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게임에서 시작된 사업아이템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 줄여서 흔히 ‘롤(LOL)’이라 불리는 이 게임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e-스포츠 종목이다. 특히 남성들의 지지가 절대적인데 30대 초중반의 직장인 황선경 · 이상운 · 황준택 · 금기석 씨도 마니아들이었다. 이들이 처음 만난 것 역시 게임을 통해서다. 팀들 간의 배틀로 진행되는 게임 속성상 이용자들 사이에는 빈번하게 이합집산이 이뤄지는데, 이들 네 남자는 처음부터 유독 호흡이 잘 맞았다. 비슷한 연배에 성격들도 무난해 금세 친해진 이들은 점차 호형호제하는 끈끈한 사이로 발전했다. 2년 넘게 온라인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는 잦은 만남으로 친분을 두텁게 쌓던 이들은 아예 원룸을 빌려 그들만의 놀이 공간을 만들자는데 의기투합한다. 함께 모여 취미도 즐기고 수다도 떨자는 취지다. 회계학과 경영학, 전기 · 전자부터 치과의사까지 다양한 분야의 사람이 모이니 화제가 늘 풍부했다. 툭 터놓고 편히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뜬금없는 아이디어도 다양한 의견이 더해져 가능성 있는 아이템으로 진화했다.
02
편리한 스마트폰, 라디오는 왜 없지?
치과의사인 금기석 ㈜뮤트캐스트 이사는 하루 종일 정신없던 진료를 마치고 나면 집에 돌아와 편하게 텔레비전을 보는 게 큰 낙이었다. 하지만 아이와 놀아주면서 TV에 집중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특히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해 내용을 놓치는 경우가 잦았다. 아내와 아이가 먼저 잠들 때는 소리에 깰까 음소거 상태로 화면만 봐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의 불만은 원룸에 모인 네 남자도 충분히 공감하는 일이었다. 주변에 구애받지 않고 편하게 TV의 음성을 들을 수 없을까? 블루투스로 연결해서 들을 방법이 있지만 별도의 헤드셋이 필요하거나 페어링이란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고 음성을 다수에게 보낼 수 없어 여럿이 함께 사용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FM 주파수 방식은 어떨까? 모두가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을 이용한다면? 하지만 국내의 스마트폰 대부분은 FM 기능이 비활성화되어 있었다. 이용자들의 데이터 소비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황선경 대표와 금기석 이사가 재미 삼아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면 엔지니어인 황준택 이사가 기술적 가능성을, 마케터인 이상운 이사는 실제로 이용자들에게 편익이 있을지를 생각했다. 스마트폰에 FM 수신기능을 넣어주면 가정에서 데이터 걱정 없이 라디오를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터미널 · 병원 · 도서관 · 국제회의장 · 도심광장처럼 음이 소거된 채 화면만 나오는 공공장소의 TV까지 활용할 수 있는 곳은 무궁무진했다. 심지어 통신망이 무너졌을 때 긴급재난대응 통신매체로서의 기능까지 그 장점은 무궁무진했다. ‘무선청취시스템’이란 새로운 발상은 그렇게 집단지성의 발휘 속에 차츰차츰 뼈대에 살을 붙여갔다.
03
게임 매니아에서 창업자로
취미 생활을 함께하다 어느새 미래의 꿈까지 공유하게 된 네 사람은 본격적으로 창업의 길을 모색하게 된다. 이들의 첫 번째 선택은 창업교육을 함께 들으며 창업이란 어떤 것인지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한밭대학교 이노폴리스 캠퍼스에 개설된 창업아이템검증프로그램에서 이들은 늘 맨 앞자리를 나란히 차지하는 모범생들이었다. 사업계획서 작성부터 세무회계 같은 실무와 기업가정신, 세부기술까지 분야별로 구성된 강사들의 목소리에 눈을 반짝이고 수시로 묻고 질문하는 이들의 모습은 경험 많은 전문가들의 눈에 될성부른 떡잎으로 비쳤던 모양이다. 뜻밖에 많은 이들이 네 사람의 용기를 칭찬하며 손길을 내밀었다. ETRI 창업공작소와 박영호 책임연구원의 살뜰한 도움 속에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해볼 수 있었던 것도, 창업 초보들에게 여러 기회를 제공하는 지원사업들이 있다는 것도 모두 그들을 눈여겨본 강사들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황 대표는 “정말 아무것도 몰라 무작정 시작했는데 두드리면 열린다는 말을 실감했다”고 말한다.
