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SPACE

전철타고 떠나는 중국여행, 동화여행

인천 차이나타운 & 송월동 동화마을

불이 나도 모를 만큼 온통 빨강색 천지인 인천 차이나타운,
안데르센과 피카소도 한번쯤 꼭 오고 싶어할 송월동 동화마을.
133년의 역사를 간직한 인천의 개항장은 다양한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다.
한여름 무더위를 잠시 잊기 위해 인천 차이나타운, 송월동 동화마을 구석구석을 발로 누볐다.

적적(赤赤)한 풍경이 전하는 이국적인 거리, 차이나타운

Special
한국 속의 작은 중국, 인천 차이나타운은 수도권 지하철 1호선의 종착역인 인천역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전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차이나타운을 만날 수 있을 정도로, 화교들은 세계 55개국에 자신들의 터전을 꾸려놓았다.
그중에서도 133년 역사의 굴곡을 간직한 인천 차이나타운!
입구의 중화가(中華街)라 씌여진 제1패루(牌樓)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중국식 대문이다.
제1패루는 인천 중구의 자매도시인 중국 웨이하이(威海)시에서 기증한 돌을 이용해 2008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이밖에 제2패루(인화문), 제3패루(선린문) 등 총 3개의 패루가 인천 차이나타운을 지키고 있고,
거리 곳곳 붉은색 물결이 단숨에 우리를 중국으로 데려다준다.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고 이듬해 중구 선린동 지역이 청의 치외법권으로 지정되면서 화교들은 이곳에 최초로 마을을 이루었다. 그 당시 수천 명의 화교가 활발한 상업 활동을 펼쳤고, 일본, 러시아, 영국 등 열강들이 몰려들어 개항장 일대는 서구 문물이 유입되는 창구가 되었다. 지금은 얼마 남지 않은 2, 3세들이 마을을 지키고 있고, 거대 자본이 들어와 현재의 모습이 갖추어졌다.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거리 한복판에서 짜장면의 발상지라 알려진 옛 공화춘을 찾았다. 30년간 버려졌던 곳을 중구청이 매입해 짜장면박물관으로 조성하여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초기 짜장면은 중국 산둥에서 온 화교들을 통해 전해졌는데, 중국 양념인 첨면장을 면과 비벼 먹는 식이었고 우리의 입맛에도 맞아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옛 공화춘을 나와서 언덕을 올라가니 멀리 파라다이스호텔이 보인다. 그곳은 원래 영국영사관이 있던 자리인데, 대부분의 산둥 출신 사람들이 산둥반도와 가장 맞닿아 있는 그곳에서 고향을 바라보며 그리워했다고 한다. 현재 차이나타운에 거주하고 있는 2, 3세 사람들은 중국, 대만, 한국 어느 나라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정체성 문제를 안고 있어, 오래전부터 고향을 그리워하는 그들의 안타까운 마음이 전해지는 듯 했다.

옛 개항장의 시간을 더듬다, 개항누리길

화려하고 왁자지껄한 분위기의 차이나타운을 벗어나 일본조계지로 향했다.
오르락내리락했던 차이나타운의 지형과는 사뭇 다른 완만하고 잘 닦인 '신작로'가 펼쳐졌다.
일본이 개항장 일대 중에서도 터가 가장 좋은 곳에 터전을 마련했기 때문이라고.
조계계단을 중심으로 왼편은 청의 조계지, 오른편은 일본의 조계지로 나누어지는데, 중국과 일본이 정치적으로 대립했던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조계계단 가운데에는 청도에서 기증했다는 '공자상'이 청의 조계지 쪽으로 약간 치우쳐져 있다.
 

