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말 우리나라를 휩쓸고 지나간 비트코인 투기 광풍으로 그 원천 기술인 ‘블록체인(Block Chain)’에 대해서도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물론, 이와 같은 현상으로 본래 의미까지 훼손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블록체인이란 데이터를 분산처리하는 ‘탈중앙화’를 핵심으로 한 기술로, 비트코인 외에도 다양한 산업과 연계되어 무궁무진한 확장성을 기대할 수 있다. 그렇다면 블록체인 기술이 불러올 혁신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블록체인의 사전적 정의는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디지털 장부에 거래 내역을 투명하게 기록하고, 여러 대의 컴퓨터에 이를 복제해 저장하는 분산형 데이터 저장기술’이다. 다소 복잡하게 들릴 수 있지만, 용어의 기본 개념을 잘 들여다보면 정보보호와 깊은 관련성이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먼저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디지털 장부’라는 말의 의미부터 살펴보자. 사실상 공개되고 공유된 기록은 조작이나 왜곡이 어렵다. 이 때문에 블록체인에서도 변조나 왜곡을 막기 위해 ‘블록(Block)’ 단위로 생성되는 기록을 여러 장소에 나눠(분산) 저장한다. 따라서 블록체인에선 해킹이 불가능하고, 정보가 온전하게 저장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디지털 장부’란 컴퓨터에 저장된 기록물을 뜻한다. 실제로 컴퓨터는 현대인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컴퓨터의 도입은 일상의 자료를 쉽게 저장하고, 복사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은 복사된 자료와 원본 간 품질 차이마저 없애버리면서 약점으로도 작용하기도 한다. 누군가 악의를 갖고 기록을 조작하거나 잘못된 기록을 남겨도 수정된 사본과 원본 간 차이가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암호 SHA-256 기반의 암호 ‘해시(Hash) 함수’를 사용한다. 이 때문에 블록체인에 처음 만들어진 기록이 제대로 보관되는 것이다. 특정 기록물을 본래대로 변치 않게 다룰 수 있는 기술이 갖는 영향력은 이미 비트코인 사례에서 확인했듯 상당하다. 이렇듯 블록체인은 기술이 가진 파급력을 토대로 일상의 각 영역으로 녹아들 준비가 한창이다.
해시(Hash)
해시함수는 어떤 데이터를 입력해도 같은 길이의 결과를 도출하는 함수
2018년 6월부터 기술개발이 이루어진 공공 블록체인 시범사업 6개가 본격화되면서 ‘제2의 인터넷’으로 불리는 블록체인의 가치가 조금씩 현실화될 전망이다. 먼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와 관세청이 협업한 ‘전자상거래물품 개인통관 시범 서비스’는 전자상거래업체의 주문 정보와 운송업체의 운송 정보를 블록체인에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이로써 시범사업을 통해 정보를 자동으로 취합해 정리하고, 서류의 위·변조 위험과 통관에 필요한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게 됐다. 즉 12시간 이상 소요되던 통관처리 방식이 블록체인을 통해 실시간으로 처리된 셈이다. 이를 통해 일평균 3만 6,000건에 그쳤던 통관처리량도 급증할 전망이며, 1건당 약 5일 이상 걸리던 통관절차도 2일 이내로 대폭 줄어들 예정이다.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진행 중인 ‘블록체인 기반 축산물 이력 관리 시스템 시범사업’은 2018년 12월 전북 농가를 시작으로 2019년 전국 지방자치단체로 확대될 예정이다. 이는 블록체인과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한 사업이다. IoT 디바이스로 수집된 정보를 블록체인에 자동 입력하고, 쇠고기 유통 단계별 이력 정보와 증명서를 블록체인에 저장·공유하는 시스템 구축 사업이다. 기존 시스템에서 쇠고기 이력 신고 규정은 5일 이내였으며, 신고 전에 문제가 발생하면 이력 조회가 어렵다는 한계점이 있었다. 하지만 블록체인과 IoT를 기반으로 실시간 유통 경로를 추적할 수 있어 한계점을 해결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블록체인을 통해 데이터를 입력하면 데이터 조작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축산물 등급 분류의 신뢰도도 크게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외에도 국토교통부에서 2019년 구축을 목표로 진행 중인 부동산 거래 블록체인 시범사업,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온라인 투표 블록체인 시범사업이 있다. 외교부에서는 국가 간 전자문서 유통에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할 예정이며, 해양수산부의 블록체인 시범사업은 컨테이너 관리와 운송업무에서 이루어질 전망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조폐공사와 주택공사 등 공공기관의 블록체인 기술 도입의 성과도 공개된다. 특히 한국조폐공사는 LG CNS와 손잡고, 블록체인 기반의 지방자치단체 암호화폐 플랫폼 개발에 착수한 상태다. 이처럼 정부의 규제 및 시장의 불안성으로 적극적이지 못했던 블록체인이지만, 올해부터는 공공이 나서서 기술을 뒷받침 하는 방향으로 달라질 전망이다.
