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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03 2013.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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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예술의 창조적 만남

단순한 정보전달의 매개체에 불과했던 TV, 비디오, 모니터, 전화기 등을 예술작품으로 재탄생시키며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은 아티스트 백남준.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백남준아트센터는 과학기술의 산물을 예술의 영역으로 가져온 미디어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의 예술혼을 기리기 위해 2008년 10월에 개관되었다.

생전의 백남준이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라 명명하기도 했던 이곳에는 ‘달은 가장 오래된 TV다’, ‘삼원소’, ‘TV물고기’, ‘TV정원’, ‘TV부처’, ‘TV시계’, ‘로봇 456’ 등을 비롯한 그의 대표작들이 전시되어 있다. 다양한 전시뿐 아니라 교육 및 연구 활동을 통해 백남준의 실험적인 사상과 창조적인 작품세계를 널리 알리고 있다.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연 백남준의 깊은 내면을 엿보고, 그에게 영향을 받은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만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 특히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이 많이 찾는데, 2013년 12월 31일까지 19세 이하의 자녀와 함께 방문한 아버지 관객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이색적인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관객과 소통하는 공간이 곧 예술이 된다

백남준아트센터의 1층 한켠에는 유리로 둘러싸인 공공도서관 백남준 라이브러리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예술, 철학, 미학, 사회학 등의 다양한 범주를 아우르는 3,500여 권의 서적과 200개 이상의 시청각 자료가 정리되어 있으며 어린이들을 위한 책들도 비치되어 있어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라이브러리에 들어서면 도서관이 아닌 하나의 예술작품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들쭉날쭉한 선반과 모니터, 큐브 모양의 구조물이 설치미술 작품처럼 감각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라이브러리도 백남준의 세계관을 반영한 전시물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 공간은 정보와 이용자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는 소통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라이브러리 중앙에는 라이브러리 머신이라는 주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용자들은 라이브러리 머신의 컴퓨터를 이용해 상호작용을 하며 자료를 검색할 수 있다. 라이브러리를 찾은 방문객이 스스로 움직이며 지식을 습득하고 경험을 쌓는 동적인 공간이라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제껏 만나보지 못한 백남준의 세계로

전시장과 라이브러리를 천천히 거닐며 예술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노라면 백남준의 숨결이 바로 곁에서 느껴지는 것 같다. 그는 당대의 가장 현대적이고도 가장 독창적인 인물이었고, 관객의 역할을 중요시하는 작가였다.

관객의 육성으로 파장이 변화하는 작품인 ‘참여 TV’에서 엿볼 수 있듯, 백남준에게 참여와 소통은 중요한 키워드였다. 또한 ‘나의 파우스트’ 연작을 자세히 살펴보면 ‘전자혁명’이라는 낙서가 눈에 띄는데, 일찍이 정보통신사회의 도래를 예견하고 기술의 인간화라는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 백남준의 통찰력을 헤아릴 수 있다.

이어령은 백남준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비디오를 발명한 것은 미국이고, 이를 소형화한 것은 일본이고, 이것을 예술화시킨 사람은 백남준이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가을날, 미디어 아트의 새 지평을 연 백남준의 세계로 들어가 보는 것은 어떨까. 그의 예술에 흠뻑 빠져 있다 보면 문득 마음까지도 다채로운 빛으로 물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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