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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 다시 출발선으로

조선일보 박건형 기자

국민의 삶에 새겨진 ETRI의 40년

나는 15세가 되어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而志于學), 30세에 학문의 기초를 확립했다(三十而立). 40세가 되어서는 미혹하지 않았다(四十而不惑). 논어 위정편에 언급된 공자의 말씀이다. 미혹하지 않고 자기만의 생각을 갖는 것. 40년을 살면 가져야 하는 '불혹'의 의미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이달 불혹을 맞았다. ETRI가 처음 생겼을 당시의 대한민국과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이름은 같지만, 완전히 다른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자 정보통신(IT) 강국이 된 대한민국의 맨 앞에 ETRI가 있었다. 1가구 1전화 시대를 연 전전자교환기(TDX), 반도체 신화의 출발점이 된 메모리 반도체 D램 개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상용화, 지상파 DMB 등이 ETRI 연구실에서 탄생했다. 불혹의 나이가 되는 동안 걸어온 ETRI의 발걸음이 고스란히 대한민국 사람들의 삶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패스트 팔로어'에게 찾아온 위기

하지만 ETRI의 영광은 엄밀히 말하면 과거의 영광이다. 지금은 종적을 감춘 CDMA나 이름조차 생소한 TDX가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이상 대표성과로 거론되는 것 자체가 역설적으로 ETRI의 오늘을 보여준다. "IT 강국을 만든 것도 ETRI, IT 강국을 망치고 있는 것도 ETRI"라고 서슴치 않고 말하는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이다.
왜 이런 상황이 됐을까. 지난해 취임한 이상훈 원장의 분석은 이렇다.
"TDX나 D램을 개발하던 시절에는 선진국의 제품을 따라 잡으라는 명확한 요구가 있었습니다. 어떤 수를 써서든 그걸 만들면 칭찬 받았죠. 그 과정에서 연구원 개개인의 마인드는 주문형에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주어진 문제를 푸는 데는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세상이 변했고, 문제까지 직접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갑자기 어느 순간 앞에 아무도 없는 상황이 되니까 어디로 갈지 모르게 된 겁니다."
세상이 변했는데, ETRI가 이를 따라잡아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최근 한국 사회의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른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와 ‘퍼스트 무버(선도자)’ 논란이 ETRI에서도 축소판으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갑자기 맨 앞에 서게 된 사람들의 실패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오죽하면 1등도 해본 놈이 한다고들 할까. 하지만 한국과 ETRI는 더 이상 패스트 팔로어의 위치를 지키는 것도 쉬운 상황이 아니다. 중국이 턱 밑까지 추격해왔기 때문이다. 모방을 기본으로 하는 패스트 팔로어의 특성을 감안하면, 투입할 수 있는 자본과 인력의 규모가 다른 중국은 한국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대이다. 물론 중국 역시 언젠가 인도라는 패스트 팔로어의 위협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상 한국의 유일한 선택은 퍼스트 무버가 되는 것 밖에 없다는 뜻이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앞장서 가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개발해도, 뒤따라오는 곳이 없으면 쓸모없는 기술이 된다. 예산과 인력을 쏟아 부었는데 쓸모없는 기술이 되면 남는 것은 상처뿐이다. 정확한 방향을 잡을 수 있는 혜안과, 선도적으로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추진력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모두 한국의 약점으로 지적되는 부분들이다.

 

‘퍼스트 무버’가 되기 위한 전략

그렇다면 퍼스트 무버가 되기 위해 ETRI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이 원장은 ETRI를 처음 찾았을 때의 당혹스러움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기대와는 너무 달랐습니다. 활발한 연구소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더군요. 연구원들이 전부 자기 연구실에 굴을 파고 들어간 것 같습니다. 그 굴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전혀 모르고, 자기가 굴 안에서 하는 일만 보고 있었습니다. 물론 굴 속에서는 꽤 괜찮은 연구 결과들도 나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굴 밖을 내다보지 않는데 어떻게 파급력이 크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연구결과가 나오겠습니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소통’이라는 단어만큼 지루하고 뻔한 얘기도 없다. 소통을 강조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소통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는 자조섞인 경험을 털어놓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드는 IT기업이나 연구소에서 소통은 고리타분한 얘기가 아니라 절대적인 가치가 있다.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 현재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는 IT기업들은 하나같이 ‘캠퍼스형’ 사옥을 갖고 있다. 효율적인 건물보다는 최대한 많이 이동하며 사람들이 마주치도록 설계한다. 오다가다 마주치면서 얻어지는 소통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것, 내가 생각하는 것이 옳은 방향인지 스스로는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바로 옆 연구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다른 건물에서 무슨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지 모르면서 어떻게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를 생각해낼 수 있을까.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하는 상황에서 맨 앞에 섰다고 당황하지 말자. 처음은 누구든지 낯설다. 변화는 아주 간단한 곳에서 시작될 수 있다. 연구실 옆 방 문을 여는 것, 대덕연구단지의 다른 연구소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서 그 변화가 시작될 수도 있다. 이상훈 원장의 목표 역시 비슷하다.
“연구자들의 마인드를 딱 5%만 바꾸고 싶습니다. 굴에서 나와서 소통할 필요성을 느끼는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처음 5%가 바뀌는 것이 어렵지, 10%, 50%는 금방입니다. 거창한 목표 같은 건 없습니다. 외부인 출신 원장이 40년 된 연구소를 임기 3년 동안 얼마나 바꿀 수 있겠습니까. 일단 변화의 바람이 불도록만 하면 만족합니다.”
공자가 말한 ‘불혹’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책임을 지며 굳건히 해야 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하지만 ETRI의 불혹은 달라야 한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과거 ETRI의 영광을 만들었던 방식은 새 시대에 맞지 않다. 새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40년 동안 쌓은 것을 모두 버리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ETRI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ETRI를 수식하는 단어가 앞으로도 TDX, CDMA여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