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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82 · April 7 · 2017 · Korean

Insight Trip  ______  덕수궁 & 창경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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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우리 궁에서 따스한 봄날 맞아 볼까나

하루하루가 다르게 봄날의 따스함이 더해지는 요즘이다. 비록 많은 미세먼지가 파란 하늘을 뿌옇게 메우고 있지만, 그렇기에 높이 뻗은 봄날의 하늘은 더없이 특별하고 소중한 것이 됐다. 고즈넉한 돌담과 잔잔한 운치를 한껏 머금은 덕수궁과 창경궁을 찾았다.

하늘과 맞닿은 서까래, 그 고운 자태

맑은 봄날의 하늘이 자태를 드러낸 지난 3월, 모처럼 덕수궁과 창경궁을 찾았다.
도심 속에 자리 잡은 선조들의 옛터인 고궁.
덕수궁과 창경궁은 많은 사람이 특히 사랑하는 문화재이기도 하며 다양한 문화 축제와 어우러져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경운궁으로도 불리는 덕수궁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 임진왜란으로 한양의 모든 궁궐이 불탔을 때 선조가 임시로 머무는 곳이었다.
본래 세조의 큰 손자인 월산대군의 개인저택으로 만들어졌지만, 선조가 이곳에 임시로 머문 이후
광해군과 인조, 고종이 거쳐 가며 우리 역사의 수많은 페이지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역사 속에서 잊혀 간 대한제국, 그 한 페이지를 장식한 공간인 셈이다.
역사의 많은 사건으로 인해 소실되었다 재건되기를 반복한 궁이기에 과거의 원형이 많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역사의 현실을 몸소 체험하고 올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야경으로 유명한 창경궁은 빼어난 풍경을 자랑하는 절경으로 특히 사랑받고 있다.
무엇보다 다른 궁에 비해 정성껏 가꿔진 대온실과 연못 춘당지를 만날 수 있는데
특히 춘당지는 사계절과 관계없이 독특한 운치를 자아내고 있어 더욱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덕수궁에 숨은 과학

두 고궁 모두 빼어난 풍경을 자랑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의미 있는 문화재가 가득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과학 정신을 살펴볼 수 있는데, 덕수궁 광명문에는 자격루와 신기전, 앙부일구 등 많은 과학기술의 역사가 전시돼 있다.

영화를 통해 대중에게 더 많이 알려진 신기전은 조선시대 비밀병기로 잘 알려진 로켓추진 화살이다.
15세기에 만들어진 첨단무기인 셈이다.
1448년 고려 말기 최무선이 만든 주화를 개량한 것으로, 크기에 따라 대신기전, 중신기전, 소신기전, 산화신기전 등 총 네 종류가 있다.
신기전이 화살이라면 ‘화차’는 이것을 발사시키는 발사대라고 할 수 이는데, 1451년 문종 때 신기전의 발사 각도를 조절함으로써 사정거리를 조절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로켓의 원리를 담은 장치인 데다가, 15세기 과학기술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과거 우리 선조들의 기술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과학기술의 수준을 가늠하는 데는 앙부일구도 한 몫 한다. 앙부일구는 일명 해시계로, 해 그림자를 이용해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장비다.
세종 16년 처음 만들어졌으며, 세종 시절에 만들어진 장비답게 국민을 위한 배려가 곳곳에 새겨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글을 모르는 일반백성도 시간을 파악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앙부일구’라는 이름은 가마솥처럼 오목한 시계 판이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자격루도 덕수궁의 대표적인 과학 문화재다. 앙부일구가 해시계라면 자격루는 물시계다.
자격루가 만들어진 이유는 해를 볼 수 없는 저녁에도 시간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자격루의 가장 신기한 기능은 다름 아닌 일정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종을 울린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전자기기도 아닌데, 어떻게 자동으로 종을 울릴 수 있었을까.
자동 시간 알림 장치를 물시계와 결합한 정교한 표준 시계로, 구조를 살펴보면 매우 섬세한 기계장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자격루는 물을 흘러내리게 하는 그릇 네 개와 물받이 그릇 두 개, 12개의 잣대와 톱니바퀴, 자동시보장치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 장치들은 매우 정교하게 이어져 있는데 물이 얼마나 흘러들었느냐에 따라 기계장치가 움직이도록 고안됐다.
당시에도 완성도와 정교함이 매우 높아 주변국으로부터 인정받았던 장치이기도 하다.

하늘의 움직임을 바라본 관천대

창경궁의 관천대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우리의 과학기술문화유산이다.
관천대란 이름 그대로 하늘을 바라보는 곳을 의미하는데, 당시 우리 선조들은 이곳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관측하곤 했다.
지금에 비유하자면 천문학 연구를 이곳에서 모두 행했던 셈이다.
관천대의 필요성은 결국 농경사회에 기반을 둔 조선시대 사회상에 있는데
수확량을 주관하는 날씨를 관측하기 위해 당시 우리 선조들은 관천대를 설치해 하늘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이를 통해 날씨를 예견했다.
서울에는 조선시대에 만든 관천대가 총 두 개 존재하는데, 하나는 창경궁의 관천대이며 다른 하나는 휘문고등학교 교지 내에 있는 것이다.
특히 창경궁의 관천대는 17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기에는 비교적 완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남아있다는 점에서 매우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덕수궁과 창경궁 모두에 과학문화유산이 남아있지만,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자연의 풍경과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다.
자연을 관측하고, 자연을 이용해 현재를 파악하고, 더불어 자연과 어우러져 살기 위해 만든 장치인 만큼, 이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모습일 수 있다.

아름다운 궁의 섬세한 과학기술을 통해 우리는 선조들이 자연과 하나 된 삶을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다.
과학은 자연과 대응점에 놓인 일이 아니며, 오히려 그것과 더욱 하나 되기 위한 행위였음을 엿볼 수 있다.
그렇기에 이러한 아름다운 궁이 지금까지 우리 후손들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것일 수 있다.

과거 선조들이 이곳을 거닐었던 것처럼, 지금 우리는 자유롭게 궁을 거닐고 바람을 맞으며 자연과 만날 수 있다.
봄 내음을 맡기 위해 부쩍 궁을 찾는 시민들이 많은 요즘, 가족과 함께 혹은 연인과 함께 고즈넉한 고궁을 걸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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