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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 분야의 발전을 위한 일편단심

이혁재 카이스트 명예교수

1983년, ETRI와의 인연으로 디지털 이동통신 기술개발에 앞장섰던 이혁재 교수.
그는 CDMA 상용화 성공의 산증인이며, 전파 분야의 발전을 위해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정년퇴임 이후에도 중소기업, 개도국을 도우며 전파 분야의 발전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 왔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라며 지나온 날들을 회상하는 이혁재 교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TRI 웹진 구독자들에게 본인의 소개와 근황을 전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이혁재입니다. 저는 1983년도에 학위를 마치고 ETRI에 입소해서 무선통신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이후 2000년도에 한국정보통신대학교 교수로 일하다가 2013년도에 카이스트에서 정년을 맞이했습니다. 정년 이후부터 2020년까지 한국전파진흥협회에 속한 전파엔지니어링랩을 만들어 전파 기술과 관련된 중소기업을 돕는 일을 했고요. 지금은 자유롭게 정년을 즐기며 지내고 있습니다.

ETRI에서 주력하셨던 연구는 무엇인가요?

84년도 당시 우리나라는 전파 무선통신 기술이 크게 발달하지 않았어요. 분단국가이다 보니 무선통신에도 민감했고요. 그래서 일반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은 아니었어요. 자연스레 연구 활동도 미미했고요. 초반에는 무선통신을 규제하는 연구를 진행했어요. 무선통신 보안 기술, 전파 감시 기술 위주의 과제를 수행했죠.

연구를 진행하면서 연구원들을 교육하고, 연구 장비를 마련해서 연구실을 꾸리는 일들을 했습니다. 동시에 원내나 학계, 기술계에 전파 활성화를 위한 계몽 활동을 했어요. 강연회나 세미나를 열어서 무선통신 기술의 필요성과 편리성을 소개하며 사람들을 설득했죠.

80년대 말이 되어서야 디지털 이동통신 개발이 미국, 유럽, 일본을 중심으로 붐이 일었어요. 우리나라도 이동통신에 힘을 쏟기 시작했죠. 그렇게 연구를 시작하게 된 것이 CDMA예요. 무선통신 규제 기술부터 이동통신 기술까지 연구했네요.

ETRI에서 가장 보람 있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첫 번째는 전파 감시 시스템 개발 업무를 했을 때예요. 기술적으로 어려웠고, 그 당시 기준으로 예산도 많이 투입됐었죠. 5~6년 정도 개발을 해서 시제품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체신부에서는 현장에서 사용하기에 무리가 있다며 결과적으로 테스트만 진행하고, 실용화에는 실패했죠. 하지만 이 과제와 관련된 다른 부가적인 과제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됐어요. 체신부 현업 부서에서는 저희가 부가적으로 개발한 기술을 활발하게 사용했고요. 이 과정에서 서로 의견을 조율하고, 수많은 테스트를 함께 하면서 실패와 성공을 맛보았어요. 이를 계기로 체신부의 기술부서와 ETRI의 전파기술부가 인간적으로 서로 신뢰하고 믿을 수 있는 관계로 발전하게 되었는데요. 이게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어요.

두 번째는 본격적으로 디지털 이동통신 기술개발을 진행했을 때예요. 우리나라는 늦게 이동통신 기술개발에 합류한 터라 관련 기술에 대한 경험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해외 업체들과 함께 공동연구를 진행하려고 연락을 돌렸죠. 그러나 메이저 업체들에게 모두 거절당하고, 당시 벤처기업이었던 퀄컴이 CDMA 방식을 소개하면서 공동연구를 제안했죠.

이혁재 교수가 이동통신개발 초기에 CDMA 방식 추진을 위한 설명자료로 활용한 CDMA 무선방식의 송신부와 수신부의 기본 동작 개념도

80년대 후반엔 이동통신과 관련된 세계 메이저 업체들은 TDMA 방식을 주로 개발했어요. CDMA는 새로 제안된 기술이라 주변의 우려와 비판이 컸죠. 그러나 체신부와 ETRI가 서로를 신뢰하게 되었던 것이 큰 힘이 되었어요. 정부의 강력한 지지와 지원을 바탕으로 퀄컴과 공동 연구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연구 결과는 성공적이었어요. CDMA 방식 사용자가 상용화 개시 1년 만에 100만 명을 돌파하는 쾌거를 이루었거든요. 그래서 3세대 방식으로 CDMA 기술이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었고요. 이 과정이 정말 보람 있었고, 국가에 큰 기여를 했다는 사실에 뿌듯합니다.

연구원을 떠나 교수, 전파엔지니어링 랩 소장 등으로 활동하시면서 전파 분야의 발전을 위해 계속해서 힘쓰셨습니다. 이 열정의 원천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유연하지 못해요. 임기응변에 뛰어난 사람들이 있잖아요. 저는 그런 편이 아니고 굼뜬 편이에요. 엉덩이가 무거워서 잘 움직이기 싫어하죠. 그래서 그런가 제가 배운 게 전파 분야 하나거든요. 제가 배운 것이 제가 잘하는 것이고, 저는 잘할 수 있는 것을 그냥 한 것밖에 없어요. 대단한 신념이 있었다고 하기보다는, 있는 자리에서 주어진 역할을 잘 해내려고 노력해 온 거예요. 더불어 ETRI에서 훌륭한 엔지니어들과 함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참 감사한 일이죠.

ETRI 후배 연구원들에게 한마디 하신다면요?

국책연구원의 연구원으로서 일할 수 있는 것은 좋은 기회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자부심을 느끼며 일했으면 좋겠어요. 사기업보다는 외부에서 본인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기술적 활동을 제약 없이 할 수 있고요. 미래지향적 연구가 가능하고, 외부 활동을 하면서 자기개발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으니 이 기회를 잘 활용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연구라는 것이 9 to 6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말도 해주고 싶어요. 항상 고민하고 찾아보는 태도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언제 어디서 연구에 대한 아이디어가 샘솟을지 모르거든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나이가 나이인지라 건강 유지에 힘을 쓰려고요. 더불어서 옛날에 함께 연구했던 친구들과 모임을 자주 가지면서 여유롭게 지내고 싶네요. 몇 년 전에 IEEE Milestone 업적상에 우리나라의 세계 최초 CDMA 상용화 개발 건을 신청했어요. 상용화 이후 25년이 지나야 신청할 수 있는 상이죠. 인류를 편하게 만들어준 기술에 수여하는 상입니다. 감사하게도 이번 6월에 수여식이 진행될 예정이에요. ETRI에서 개발한 기술 중 Milestone 업적상을 신청할 수 있는 기술이 찾아보면 더 있을 겁니다. 기회가 된다면 이런 기술들을 발굴하는 일에도 힘써보고 싶네요.

이혁재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리건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83년부터 2000년까지 ETRI 전파기술개발실장, 전파기술부장, 무선방송기술연구소장을 역임하며 CDMA 디지털 이동통신사업을 이끌었다. 2001년 ICU(한국정보통신대학교) 공학부 교수로 임용돼 기획처장, 전파교육센터연구소장, 특허청 심사관, IT신기술교육센터장, 기획처장, 총장대행 등을 역임했다. 2013년 카이트스 명예교수로 정년퇴직하였으며,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전파엔지니어링랩 소장으로서 전파 관련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일에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