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68
Octo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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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DEN STORIES

가난해진 스파이더맨이
AI를 활용하는 방법에 대하여

영화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가 보여주는 기술 시대의 모습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해당 이미지는 ai가 생성한 이미지 입니다.)

톰 홀랜드(피터 파커 역)의 스파이더맨이 돌아왔다. 철은 없었지만 토니 스타크(아이언맨)의 후원을 받아 비교적 풍족한 히어로 환경에 있었던 전작들과는 달리,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에선 땡전 한 푼 없는 거지보다 조금 나은 신세다. 자신이 잘못한 일에 대한 책임을 지는 대가로, MCU 세계관의 모든 사람에게서 피터 파커라는 존재가 지워졌기 때문이다. 가장 친한 친구도, 사랑했던 여자 친구도 그를 모른다. 스파이더맨은 살아있어도, 사회적 존재로서 피터 파커는 죽었다. 영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글. 이요훈 IT 칼럼니스트

ⓒ소니픽처스코리아

사회적으로 사망한 탓에 침울해진 것일까. 그는 남들이 쉽게 찾기 어려운 옥탑방 창고로 자신의 거처를 옮겼다. 그와 함께하는 존재는 자신이 직접 만든(또는 튜닝한) 인공지능 EV 뿐이다. 그리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흔히 그러듯, 스파이더맨 활동에 더욱 몰입한다. 현재의 피터 파커는 학교에 다니지도 않고, 가족과 친구도 없고, 일도 하지 않는다. 대신 더 많은 악당을 때려잡고, 더 유명한 뉴욕의 슈퍼히어로가 됐다.

EV는 이런 스파이더맨 활동을 가능하게 도와주는 존재다. 경찰의 무선 통신을 해킹해 어디서 사건이 일어났는지 파악하고, 스파이더맨이 사용하는 기기를 점검하고 수리하며, 도시 전체의 CCTV를 해킹해 어디에 악당이 숨어 있는지 찾는다. 나중엔 스파이더맨의 생체 신호를 체크해서 어느 만큼 위험한 상태인지도 확인한다. 대기업의 후원을 받던 과거와는 비교하기 어려운 장비지만, 한 도시에서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으로 살아가기에는 충분하다.

충분하긴 한데, 아무리 피터 파커가 천재라고 해도, 사회적으로 사라진 존재가 혼자 만들거나 가질 수 있는 장비는 아니다. 그래서 후원자가 누구인지, 어떻게 이런 장비를 장만할 수 있는지 궁금하지만 영화에서 딱히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대신 지금도 구현 가능한 정도의 수준으로 기술 수준을 맞췄다. 예를 들어, 음성으로 기계와 대화하는 것은 이젠 흔한 일이 됐다. 요즘 실리콘밸리에선 AI 에이전트에게 음성으로 프롬프트를 입력하며 일을 시키는 것이 대유행이다.

ⓒ소니픽처스코리아

도시 전체의 CCTV를 해킹하는 일? 미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Flock 감시 카메라와 유사하다. 이 기기는 주요 거리의 영상을 촬영해 차량과 사람들을 식별해 저장하고, 외부에서 그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해 특정 인물을 조회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걸 이용해 한 여성을 스토킹한 미국 경찰이 체포되기도 했다. 영화에선 좀 더 복잡하지만, AI로 생체 신호를 측정하고 분석하는 기술도 이미 활발하게 연구 중이다.

영화에 나오는 다른 기술도 상상 속 이야기가 아니다. 강철보다 강하지만 나일론보다 가벼운 인공 거미줄은 이미 일부 상용화됐다. 영화에서 슈퍼히어로의 폭주를 되돌리기 위해 사용된 DNA 억제기의 기반인 siRNA는 실제로 존재하며, FDA에서 승인한 유전 질환 치료제에 쓰이고 있다. 세부 사항에 틀린 부분이 있지만, 의외로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현재 상용화된 기술에 기반하고 있으며, 앞으로 이어질 영화에서도 중요한 장치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현실을 보여주는 작은 거울일지도 모른다.

다행히 피터 파커는 슈퍼히어로 이전에 똑똑하고 훌륭한 엔지니어였다. 그래서 기술을 잘 이용했다. 가설을 세우고, 시제품을 만들고, 그걸 테스트해 검증하며, 검증 결과를 바탕으로 제품을 개선한다. 주어진 현실에 절망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의 도움을 받는다. 반면 기술을 악용하는 사례도 있다. 영화 속 ‘대미지 컨트롤’이란 단체가 하는 짓이 그렇다. 이들은 여러 빌런에게서 빼앗은 무기를 활용하지만, 타락한 집단이라 질서의 이름으로 온갖 악한 짓을 저지른다.

그럼 기술은 중립적이며, 문제는 기술 아니라 사람이니, 우리가 기술을 선하게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할까? 미안하지만,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 어떤 기술이 존재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이 바뀐다. 안전한 엘리베이터를 만들게 되자 고층 건물이 등장했고, 고층 건물이 등장하자 도시가 완전히 바뀐 것처럼. 현실의 AI는 어떨까. 피터 파커처럼 많은 사람은 내 일을 돕는 존재로 쓰지만, 심각한 사기와 보안 문제도 일으키고 있다. 기술이 어떤 변화를 연쇄적으로 불러올지는 쉽게 짐작하기 어렵다.

이 영화에 등장한 여러 기술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는 해결책처럼 쓰였지만, 앞으로 이어질 영화에선 거꾸로 문제를 만드는 기반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 번 가능하다고 알려지면, 비슷한 기술과 제품이 연달아 등장하는 것은 순식간이니까. 그렇게 기술로 바뀐 환경에서 우리는 어떻게 적응해야 할까. 아니, 어떻게 적응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가벼운 영화를 보고 남은 무거운 질문이다. 이야기와 현실이 부딪히면서, 농담이 농담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