 내로 보고 있다.
ETRI는 “디스플레이의 발전은 향후 미래의 주된 먹거리가 될 것이고 연구 방향 또한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ETRI는 이미 디스플레이에 사람의 생체정보를 입력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스마트폰의 지문인식 기능은 패널이 불투명하기에 적용이 어려워 별도의 버튼이나 뒷면을 이용한다. 따라서 투명한 터치패널과 보안 센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생체정보의 인식이 고도화된다면 지문 외에 정맥 인식도 자연스레 이뤄질 것이다. 아울러 ETRI 연구진은 ‘촉각 디스플레이’에도 관심을 보인다. 디스플레이는 시각적인 것(vision)이라는 기존 공식을 깨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욘드 비전(Beyond Vision)’을 목표로 연구 중이다. 인간의 감각을 깨우는 디스플레이에 주력하겠다는 포부다. 촉각을 디스플레이 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감각을 DB화하여 정량화해야 한다. 이 작업이 매우 어렵다. 이 기술이 구현되면 원거리에 있는 사람에게 나의 감각, 예컨대 ‘사물이 부드럽다’ 같은 감각을 녹화하여 오감을 재현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른바 ‘촉각 통신(Tactile Communication)’이다. 이 기술은 팔다리가 절단된 환자에게 감각을 재현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의수(義手)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손가락으로 물건을 집는 감각을 되살려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즉 사람의 오감을 가상으로 느끼도록 촉각을 전달해주는 장치를 개발 중이다. 지금까지 로봇은 휴머노이드를 목표로 개발해 왔지만, 인간과 똑같은 감각을 갖는 로봇을 개발하는 것은 아득히 먼일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인간과 똑같은 감각을 지니는 로봇 연구가 진행 중이다.
ETRI 연구진은 브레인(Brain) 디스플레이 개발도 계획하고 있다. 디스플레이에 센서를 더해 뇌파를 전극으로 센싱 하여 고해상도로 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실제 내가 꾼 꿈을 고해상도로 녹화하는 장치도 개발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두뇌 센서 어레이(Sensor Array)’를 만든다는 것이다. 꿈이 눈앞에 나타나는 순간이 점차 다가오고 있다.
본 글은 ETRI가 2018년 발행한 Easy IT시리즈 “세상을 바꿀 테크놀로지,『디지털이 꿈꾸는 미래』”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저자 ETRI 성과홍보실·정길호 출판사 콘텐츠 하다
ETRI가 펴낸 『디지털이 꿈꾸는 미래』는 우리에게 제4차 산업혁명의 의미를 알려주고, 다양한 ICT 트렌드를 소개하여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흥미롭게 조망해 보는 책입니다. 본 도서는 예측 불가능하고 더 빨라진 기술 세상에서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적응하고 미래의 위험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데 좋은 지침이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