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68
Octo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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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ICT 기술로
축산의 환경을 바꾸다

팜인 유한영 대표

연구실에서 개발한 기술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20년간 ETRI에서 다양한 ICT 기술을 연구해 온 유한영 대표는 그 답을 현장에서 찾기 위해 연구원을 나와 창업에 뛰어들었다. 축산 환경을 개선하는 공기청정기와 제습기를 개발하며 기술이 실제 삶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순간을 경험하는 한편, 연구와 사업 사이에는 전혀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배워가고 있다. 연구자의 본능으로 문제를 탐구하고, 사업가의 시선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가는 유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TRI 웹진 구독자에게 대표님과 팜인을 소개해 주세요.

저는 2003년부터 2023년까지 대략 20년을 ETRI의 구성원으로 생활해 왔습니다. 졸업할 때 학위 논문은 탄소나노튜브 트랜지스터 연구였지만, ETRI에 들어오면서, 분자소자, 메모리, 가스센서, 플라즈마, 수소 저장, 바이오센서, 의료기기, 스마트축산, 감염병 대응 플랫폼 등 개별 소자에서 모듈, 플랫폼까지 많은 영역의 연구를 진행해 왔습니다.

주식회사 팜인은 가축이 사육되는 환경을 개선하는 제품을 개발하는 회사입니다. 사람 중심의 생산성만을 추종하는 목적을 가진 축사가 아닌 가축이 짧게 생을 누리는 환경을 조금이나마 쾌적하게 조정하는 제품을 개발하고 적용하고자 노력하는 회사입니다. 아울러 아이디어에 대한 한정을 두지 않고 새로운 것에 대한 탐색의 자유를 추구하고 있어, 현재 사업의 다양성 특히, 의료기기, 에너지 등 분야에도 진출하고자 제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팜인은 축사용 공기청정기인 AeroQbit-A와 축사용 제습기인 AeroQbit-D 등 축사 환경 개선을 위한 기기들을 제공합니다. 이 기술들의 차별점과 특징은 무엇일까요?

축사용 공기청정기는 말 그대로 사람이 가정에서 사용하는 공기청정기와 같이 제한된 공간에서 거주하는 가축들을 위한 공기청정기예요. 현재 많은 분이 축사에서 발생하는 악취에 대해서 민원을 제기하고 대체 기술을 요구하고 있는데요, 팜인의 축사용 공기청정기는 민원을 줄이고자 축사에서 배출되는 악취를 저감하는 것이 아니라, 축사 내부에서 발생하는 악취를 저감하고 세균과 바이러스를 살균해 가축들에게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제품이에요.

축사용 제습기인 AeroQbit-D는 축사 환경에서 온도와 습도가 낮아진 공기를 제공하는 제품이에요. 가축들에게 더 나은 거주환경을 만들어주는 제품이죠. 우리나라의 기후는 여름철에 고온다습한 특징을 가지고 있지요. 최근엔 이상기후로 더 극단적인 온도 상승이 일어나 여름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고요. 사람도 견디기 힘든 날씨인데, 이런 날씨에 돼지와 닭처럼 군집 관리가 이뤄지는 가축들은 대게 창이 없는 축사에서 밀집 사육되고 있어요. 그래서 높은 습도, 낮은 산소의 양, 체온 조절의 어려움 등으로 온습도 스트레스 지수가 극에 달하죠. 축사용 제습기는 이런 극단적 여름철 기후에 대응하기 위한 제품이에요. 축사 내부의 습도와 온도를 낮춰 가축이 쾌적한 공기를 마시고 온습도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제품이죠.

(왼쪽) 제습기(AeroQbit-D) 설치 사진 / (오른쪽) 축사용 공기청정기(AeroQbit-A) 설치 사진

직접 축사 현장을 둘러보시며 소비자와 마주할 순간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창업하시면서 기억에 남았던 뿌듯한 순간이나 인상 깊었던 일화가 있다면 나눠주세요.

연구원들 대부분이 그러하겠지만, 일단 저는 사업가 이전에 무엇보다 연구원의 본성을 가지고 있어요. 이 뜻은 본인이 개발한 기술, 제품이 실제 적용되었을 때 그리고 예상했던 결과물에서 예상했던 효과가 나타났을 때 전율을 느끼는 연구원의 특이한 기질을 갖고 있다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저도 축사용 공기청정기가 실제 운용될 때, 현장 농가 구성원, 특히 외국인 노동자분들의 공기가 달라졌다는 말을 들을 때, 그리고 한여름 외부 온도가 34℃이던 날 더위에 지쳐 무기력해진 가축들이 축사용 제습기가 가동되면 일어나 사료를 먹는다는 농장주분들의 얘기를 들을 때 희열감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왼쪽) 축사용 제습기 설치에 따른 생산성 향상 데이터 / (오른쪽) 축사용 공기청정기의 바이러스, 세균의 살균 기능 검증 결과

20여 년간 ETRI에서 ICT 분야를 연구하시다가 2023년 팜인을 창업하셨습니다. 오랜 시간 몸담았던 연구원을 떠나 창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연구원마다 각기 다른 특이적 기질을 가지고 있겠지만, 저는 궁극적 원리가 하나의 기술, 원리, 작용 등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즉, 과학적 이론이 어떤 소설의 주인공 입에서 나올 수 있고, 인문학적 단서가 뉴턴의 중력 법칙에서 시작될 수 있듯이, 궁극적 자연법칙과 기술들은 여러 분야의 요소들로 구성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이런 뜻에서 연구원에서 수행했던 여러 기술이 하나 또는 여러 적용처에 요긴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리고 기술개발(R&D)만으로 모든 것이 완료된 종점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 적용되어 쓰이는 것까지 그 끝을 확대하고 싶어서 창업하게 되었어요. 또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실행하기 위한 지난한 기획 과정을 거치면서 시간을 소비하는 것보다 바로바로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고 결과물의 도출을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는, 결재가 없는 연구를 하고 싶었던 것도 하나의 창업 이유예요.