개항장 일대는 130여 년,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건물들이 남아있다. 그중 지은 지 100년이 넘은 '팟알'이라는 카페 건물은 원형 그대로 보존된 중구 지역 유일의 일본식 주택으로, 예전에는 인력을 제공하는 회사였다가 현재는 관광객들이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팟알을 지나 이른바 ‘개항기 은행거리’라 불리는 길에 들어섰다. 옛 ‘일본제1은행’, ‘일본18은행’, ‘일본58은행’이 줄지어 서있다. 일본제1은행은 현재 인천 개항박물관으로 변신해 인천의 근대문물과 풍경 등의 자료가 전시돼 있다. 일본18은행은 인천에서 제일 처음으로 업무가 시작되었던 면직물 무역은행인데, 지금은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으로 쓰이고 있다. 일본58은행은 조흥은행, 대한적십자사 등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인천 중구 요식업조합에서 사용 중이다. 오랜 세월 남아 있는 일본의 건축물이 굴곡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근대문화 교류의 현장, 제물포구락부 & 자유공원

은행 사거리 옛 일본 영사관이 자리했던 중구청 건물을 지나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면, 러시아 건축가 사바찐이 설계한 ‘제물포구락부’를 만나고, 거기서 좀 더 올라가면 한때 각국공원이라 불리기도 했던 ‘자유공원’이 있다.
제물포구락부는 개항장 일대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의 사교클럽으로, 원래 명칭은 '제물포클럽'이었단다.
이곳에서는 주로 인천항에 들어오는 무역에 대한 문제를 의논했다. 당시 내부에는 사교실, 도서실, 당구대 등이 마련되어 있었고, 실외에 따로 테니스 코트도 두었는데, 테니스 치는 모습을 보고 지나가던 조선 양반이 ‘쯧쯧쯧... 저렇게 힘든 일일랑 하인들을 시키지 않고...!’라고 했다는 우스개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현재는 인천광역시에서 여러 나라의 문화를 소개하는 전시 공간으로 사용 중이며, 8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왕국 문화전이 열리고 있다.

 

제물포구락부와 연결된 계단을 오르면 응봉산 자락에 조성된 최초의 서양식 공원인 자유공원이 있다. 인천 개항기, 식민지 시대, 해방기를 거쳐 한국전쟁에 이르는 역사의 흐름을 함께한 곳이다.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끈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우뚝 서서 노병의 영혼은 ‘죽지 않고’ 다만 육체만 ‘사라진 채’로 인천상륙작전의 한 지점인 월미도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멀리 항구가 보이고, 나무가 우거진 시원한 산책로가 있어 인천 시민들이 애용하는 곳으로, 해가림을 해주는 담쟁이 넝쿨 아래에서 노인들이 모여 한가로이 장기를 두기에도 안성마춤이다.

세계 명작 동화 속 주인공이 되다. 송월동 동화마을

소나무 숲 사이로 보이는 달이 아름다워 ‘송월’이라 이름 붙여진 마을.
이곳은 개항기에 독일인들이 부촌을 이뤘다 떠난 자리를 일본 순사가 차지하고, 6.·25전쟁 당시에는 고향을 떠난 피난민의 정착지가 되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잠시 머물려고 지었던 허름한 집에는 오랜 휴전으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애환과 묵은 시간만이 켜켜이 쌓였다.
 

점점 쇠락하고 있던 마을에 기분 좋은 바람이 분 것은 도시 미화를 목적으로 벽화를 조성한 이후부터다. 처음 만들어진 도로시 길을 중심으로, 성의 나라 길, 바다나라 길, 과자나라 길, 전래동화길, 앨리스 길, 엄지공주 길, 요정나라 길, 동물나라 길이 만들어졌고, 중국인 관광객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찾는 관광명소로 바뀌게 되었다.
송월동 동화마을이 다른 벽화마을과 다른 매력은 그림을 조형물과 트릭아트로 입체적으로 꾸며, 다양한 볼거리와 사진 촬영 장소를 제공한 것이다. 도시가스함은 오즈의 마법사 양철깡통으로 변신하고, 삭막한 골목은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는 화단으로 꾸며졌다. 마을 곳곳에 자리한 전봇대는 나무로 옷을 입었다.

동화마을에서의 시간을 조금 더 알차게 보내려면 마을 이야기꾼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동화마을 주민으로 구성된 마을 이야기꾼은 마을 발전에 소외된 주민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마을에 이야기를 불어 넣고,
송월동 동화를 만들어 직접 인형극을 하는 등 ‘함께 사는 동네, 모이는 동네’가 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노력 때문에 송월동 동화마을은 아름다운 동화 속 이야기만으로 남는 것이 아닌,
삶의 역사가 새겨진 이야기로 생기 넘치는 명소가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