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IT
서로 다른 남녀가 만난다. 가슴 벅차게 설레지만 낯설고 소통의 장애가 우려되는 생경한 자리. 과학과 무대예술의 만남 또한 설레고 생경하리라. 서로 다른 분야 간의 소통에 험난한 과정이 기다리지만, 예상치 못한 전개가 가져올 신선한 바람이 기대된다. IT연구원과 무용가가 함께 있는 가족의 고민을 엿보며 공학과 타 분야의 융합을 사색해본다.
두드림
어느 날, 홍찬화 연구원은 사촌누나 홍경화씨에게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무용가인 그녀는 유난히 그날따라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을 내비쳤다. 서점에서 도서 ‘클라우드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을 읽고, 그녀는 남아 있는 미래 직업군에 ‘예술가’가 있는 것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사라지지 않는 직업으로 안주하기보다, 예술의 존재 방향을 더욱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은 과학과 예술의 융합을 메인 주제로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 사촌누나의 말에 따르면 사람의 몸이 표현할 수 있는 표현력에는 한계가 없지만, 무용 동작을 할 때 몇 가지 거스를 수 없는 도구의 한계가 있다고 한다. 가령 사람의 몸은 물리적으로 한정되어 있고, 중력 또한 항상 받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에서 벗어나고자, 과학기술을 이용해 이러한 예술 도구의 한계를 극복하여 표현을 극대화 시키고 싶다는 것이 그녀의 요지였다.
그렇게 아이디어를 주고받다가 나온 것이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도구의 이용이었다. 만약 불에 타는 형상을 묘사할 때, 안무가들은 이를 상상하고 표현하며 추상적인 움직임을 연출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AR과 VR 기술을 이용할 수 있다면, 옆에서 불이 실제로 타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표현력이 달라질 수 있다. 예술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셈이다. 또한 안무교육에도 추상적인 상상력 훈련과 실감나게 체험하며 표현하는 훈련 등 방법이 풍부해지므로, 후학을 양성할 때도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
관객의 입장에서도 편리하고 실감나는 경험으로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VR, AR을 이용하면 관객이 꼭 무대를 찾아가지 않고도 예술가의 공연을 볼 수 있다. 가상으로 프로그램 된 사막, 바다 속 같은 공간에 들어와 무용을 볼 수 있으며, 뿐만 아니라 바로 옆에서 생생하게 안무가의 동작을 볼 수도 있다. 기술을 이용하면 상호작용을 좋아하는 관객에게 한층 가깝게 다가설 수 있다.
이밖에 사촌누나는 홍 연구원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우리(예술가)들은 열려있어.” 이 한 마디가 그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타 분야 전문가와의 융합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도록 방아쇠를 당긴 셈이다.
인상적인 차이
시작은 좋았으나 서로 다른 분야 간 소통이 쉽지만은 않았다. 홍 연구원은 예술 언어는 공학도의 언어와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사촌누나의 설명 중, ‘공간의 해체’와 같은 말은 처음 들으면 이해가 잘 안 되는 표현이었다. 하지만 같은 단어라도 색다른 해석이 가능 할 수 있었다. 예술가가 표현한 ‘공간의 해체’는 앞서 설명한 대로, ‘탈무대화’와 비슷한 의미다. 하지만 홍 연구원은 무대라는 공간은 한정되어 있지만, 가상현실이나 4D 기술로 다른 공간에 와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줄 수도 있고, IoT(사물인터넷)를 통해 관객마다 선호하는 향기나 영상을 보게 할 수도 있기에 공간이 더 이상 중요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이처럼 다른 분야 사람들과의 대화는 자신의 생각과 관념을 확장시킬 수 있음을 홍 연구원은 경험했다.
과학기술과 예술의 상호작용
이제 예술가의 입장이 아니라 IT 공학자의 입장에서 ‘과학기술과 예술의 만남’을 바라보려고 한다. 우선 과학기술의 한계를 예술로 극복한 사례는 무엇일까? 물리학을 계산식 같은 수식으로 가르치기보다 예술의 표현력을 가져와 시각적 메시지로 전달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또한 반대로 과학기술이 예술에 미친 영향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도 뜻 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웹툰, 웹 드라마와 같은 새로운 콘텐츠 유통 플랫폼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과학기술이 가져온 변화이다. 스마트폰의 영향으로 짧은 글을 읽고 쓰는 문화에 익숙해진 대중은 막간의 짧은 시간 동안 볼 수 있는 콘텐츠를 원한다. TV의 변화도 예사롭지 않다. 모니터로 존재하다가 조명이나 장식물 같이 사물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TV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해지며 구분이 필요 없을 수도 있다. 시대 영향을 받는 예술과 시대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과학기술... 결국 서로는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나의 일, 회사에 영향을 미칠 융합의 바람
홍 연구원의 일 역시 예술과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 터치 패널 연구를 담당하는 홍 연구원은 대면적, 즉 큰 화면에서도 스마트폰 화면에서와 같은 터치감을 구현하는 기술을 연구 중이다. 화면 크기가 커지면 패널이 두꺼워지고, 이에 따라 정확도가 떨어지고 반응속도가 느려지는 등 제약이 발생하기에 고민해야 할 것도 많다. 하지만 과학기술은 생활환경 속에 숨어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는 철학으로, 그는 평화롭게 수영하는 오리가 수면 아래에서는 열심히 발길질을 하듯 복잡한 기술을 심플해 보이는 차세대 제품들 뒤에 심어 놓기 위해 각오를 단단히 다졌다.
그가 개발한 기술은 가령 공연장에서 디스플레이가 무대(의 배경)를 대신하는 시대를 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터치패널을 연구하는 홍 연구원과 무용가 사촌누나 홍 안무가의 콜라보레이션 무대를 머지않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홍 연구원은 융합과 창의력에 대한 자신만의 가치관을 들려주었다. 융합을 생각하면 사고력 확장, 창의력 증진 등 이미지가 따라오지만 그는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특별한 재능이 있기 때문에, 이전에 없던 것을 창조하는 것만이 창의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우리는 이미 생활 속에서 무수한 창의력을 발휘하며 효율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창의력에 대한 개념을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듬고 보완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작은 아이디어도 실행해 볼 수 있는 분위기가 ETRI 내에 조성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Profile
홍경화
현 경희대학교, 덕원예술고등학교 강사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선정한 신진 안무가 선정
그녀의 작품 세계
하얀방 (2009년 作/아르코 소극장)
- 백년 후까지 집의 변화 과정을 통해 가족 해체 모습을 그린 작품
- 영상과 무용의 융합을 볼 수 있다.
무용가 홍경화씨가 ETRI 연구원들과 함께 다뤄 보고 싶은 연구 주제
1) 4차 산업혁명시대의 예술의 방향성
2) 인공지능 시대의 공연형식 변화
로봇과 함께하는 무용/ 홀로그램과 무용 / VR과 무용/ 디지털매체와 무용의 관계 / 공간의 해체( VR, 3D...) / VR을 통한 가상공간 체험 / VR 사용이 관객에 미치는 영향 / 가상현실을 응용한 VR 무용공연
3) 인공지능 시대의 예술교육의 방향성 및 무용과 과학 융합교육
VR 도구를 활용한 현장학습 활용수업 모형 개발 / 무용수 인지 기능 훈련을 위한 가상현실 프로그램의 효과 / VR 활용한 무용교육 콘텐츠 개발 / VR기술기반 융합교육을 위한 교과목 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