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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RI답게, 원대한 그림 그리길

김종갑 K-ICT 본투글로벌센터 센터장

대한민국 유일의 종합 트레이닝센터이자, 국가대표 선수들의 요람인 태릉선수촌.
K-ICT 본투글로벌센터는 IT 스타트업에게 바로 이런 태릉선수촌이다.
본투글로벌센터는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할 국내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컨설팅해서 그들의 글로벌 진출을 이끌고 있다.
그리고 이곳의 감독, 국가대표급 스타트업을 지휘하는 김종갑 센터장이다.

그는 ETRI 미주기술확산센터장을 역임하고, 지난 20여 년간 현지에서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성공시켜왔다.
‘세계를 누비며 활약하기 위한 IT 스타트업의 글로벌 마인드와 핵심역량’에 대해 거침없이 말하는 그는 누가 봐도 베테랑 감독이었다.

“동문여러분께 늦은 신고식을 하게 됐습니다.”

먼저, 본투글로벌센터 센터장으로 부임하자마자 ETRI 선후배님들을 찾아가 인사를 드렸어야 하는데 벌써 3개월이 지나서 죄송한 마음입니다. 멀리서 늘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동문여러분들이 힘들고 어려운 연구 환경에서도 불철주야 애쓰신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모두 건강 잘 챙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본투글로벌센터 센터장을 맡은 이후, 센터를 재정비하느라 숨 가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본투글로벌센터는 미래창조과학부 K-Global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국내 스타트업·벤처기업의 글로벌 진출과 창업을 지원하는 기관입니다. 센터는 정부와 민간 기업, 이 두 주체 사이에서 존재하는 불일치를 해소하고 기업의 글로벌 진출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부임 후 지난 4개월 동안, 센터의 확실한 포지셔닝과 정체성 확립에 힘을 쏟았습니다. 인프라를 새롭게 구축하고자 KPI(핵심성과지표)를 바꾸고 조직원들에 대한 역할을 재정립했습니다. 다행히 팀원들과 함께 고민하고, 공유하며 세운 비전들이 잘 안착되어 굵직한 성과들도 창출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연말, 300만 불 해외 투자 유치를 받았고, 공들였던 M&A를 위한 계약 체결을 앞두고 있습니다.

“미주기술확산센터장을 지내며 기술적인 안목을 키울 수 있었죠.”

ETRI 미주기술확산센터장 시절, 저는 ETRI가 개발한 수많은 기술 중 미국 시장에서 사업화 할 수 있는 10개의 기술을 선별하여, 사업화를 수행했습니다. 그 중에서 기억나는 사례 중 하나는 ‘센서네트워크기술’ 사업화입니다. 농업에 센서 기술을 적용해보자는 아이디어를 구상해 기술과 시장을 융합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의 한 와이너리에 센서네트워크를 통한 와인제조공정을 구축했습니다. 재배에서부터 수확·양조까지 전 과정이 센서 작동으로 이루어지는 시스템입니다. 와인은 와인의 온도, 습도, 제조 기간에 따라서 품질이 좌우되고 또 과일, 나뭇잎 등의 첨가물에 따라서, 각양각색의 맛으로 변하는 만큼 생성 및 숙성 레시피가 절대적인데, 이 레시피가 와인 양조자 개인 경험으로 축적돼왔었습니다. 하지만 센서네트워크기술로 인해 양조자 개인에게 귀속되던 와인의 품질을 시스템으로 균일하게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와인 산업의 사이클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 일은 저를 비롯한 연구진들에게도 재밌고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두 번째, 미국 클라우드 파일시스템 관리는 자바언어로만 가능해서 다른 언어로 제작된 시스템들 간의 호환성 문제가 잦았는데, 연구원에서 개발한 파일 시스템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 것입니다. 이 업무를 수행하면서 어느 시장에 어떤 기술을 적재적소에 활용할 것인지 꿰뚫어보는 직관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미주기술확산센터장을 지낸 2년은 기술 그 자체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기술 개발과 제작의 세밀한 과정과 단계까지 배우고, 익히는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이때 쌓은 경험들로 인해, 지금 본투글로벌에서 스타트업들의 사업 기획서와 기술 개발 전략을 통찰력 있게 검토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리스크 매니지먼트 능력이 투자를 결정짓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글로벌 시장은 그 리그만의 룰(Rule)이 존재하고, 해외 투자자들은 기업에게 원하는 답이 있습니다. 결국 국내 기업들은 그 룰에 따른 기술과 기업을 완성해야 하고, 투자자들이 원하는 답을 줘야합니다.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에 있어서 ‘세상에 없는 획기적인 기술 하나면 돼’라는 생각은 경계해야 합니다. 투자자들은 단지 기술에 설득당하지 않습니다. 기술 자체만으로는 우열을 가릴 수는 있지만, 기술 사업화라는 비즈니스 영역에서 기술은 하나의 요소이기 때문에 기술력이 투자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투자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그들의 관점에서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투자자들은 이렇게 투자 가치를 판단합니다. 기업이 기술력을 갖췄다는 전제하에, 기업의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위기관리 능력(Risk Management)을 갖추었는가. 만약 역경의 시기에 바람직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자질이 부족하다면,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투자를 받는데 있어서 큰 취약점이 될 수 있습니다.
예측불허인 시장 환경에서 위기가 찾아왔을 때, 그 난관에 매몰되지 않고 이를 어떻게 극복해 기회로 만들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 기업은 해외 투자자에게 우수한 기술을 선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기업의 위기 대처 능력을 경험 사례를 통해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경우에 따라 투자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기업이 과감한 혁신을 단행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본투글로벌은 이러한 글로벌 시장 상황과 해외 투자자들을 고려해 기업을 점검·진단하고, 솔루션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저희가 제안한 컨설팅에 맞게, 성장을 위한 변화를 받아들인 기업과 실질적인 전략을 기획하고, 체계적인 준비를 거쳐 함께 세계무대로 나가는 것이죠.