04
ETRI의 날개를 더하다
2016년은 ㈜뮤트캐스트 구성원들에게 잊을 수 없는 한 해로 기억될 듯하다. 와디즈크라우드 펀딩에서는 300여 명의 일반인이 이들의 꿈을 응원하며 제품개발비용을 대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더 큰 기회가 찾아왔다. ETRI라는 또 다른 날개를 달고 더 큰 세상으로 비상할 수 있는 전환점이 찾아온 것이다. 이들은 전국 각지의 생산업체들을 쫓아다니며 초도 제품 개발에 구슬땀을 흘리는 한편 스타트업들이 참여하는 모의 투자설명회를 통해 또 다른 사업기회를 모색하던 중 심사위원이었던 강상욱 에트리홀딩스 실장을 만나게 된다. 그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스마트폰에서 TV와 FM 라디오를 무료로 들을 수 있도록 한 뮤트캐스트의 아이디어에 ETRI의 신기술을 접목해보라는 것이었다. TV와 사이니지(공공 또는 상업공간에 설치되는 디지털 디스플레이) 등의 음성을 와이파이로 전달하는 기술이었다. 뮤트캐스트가 준비하던 FM주파수와 와이파이 방식은 같은 컨셉이지만 두 기술을 결합하면 고객에게 더 넓은 사용 환경과 선택권을 제공할 수 있었다. 겹경사는 또 있었다. ETRI의 예비창업팀에 선정돼 Wi-Fi기술뿐만 아니라 정교한 창업 프로그램에 사무공간까지 지원받게 된 것이다. 시장조사 프로그램인 ‘고객나침반’으로 실제 예상고객들과 면담하며 제품 차별화를 더욱 명확히 하고, 매주 이어지는 회계와 법무 수업으로 까다로운 법인설립 절차도 미리미리 준비했다. 이에 더해 각종 인증과 지식재산권 실무 등에 대한 지식습득은 모든 것이 모호하기만 한 스타트업에게 더없는 자신감의 원천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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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홍익인간의 꿈
온라인게임을 함께하던 네 청년은 5년여가 흐른 올해 ㈜뮤트캐스트를 설립하며 더 높은 차원의 ‘팀플레이’를 향해 가고 있다. 이들의 팀플레이가 탄생시킨 하이브리드 라디오 ‘뮤라’(뮤트캐스트 라디오)는 아직 제한적인 유통망 속에서도 소비자들의 입소문 속에 빠르게 판매량이 늘고 있다. ETRI의 브랜드 효과에 힘입어 제품협찬이 성사됐기 때문이다. 라디오에 이어 텔레비전까지 청취할 수 있는 신제품 ‘뮤존’도 개발을 마치고 양산대기 중이다. 여기에 기술이전이 예정된 ETRI의 와이파이 방식이 더해지면 ㈜뮤트캐스트의 제품을 찾는 시장이 B2B에서 B2C, B2G까지 얼마나 더 넓어질지는 가늠조차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일련의 작은 성공 앞에서 ㈜뮤트캐스트 구성원들은 쉬이 자만하지 않는다. 그들의 초심 때문이다. “초조해하지 않고, 머무르지 않고 꾸준히 계속 나아갈 겁니다. 우리의 아이디어가 편안하고 경제적인 휴식으로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면 좋겠다던 창업의 꿈을 이룰 때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