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가 지용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처럼, 정지용 시인(1902~1950)은 우리나라 현대시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한 선구자이다.
1902년, 그는 충북 옥천에 자리 잡은 아담하고 소박한 집에서 4대 독자로 태어났다. 곧게 뻗어 나간다 하여 이름 붙여진 일자산(一子山) 줄기에서 흘러내린 물이 모여 실개천을 이루고, 이 개천을 건너는 청석교라는 다리 옆에 정지용의 생가가 자리하고 있다. 돌담과 사립문, 두 동의 초가, 우물과 장독대가 소담스럽다.
부엌 하나에 안방 하나, 지붕에 이엉 얹어지면 초가삼간이 마련되었고, 하나 둘씩 모인 집이 하나의 마을을 이루던 때. 정지용도 그 시절 여느 사람들과 같이 소박한 삶을 살았다. 지금은 새로운 길이 나고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면서 옛 모습을 잃었지만, 정지용의 생가만큼은 이곳을 찾는 이에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련한 그리움과 함께 고향의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이다.
작은 돌담 너머로 아담한 두 동의 초가집. 정지용의 발자취를 따라 사립문을 열고 들어섰다. 한눈에 들어오는 소박한 크기의 집에서 크고 아름다운 꿈을 꾸었을 정지용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본다. 생가 안에는 그의 부친 정태국이 한약방을 경영했음을 알 수 있는 약장과 정지용의 시에 표현된 등잔과 질화로가 자연스럽게 그의 시를 음미할 수 있게 한다.
마당 한 쪽에 우물과 장독대는 초가집의 풍경을 한층 고조시킨다. 보통 장독대는 집 뒤쪽에 있기 마련인데, 이곳의 장독대는 우물가 담장 밑에 있다. 이는 낮은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가 장독대와 집을 한 바퀴 돌아가며 소독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본래 생가는 한 번 허물어진 뒤, 1996년에 다시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되었다. 그렇게 고향의 ‘향수’를 음미하며 정지용의 문학적 발자취를 되돌아보기 위해 문학관으로 향했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시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자 문학관으로 들어섰다. 생전 정지용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밀랍인형이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방문객을 반긴다. 자신이 한국인임을 알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한복이라며, 항상 검게 물든 두루마기를 입고 다녔다고 한다. 전시실 입구로 들어서자 아름다운 서체로 쓴 그의 대표적인 시 ‘호수’와 ‘고향’ 등이 액자로 걸려있다. 이곳에는 정지용 문학의 실체를 더 가까이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전시 방법을 구현해 놓았다. 전시관 중앙에 프로젝트 빔이 빛을 내보내고 있는데, 이 빔 아래에 손을 펴면, 손바닥 위로 아름다운 시어가 흘러내려가 시를 온 몸으로 느끼는 기분이다.
그는 일본으로 떠난 유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여, 그의 시는 서구의 이미지즘이나 유행적인 모더니즘을 넘어서 우리의 오랜 전통에 근거한 순수시의 세계를 독창적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섬세하고 독특한 언어로 시적 대상을 선명히 묘사한 그의 시어를 터치 스크린으로 검색해볼 수 있다. 또, 헤드폰을 쓰고 오디오에 흘러나오는 낭독 시를 들어 볼 수 있다. 그는 생전에 시 한편을 쓰더라도 정제된 단어를 사용하고자 수 십, 수백 번 고쳐 쓰기를 반복하고 신중하게 시어를 골랐다고 한다. 시인의 외롭고 고고한 마음이 전해지는 듯하다.
시를 조금 더 가까이 느끼고 싶다면 전시실 한 편에 마련된 시낭송 체험실을 이용해보길 바란다. 비디오 화면에 나오는 정지용의 시를 낭독해보는 공간이다. 문학관에서 시를 보고, 소리 내어 읽으며, 그의 정신을 마음에 새길 수 있다. 그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신선한 감각과 독창적 표현이 담긴 시와 시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그의 마음을 느꼈다.
옥천에서 정지용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여행의 마지막은 지용 문학공원이다.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에서 도보로 10분 남짓한 거리에 있다. 청소년문학상, 지용문학상 등 정지용을 기념하고, 그의 얼을 이어가고자 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중앙에는 커다란 무대가 있고, 무대 주변에 정지용을 비롯한 윤동주, 김소월 등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들의 시가 조형물로 전시되어 있다. 무대 뒤편에는 정지용의 생애와 발자취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가벽이 전시되어 옥천을 찾는 이들에게 정지용의 얼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곳곳에 자리한 시인들의 시를 천천히 음미하며 발길 닿는 대로 오르다보니 어느새 가파른 경사를 뒤로하고 높은 곳에 도착했다. 이곳에 낮게 펼쳐지는 옥천의 모습이 고향의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한다. 아름다운 생각을 하고, 아름다운 시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향수의 고장, 옥천에서 정지용의 문학과 여유를 함께 즐길 수 있던 소중한 시간. 한가로운 고향의 정경을 한 폭의 풍경화처럼 생생하게 그려낸 그의 시는 우리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