연구자로서의 경험이 창업 과정에서 가장 큰 자산이 된 부분은 무엇이었고, 반대로 새롭게 배워야 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어떠한 주제가 있을 때, 그 주제를 이해하고, 이해한 대로 구체화하며, 그러한 과정을 즐기고, 나도 모르게 몸에 밴대로 움직이는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연구자라고 합니다. 이런 경험이 다년간에 걸쳐 쌓여 있게 되면, 어떤 기술을 개발하고 제품화하는 것이 습관이 되죠. 아이디어, 기술 등 많은 것들이 연구자로서 창업과 사업을 영위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그중에서도 본인도 모르게 집중하고 기술개발에서 생기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습관은 연구자들에게 특히 많이 주어진 우월한 자산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연구자가 연구원을 벗어나 사업을 한다는 건, 올챙이가 개구리로 변태해 아가미 대신 폐로 호흡을 시작하는 수준이에요. 연구원의 가장 큰 장점은 ‘주어진 업무에 대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죠. 하지만 사업을 할 때는 이 장점이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합니다. 사업의 전 과정이 단순히 문제를 하나씩 푸는 것으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죠. 모든 과정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고 연구자의 기질대로 파고들다 보면, 전체 사업을 이끌어가는 데 큰 어려움을 겪게 돼요.

실제 사업은 기술뿐만 아니라 고객, 영업, 마케팅, 시장 등 수많은 고리가 연결된 하나의 체인처럼 움직입니다. 기술은 그 수많은 고리 중 하나일 뿐인데, 기술 하나에 얽힌 문제를 사업 전체의 문제로 오해하고 거기에만 집착하는 오류를 범하기 쉬운 거죠.

저는 사업화 과정이란 결국 이런 시행착오들을 하나씩 극복해 가며, 기술개발부터 영업, 마케팅, 네트워크 형성까지 최적의 경로에서 해결점을 찾는 것임을 깨닫고, 계속해서 배워가고 있어요. 더불어 이 모든 준비의 순간들이 ‘우연’이라는 결과로 나타나고, 그것이 모여 비로소 ‘성장’을 만들어낸다는 귀한 깨달음도 얻고 있죠.

연구자에서 창업가로의 전환을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조언은 무엇인가요?

사람은 각기 다른 천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래서 창업을 꿈꾸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이도 있죠. 연구자 중에서도 사업가적 기질을 함께 갖춘 사람이 있는 반면, 뼛속까지 연구원인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어떤 기질을 가졌든 직접 창업에 뛰어들기 전까지는 자신에게 창업가로서 자질이 있는지 본인도 알기 어려워요. 저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기질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이미 창업가로서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창업 이후 ‘자신의 강점에 맞는 사업 방식’을 찾아 실행하는 것입니다. 기술개발과 영업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분은 총괄 경영을, 사람과의 네트워크가 강점인 분은 그 네트워크를 발판으로 삼으면 됩니다. 영업력이 뛰어난 분은 영업 중심의 사업을 추진하면 되고요. 즉, 모든 것을 혼자 완벽하게 해낼 필요 없이 각자의 능력과 강점에 맞게 사업 구조를 짜면 되는 것이죠.

결국 핵심은 ‘실행하느냐 하지 않느냐’, 그리고 미지의 영역에 대한 막연함을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작은 용기’가 있느냐입니다. 특히 이 용기를 낼 때 굳이 배수의 진을 치거나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을 필요는 없습니다. 기관은 실패했을 때 비난하거나 변명을 요구하지도 않고, 국가 차원에서도 도전을 뒷받침하는 제도와 지원책을 아주 잘 갖추어 두고 있으니까요.

팜인의 추후 계획과 대표님의 비전이 궁금합니다.

주식회사 팜인은 앞으로도 가축에게 이로운 시설과 장비 등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농가에 보급할 계획입니다. 대한민국의 겨울철은 매우 춥고, 여름철은 고온 다습한 극단적 기후는 축산 농가에 전혀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아울러 축산 농가는 이렇게 친절하지 않은 기후에 충분히 대응할 제품이 아직 개발되지 않은 상태이고요. 팜인은 이러한 열악한 기후에 적용될 제품을 꾸준히 개발하고, 실험실에서만 이루어지는 기술이 아닌 현장에 적용해 확실한 성능이 구현될 제품을 지속적으로 보급하고자 해요.

현재 팜인의 주력 사업 방향은 축산에 치중된 제품을 개발하고 운용하고 있어요. 그러나 연구원에서 겪었던 다양한 경험을 기반으로 축산에 국한되지 않는 여러 분야의 제품을 추가로 개발해 보급할 계획이에요.

아이디어가 있다고 모두 제품으로 확장되지는 않겠지만 있는 아이디어를 굳이 사장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형태의 의료기기,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 하베스팅 등 아이디어 제품을 개발하고 팜인을 아이디어로 충만한 회사로 만들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