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 기술
“카메라는 보이는 것을 찍지만, X-ray는 보이지 않는 것을 찍는다”라고 프랑스 예술가 자비에 루케지는 말했다.
그의 말처럼,
X-ray는 미술 작품을 분석하거나 혹은 복원할 때 흔히 쓰이는 방법으로, 눈으로는 판별하기 어려운 것이나,
때로는 판도라의 상자처럼 감추고 있던 비밀을 보여주기도 한다.
미술 작품도 시간이 지나면 사람이 노화의 과정을 거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손상된다. 또 예상할 수 없는 사고나 환경에 따라 상하기도 한다. 사람이 아프면 의사를 찾듯 미술 작품은 복원가의 손을 거쳐 치료하게 된다. 복원작업은 물감이 떨어져 나가거나, 색이 변하거나, 손상되는 등 미술 작품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 다양한 방법을 통해 원상태에 가깝게 되돌리는 작업이다.
1920년 루브르에서 처음으로 X-ray를 이용해 그림을 촬영한 뒤로 복원 기술은 시시각각 발전하고 있다. 우리가 아는 명화 대부분은 복원가의 손길을 거쳐 우리 앞에 전시되고 있다.
미술 작품에게 미술 복원가들은 의사나 다름없는 존재다. 그들은 훼손된 작품을 복원하기에 앞서 어떤 재료와 제작 방법을 사용했는지 등 미술 작품의 상태를 철저하게 조사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조사에는 X-ray나 자외선, 적외선 등의 촬영이 진행되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종종 해당 작품을 그린 작가 외에는 아무도 몰랐던 작품의 비밀을 밝혀내기도 한다.
우리가 병원에서 몸의 뼈나 장기 등을 촬영할 때 쓰는 X-ray 촬영이 미술 작품을 촬영할 때에도 쓰인다. 이는 작품의 내부구조를 이해하거나 작품 제작 방법과 과정을 파악 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적 결함을 찾는 데 도움을 준다. 해당 작품에 X-ray를 쏘아 반사되어 나오는 복사선을 분석하면 원자의 종류에 따라 파장 값과 에너지 값이 다른데, 이는 물감의 성분 중 무기안료의 성분 분석에 도움이 된다. 이를 통해 안료의 정확한 성분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변색된 안료의 성분까지 알 수 있어 작품이 본래 어떤 색이었는지도 유추할 수 있다. 또 회화 작품의 경우 작품 표면 아래에 숨겨진 그림을 밝혀낼 수도 있다.
예술가들은 사람들 모르게 자신의 작품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남기거나 어쩔 수 없는 이유로 그림을 덧칠하기도 하고 지우기도 했다. 눈으로 보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던 사람들은 X-ray를 통한 복원 기술이 등장한 이후 종종 깜짝 놀랄 만한 명화 속 숨겨진 비밀을 발견하게 됐다.
<야경(The Night Watch)>로 잘 알려진 렘브란트의 작품도 그중 하나다. 어두운 배경 탓에 작품의 명제가 <야경> 또는 <야간 순찰>로 정해졌던 작품인데, 한밤중에 어린아이까지 길거리로 나와 악기와 화려한 깃발을 들고 순찰한다기에는 어쩐지 이상한 느낌이다. 그런데 이 그림이 1974년 한 복원 회사에 의해 검게 변한 황화납이 제거되면서 그림이 한 톤 밝아졌고, 어둠 속에 가려진 군중들의 모습이 드러나면서 한밤중의 산책이 아닌, 대낮에 이뤄진 행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난 2022년에는 네덜란드 출신의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미공개 자화상이 무려 137년 만에 새롭게 발견되었다. 반 고흐의 1885년 작품인 <농부 여인의 초상(Head of a Peasant Woman)>을 소장하고 있는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이 해당 작품을 X-ray 검사하다 발견한 것이다.
농부 여인 뒤로 챙이 넓은 모자를 쓴 남성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가 반 고흐로 확인되었다. 그는 목도리를 느슨하게 두른 채 수염이 난 얼굴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그가 종종 돈을 절약하기 위해 캔버스를 재사용했고, 캔버스를 뒤집어 반대쪽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번에 발견된 그림 역시 자화상 위에 판지를 붙이고 뒷면에 <농부 여인의 초상>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고흐는 1890년 사망하기 전까지 총 35장의 자화상을 남겼는데, 이번 계기로 새로운 자화상이 확인되어 자화상의 수가 총 36장이 되었다.
또, 파블로 피카소의 <기타 치는 눈먼 노인(The Old Guitarist)>에도 우리가 몰랐던 비밀이 숨겨져 있다. 피카소의 청색시대 작품에 속하는 이 그림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완전히 단절되어 있는 고독한 인물상을 표현한 작품이다. 남루한 옷차림에 앙상하게 마른 노인이 바닥에 앉아 기타 연주를 하고 있는 모습과 작품 전체를 표현한 청색은 쓸쓸하고 우울한 느낌을 준다.
이 작품의 숨겨진 비밀은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Art Institute of Chicago)의 연구원들에 의해 밝혀졌다. 해당 작품을 X-ray로 촬영하는 과정에서 그림 아래에 숨겨진 여러 가지 윤곽들을 발견한 것이다. 아래로 고개를 떨군 노인 옆으로 여성의 실루엣이 보인다. 이들은 이 실루엣의 정체는 당시 피카소가 새 캔버스를 살 돈이 충분하지 않아 캔버스 위에 여러 번 덧칠했고 그로 인해 생긴 것으로 판단했다. 수많은 명작을 탄생시키고도 살아생전 생활고에 시달렸던 피카소의 애환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우리는 작가가 숨겨놓은 메시지를 발견하기도 하고, 또 전혀 몰랐던 작품의 세계나 당시 작가의 삶을 가늠해볼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처럼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어쩌면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동안 익숙하다는 이유로 보이는 만큼만 보았다면, 이전과는 다른 시각과 생각, 그리고 새로운 시도로 삶을 대하는 것은 어떨까. 미처 몰랐던, 아니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었던 작품 이면의 이야기를 발견하듯 우리 삶에도 더 즐거운,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질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