“실행력, 그게 모든 것을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기술 사업화에 적합한 기술은 응용가능하고 시장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술입니다. 좋은 기술은 필수 조건이고, 실행력이 기술 사업화의 성패를 가릅니다. 어느 대학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금 시간을 멈추고 이 순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세어보면 전 세계에 4명이 있다고 합니다. 어떤 아이디어라도 그 발상이 전 세계에 최소한 4개는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같은 아이디어를 생각한 4명 중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4명 중 1명꼴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4명중 1명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을 발휘한 사람들입니다. 다른 누군가는 생각에만 그친 일을 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기어코 행하는 것. 때로는 바보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혁신의 파도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실행 과정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함께 조사·기록·문서화·수치화·정리 등 사소해 보이는 작업들입니다. 국내 기업들은 이런 마이너(Minor)해 보이는 디테일을 끝까지 잡고, 끌고 갈 수 있는 힘이 약한 것 같습니다. 국내기업들이 해외 시장을 공략 할 때, 디테일의 힘을 믿고 좀 더 치열하게 몰입했으면 좋겠습니다.

“ETRI가 인류적 차원의 아젠다를 개발하고 제시해주세요.”

본투글로벌 센터장으로서 올 해의 목표는 2천만불 이상의 투자유치가 최우선 입니다. 특히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다양한 네트워크를 확보 중인데, 이 프로젝트에 동참할 100개 정도의 기업을 선발하고, 투자유치 협약 체결을 위해 힘쓸 생각입니다. 또한, 향후 5년 내에 본투글로벌에서 배출한 기업 중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스타트업)이 탄생 할 수 있도록 전 직원 모두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진심으로 드리고 싶은 말은 연구 개발자들에게 진정한 휴식이 필요한 때라는 것입니다. ETRI는 국가의 장래와 세계의 미래를 생각하고 기술 개발 연구를 해야 할 국가에 꼭 필요한 기관입니다. 그러나 현재 연구 환경들이 제대로 뒷받침 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창의적인 연구 활동을 위한 연구 개발자들의 휴식이 선행돼야 좀 더 입체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
더불어, 지금까지 잘해온 40년을 뛰어넘을 60년을 위하여 ETRI만이 그릴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리길 부탁드립니다. 국가최고연구소답게 담론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아젠다(Agenda)를 모으고, 개발하는 것이 ETRI가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주목하는 것들은 줌아웃하고, 더 큰 그림의 점들을 연결하는데 집중하는 ETRI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언제든지 달려가겠습니다. ETRI 동문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