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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03 201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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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를 버리고 맞이하는 새로운 오늘

정동진역은 1995년 방영된 드라마 ‘모래시계’의 촬영장소로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드라마를 통해 2분여 남짓 소개되었을 뿐인데, 하루 평균 5,000여 명이 방문하는 관광명소로 화려하게 떠올랐다. 서울의 광화문에서 볼 때 정 동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정동진. 드라마 여주인공이 긴 생머리를 바람에 날리며 홀로 서 있었던 이곳은 이제 함께 해돋이를 감상하러 찾아오는 연인들의 차지가 되었다.

정동진역에 도착하자 제일먼저 광장에 있는 해돋이 시간 안내판을 확인한다. 겨울이라 늦춰진 일출시간을 기다리며 천천히 역 주변을 구경한다.

역 근처에 있는 포장마차 분식집에서 간단하게 허기를 달래거나, 좀 더 여유가 있다면 근처에 있는 전망 좋은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해돋이를 기다리는 방법이다. 따뜻한 음식을 먹고 나니 새벽추위에 움츠러들었던 몸이 조금씩 풀리는 기분이다. 어느덧 해돋이 시간이 가까워져, 해변으로 걸음을 옮겨본다.

정동진역은 우리나라에서 해변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간이역이다. 역은 널따란 모래사장을 앞마당으로 삼고, 푸른 동해 바다를 끌어안고 있다. 역에 도착해 내내 해돋이 시간을 기다려온 사람들이 모두 해변으로 모여든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백사장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니 마치 사막에서 어린왕자를 기다리던 여우의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검푸른 수평선 끝으로 여명이 번져 온다. 날씨가 맑아 천천히 떠오르는 태양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아직 새해가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묵은 어제를 버리고 새로운 오늘을 맞이한다. 내년이 아닌, 오늘부터 다른 내가 되자고 다짐한다.
시간을 전시하는 테마 박물관

해돋이 광경을 바라보며 해안을 따라 천천히 걷다보니 어느덧 모래시계 광장에 도착한다. 2000년 밀레니엄을 맞이하며 강릉시가 한 기업과 함께 만든 세계 최대의 모래시계에는 무게 40톤에 달하는 모래가 들어 있는데, 이 모래가 떨어지는데 걸리는 시간이 1년이라고 한다. 보통의 모래시계가 잘록한 호리병 모양인데 비해 모래시계공원의 것은 둥근 모양으로 레일 위에 놓여 있다. 둥근 모양은 시간의 무한성을 상징하며, 기차레일은 영원한 시간의 흐름을 의미한다고 한다. 또한 모래시계의 유리면에서는 우리의 전통적 시간 단위인 12간지를 새겨 놓았다고 한다.

시계광장에는 모래시계 말고도 커다란 해시계가 놓여 있는데, 보는 법까지 자세하게 설명해놓고 있어 호기심 많은 이들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공원의 바로 옆에는 정동진 박물관이 있다. 타임뮤지엄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국내 최초의 시간테마박물관으로 증기기관차와 객차를 개조해 만들었다. 총 객차 8량 규모로 길이가 180m에 달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박물관에 들어선다. 기차를 개조해 만든 공간이기 때문에 건물에 들어선다는 느낌보다 마치 시간여행을 떠나는 듯 한 기분이 든다. 타임뮤지엄은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하고자 했던 인류의 오랜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B.C 4000년 경 이집트에서 사용된 해시계, 해가 없는 흐린 날과 밤을 극복하기 위한 고대의 물시계, 그리고 물질의 기본단위인 원자의 움직임을 이용한 현대의 최첨단 시계까지 시계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과학관도 좋지만, 무엇보다 시간과 예술의 만남이라 할 수 있는 중세관이 이곳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또 다른 놀라움을 준다.
부와 아름다움의 상징, 시계

지금도 그러하지만 그 옛날 시계는 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물건이었다. 특히 왕과 귀족들이 부의 상징으로 소유했던 화려하고 진귀한 각국의 중세시계들은 아름다움의 진수를 보여준다. 시계라기보다는 하나의 조각품에 가까운 시계들을 쭉 감상하다 4.6m나 되는 세계 최대의 자전거 시계 앞에서는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미국의 수학자 래리 프랜슨이 만든 이 시계는 자전거 기어뭉치 54개와 체인 27개를 조합하여 정확하게 홈의 개수를 계산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모든 부품을 오로지 나무로만 사용하여 손으로 일일이 깎아서 정교하게 만들어낸 대형나무시계도 눈길을 끌지만 무엇보다 관람객들의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것은 타이타닉호 침몰 순간 바닷물에 빠져서 멈춰버린 회중시계다. 타이타닉호의 공식 침몰시각을 알려주는 세계 유일의 회중시계로 박물관에서 특별 전시중이라고 한다. 전시된 시계 옆 공간에 마련된 포토존에서 영화 속 주인공처럼 포즈를 잡고 기념사진을 찍어보는 것 또한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다.
가슴이 먼저 응답하는 곳

오랜 시간 정동진이 많은 사람들의 낭만 속에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이곳이 단순히 눈으로 즐기는 여행지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이곳은 추억의 장소로, 또 누군가에게는 그리움의 장소로 기억된다. 커다란 모래시계 앞에 섰을 때, 쉼없이 떨어지는 모래를 바라보며 지금까지 보내온 시간들과 머물고 있는 현재와 앞으로 다가올 내일을 생각하게 된다. 다시 정동진역을 향해 걷는다. 때로는 감미롭게, 또 때로는 거칠게 불어 닥치는 바다 바람에 있는 그대로 맞서는 간이역과 해풍에 비스듬히 누운 소나무가 모습을 드러낸다. 지금 막 기차가 도착했는지 사람들이 역사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철도를 적실 듯 가까운 맑고 푸른 동해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끊임없이 두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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