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는 모든 성공의 마중물
배려의 사전적 정의는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이다. 마음을 써 가며 남을 돕는 것은 자신이 더 손해 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배려는 우리 공동체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성공으로 이끄는 중요한 자세이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김명준 소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이, 배려의 가치가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말한다. 배려는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발전과 나아가 전체 사회가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는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Software계의 진짜 전문가
‘30년 72일’, 제가 소프트웨어(SW) 기술 발전을 위해 ETRI에 몸담았던 세월입니다. 오랜 시간 ETRI에 있다가 작년 시월,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는 소프트웨어 중심사회의 'Think Tank'를 지향하는 국가연구소입니다(www.spri.kr). 소프트웨어 융합과 확산을 통한 산업과 사회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단기 또는 중장기 연구 균형을 통한 범부처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또, 공개 소프트웨어 공동체의 ‘개방, 공유, 참여’ 정신을 채택하여 개방형 연구를 통한 지식 커뮤니티의 정책연구 플랫폼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소장으로 부임하고 3개월 동안 신임소장 경영계획서를 마련했습니다. 이후 본격 실행에 들어가서 조직개편과 인사이동, 연구 과제를 확정하고 예산을 배정했습니다. 2월 초에는 대한민국 SW 역량 강화 종합 프로그램을 창작하는 목적으로 ‘Softpower Korea 2025’에 착수했습니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직원 30명이 플랫폼이 되고, 외부 민간 전문가 120명을 9개 작업반(Working Group)에 배치하여 총 가동했습니다. 이를 통해, SW 중심사회 실현과 제4차 산업혁명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2016년 다보스포럼에서 제4차 산업혁명이 핵심 화두로 언급된 이후, 소프트웨어는 그 중요성이 더 커졌습니다. 다보스포럼의 창립자이자 회장인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은 그의 저서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을 통해 변화의 속도, 범위와 깊이 그리고 그 충격이 너무 크기 때문에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정의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중 제4차 산업혁명의 방법론을 다룬 제2부에서는 사물인터넷, 커넥티드 홈, 빅데이터, 인공지능, 로봇, 블록체인, 3차원 인쇄 등 대부분 소프트웨어 기술을 다루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소프트웨어와 관련된 정보기술(IT)은 기업에서 경영 효율을 위해 주로 쓰였습니다. 제조분야 대기업들이 전사적자원관리(ERP: Enterprise Resource Planning) SW를 도입해 활용했던 분야는 재고관리, 부품관리, 회계관리, 인사관리, 고객관리 등으로, IT가 생산현장에 직접 접목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제4차 산업혁명이 대두된 이후, IT가 산업 현장에 적용되면서 파급효과가 무척 커졌습니다. 예를 들면, 유명한 신발 브랜드인데, 기존 개발도상국에서 6백 명이 만들던 것을 독일 내 스마트 공장을 마련해 단지 10명이 생산을 가동하고 있습니다. 향후 농수산업과 같은 산업에 소프트웨어 기술을 접목하는 시도를 한다면, 긍정적인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소프트웨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일
ETRI와 인연을 맺은 것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저는 프랑스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 달 후에 프랑스 낭시 제1대학교에서 박사학위 논문심사를 받기로 되어 있었지요. 1986년 4월 5일, 주말 아침에 일어나보니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대학교로 다시 돌아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연구소로 가서 실제로 기술 개발과 실용화를 경험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5년간 유학생활을 마치며 돌아갈 조국을 생각하니 대한민국의 소프트웨어 수준이 너무 뒤떨어져 창피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해서 직접 개발경험을 습득하고,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기술 수준을 세계 수준으로 향상하고 싶었습니다. 이때 품었던 ‘초발심(初發心)’을 저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마주한 소프트웨어 기술의 현실은 마치 황무지와 같았습니다. 무성한 풀과 돌부리, 나무가 뒤엉킨 황무지를 어떻게 소프트웨어라는 씨앗이 잘 자랄 수 있는 문전옥토로 바꿀지 고민했습니다. 황무지인 밭을 개간할 때는 나무 밑동을 잘라내고, 큰 돌과 작은 돌을 골라내가며 작물을 심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땅에 제일 먼저 심는 것이 땅콩과 콩입니다. 땅콩은 물을 주지 않아도 잘 자라고, 콩 뿌리에 침입하는 뿌리혹박테리아가 질소 비료를 만들어내 콩이 잘 자랄 수 있는 천연 비료를 만들어냅니다. 30여 년 동안 ETRI에 재직하며, 동료 연구원들과 함께 연구했던 경험을 저는 황무지를 비옥한 땅으로 개간하는 것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이제는 제법 쓸 만한 땅으로 만들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연구 성과는 가장 먼저 연구 책임자로서 성과를 낸 ‘관계형 DBMS(Database Management System) 바다’ 기술입니다. ‘바다’ DBMS는 순수 국내 기술자들이 만든 것으로서 바다 Ⅰ에서 Ⅳ까지 개발했죠. 대용량 컴퓨터 시스템을 대상으로 많은 이용자가 동시에 대량의 데이터를 다룰 때, 데이터를 테이블 형태로 저장, 관리, 검색하는 시스템입니다. 아직까지 이 바다 기술을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더 뜻 깊습니다.
