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본투글로벌센터 센터장으로 부임하자마자 ETRI 선후배님들을 찾아가 인사를 드렸어야 하는데 벌써 3개월이 지나서 죄송한 마음입니다. 멀리서 늘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동문여러분들이 힘들고 어려운 연구 환경에서도 불철주야 애쓰신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모두 건강 잘 챙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본투글로벌센터 센터장을 맡은 이후, 센터를 재정비하느라 숨 가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본투글로벌센터는 미래창조과학부 K-Global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국내 스타트업·벤처기업의 글로벌 진출과 창업을 지원하는 기관입니다. 센터는 정부와 민간 기업, 이 두 주체 사이에서 존재하는 불일치를 해소하고 기업의 글로벌 진출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부임 후 지난 4개월 동안, 센터의 확실한 포지셔닝과 정체성 확립에 힘을 쏟았습니다. 인프라를 새롭게 구축하고자 KPI(핵심성과지표)를 바꾸고 조직원들에 대한 역할을 재정립했습니다. 다행히 팀원들과 함께 고민하고, 공유하며 세운 비전들이 잘 안착되어 굵직한 성과들도 창출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연말, 300만 불 해외 투자 유치를 받았고, 공들였던 M&A를 위한 계약 체결을 앞두고 있습니다.
ETRI 미주기술확산센터장 시절, 저는 ETRI가 개발한 수많은 기술 중 미국 시장에서 사업화 할 수 있는 10개의 기술을 선별하여, 사업화를 수행했습니다. 그 중에서 기억나는 사례 중 하나는 ‘센서네트워크기술’ 사업화입니다. 농업에 센서 기술을 적용해보자는 아이디어를 구상해 기술과 시장을 융합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의 한 와이너리에 센서네트워크를 통한 와인제조공정을 구축했습니다. 재배에서부터 수확·양조까지 전 과정이 센서 작동으로 이루어지는 시스템입니다. 와인은 와인의 온도, 습도, 제조 기간에 따라서 품질이 좌우되고 또 과일, 나뭇잎 등의 첨가물에 따라서, 각양각색의 맛으로 변하는 만큼 생성 및 숙성 레시피가 절대적인데, 이 레시피가 와인 양조자 개인 경험으로 축적돼왔었습니다. 하지만 센서네트워크기술로 인해 양조자 개인에게 귀속되던 와인의 품질을 시스템으로 균일하게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와인 산업의 사이클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 일은 저를 비롯한 연구진들에게도 재밌고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두 번째, 미국 클라우드 파일시스템 관리는 자바언어로만 가능해서 다른 언어로 제작된 시스템들 간의 호환성 문제가 잦았는데, 연구원에서 개발한 파일 시스템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 것입니다. 이 업무를 수행하면서 어느 시장에 어떤 기술을 적재적소에 활용할 것인지 꿰뚫어보는 직관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미주기술확산센터장을 지낸 2년은 기술 그 자체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기술 개발과 제작의 세밀한 과정과 단계까지 배우고, 익히는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이때 쌓은 경험들로 인해, 지금 본투글로벌에서 스타트업들의 사업 기획서와 기술 개발 전략을 통찰력 있게 검토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기술 사업화에 적합한 기술은 응용가능하고 시장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술입니다. 좋은 기술은 필수 조건이고, 실행력이 기술 사업화의 성패를 가릅니다. 어느 대학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금 시간을 멈추고 이 순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세어보면 전 세계에 4명이 있다고 합니다. 어떤 아이디어라도 그 발상이 전 세계에 최소한 4개는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같은 아이디어를 생각한 4명 중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4명 중 1명꼴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4명중 1명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을 발휘한 사람들입니다. 다른 누군가는 생각에만 그친 일을 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기어코 행하는 것. 때로는 바보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혁신의 파도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실행 과정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함께 조사·기록·문서화·수치화·정리 등 사소해 보이는 작업들입니다. 국내 기업들은 이런 마이너(Minor)해 보이는 디테일을 끝까지 잡고, 끌고 갈 수 있는 힘이 약한 것 같습니다. 국내기업들이 해외 시장을 공략 할 때, 디테일의 힘을 믿고 좀 더 치열하게 몰입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