현재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두 가지로 갈린다. 사기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마치 인터넷 초창기를 거치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ETRI 블록체인기술연구센터 박종대 센터장은 ‘4차 산업혁명과 블록체인 컨퍼런스’에서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의 핵심인 블록체인은 이제 막 시작한 단계에 불과하다. 이 기술이 성숙하면 미래 스마트사회에서 각종 서비스 인프라를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전문가들이 바라보는 블록체인의 전망은 다양하다.
블록체인은 금융을 비롯해 보험, 교통, 헬스케어, 에너지, 물류와 배송, 음악, 제조, IoT, 소셜 미디어 그리고 공공분야 등 거의 모든 주요 산업 분야에 적용될 예정이다. 그만큼 블록체인이 산업 구조를 바꿀 만큼 영향력이 클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결제 시스템을 예로 들어보자. 현재 물건을 구매할 때 체크카드나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그 정보는 VAN(Value Added Network)사, 카드사, 은행 등 관련 기관을 거쳐 거래된다. 이 과정에서 VAN사는 결제 건당 수수료를 가져가고, 카드사와 은행은 결제 금액의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가져간다. 온라인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물건을 구매하고 결제할 때 PG(Payment Gateway)사를 통해 결제 정보가 전달되고, 은행과 카드 기관과 같은 관련 기관이 이를 처리하고 수수료를 가져가는 시스템이다. 국내의 경우 이런 수수료는 판매자가 부담을 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판매자는 현금과 같은 수수료가 낮은 결제 수단을 선호한다. 이런 시스템에 블록체인을 적용한다면, 중간 과정을 없애고 구매자가 직접 판매자에게 물건 대금을 지불할 수 있다. 이때 사용하는 결제 수단이 바로 암호화폐다. 암호화폐의 경우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실제 결제에 쓸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결제 시 적용되는 암호화폐를 법정 화폐와 1:1로 연동한다면, 변동 없이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블록체인은 결제 외에도 담보 및 신용 대출, 송금, 환전, 융자 등 금융 분야에 있어 혁신을 제공할 예정이다.
블록체인 기술은 현재 진행형인 기술로, 미래가 어떻게 될지 그 누구도 쉽게 답하지 못한다. 마치 2000년대 스마트폰이 가져온 혁신을 예측하기 힘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현재 ETRI 연구진을 포함한 국내외 연구진은 블록체인이 각종 사회서비스에 적용되기 위한 서로 상충되는 상황인 트릴레마(Trilemma)를 풀기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를 위해 ETRI 박종대 센터장은 블록체인 기술의 확장성(Scalability), 분산화(Decentralized) 및 보안성 등을 해결해야 할 과제로 제시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우리 세상은 하나, 둘 조금씩 변화할 것이다. 10년 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기술이 발전한 세상은 어떻게 변해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트릴레마(Trilemma)
확장성, 보안, 탈중앙화 3가지 딜레마를 뜻하며, 하나의 목표를 이루려다 보면 다른 두 가지 목표를 이룰 수 없는 상태를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