이외에 추억에 남은 일이 생각납니다. 1986년 입사 당시 각 연구실마다 행정보조원이 한 분씩 있었는데, 모두 그분을 ‘미쓰O'라고 불렀습니다. 프랑스에서 막 돌아온 저에게 어색할 수밖에 없었죠. 제가 적응을 못하는 건가 싶다가 3개월이 지나고 나서 행정보조원 분들의 이름을 찾아주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때부터 그분들은 ‘미쓰O’가 아니라 ‘OOO씨’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처음 시작한 새로운 호칭 문화가 3개월 만에 연구소 전체에 정착되었습니다. 행정보조원 분들 모두가 너무 좋아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작은 배려에서 시작한 일이 조직의 문화가 된 것이죠.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잭의 콩나무’가 자라기 위해서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는 앞으로 배려를 통해 가치를 실현하는 회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소프트웨어 정책 개발의 목표는 성장 정책론이었습니다. 시장 확대개척과 수출 증대, 수입 대체 정책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연구소 직원들에게 처음 전했던 메시지 중 하나가 ‘배려’입니다. 소용돌이치는 두 개의 동심원을 그려놓고 하나는 화살표가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고, 나머지는 바깥으로 그려놓았습니다. 화살표가 없으면 똑같은 소용돌이이지만, 안쪽으로 화살표가 그려진 것은 나 혼자 성장하고, 경쟁하고, 이익을 나에게 끌어 모으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게 됩니다. 그런데 화살표를 바깥으로 하면 나로부터 시작되어 상대방에까지 효과를 미칩니다. 또, 바깥으로 그려진 화살표는 점점 소용돌이가 커지며, 무수히 퍼져나갈 수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자성어가 ‘유능승강(柔能勝剛)’입니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뜻이죠. 배려는 다른 차원의 유능승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만드는 정책은 하나의 이해집단을 강화하는 것이 아닌, 공평하게 모두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즉, 배려하는 정책을 만들어 내고자 합니다. 어느 한쪽에 치우지지 않는 객관성을 가지고, 곧바로 실천할 수 있는 실용성 그리고 인류에게 적용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는 보편성의 원칙을 실천하여 ‘SPRi 학풍(學風)’을 세우겠습니다. 이는 배려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배려의 차원은 사회 여러 곳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죠.
또, 개인적으로는 소프트웨어 기술의 발전을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겠습니다. 그동안 선진국 수준의 기술로 가기 위해 징검다리를 놓는 일을 했습니다. 징검다리를 몇 개만 놓으면 우리나라 기술 수준이 선진국 수준으로 도달할 수 있죠. 그런데, 어느 순간, 이제는 ETRI의 후배들이 남은 징검다리를 놓을 수 있도록 저는 조력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잭과 콩나무’ 어린이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동안 소프트웨어 산업 생태계가 점점 좋아져 콩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면, 잭이 콩알 하나를 심어 하늘 위로 콩나무가 자라나는 것처럼, 후배들이 ‘잭과 콩나무’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후배들을 위해 기꺼이 조언자(mentor) 역할을 자처하고 싶습니다. ETRI분들도 옛날 선배라고 거리를 두지 말고,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배려의 정신으로 함께 노력한다면, 잭의 콩나무처럼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기술 분야도 분명히 크게 발전하고 성장할 것이라 믿습니다. 귀하고 소중한 ETRI 직원 여러분, 계속 발전하십시오. 좋은 나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