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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이동 통신의
개척자를 만나다

한기철 前 이동통신연구소장

최초 국산 전자교환기 TDX, 세계 최초 CDMA 이동 통신 시스템, 무선 휴대 인터넷 Wibro, 4G LTE 기술.
통신 기술의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을 이동 통신 강국으로 만든 기술들이다.
이 기술 뒤에는 한기철 전 이동통신연구소장의 ‘끝없는 도전 정신’이 녹아 있었다.
부족함 속에서 원동력을 찾아 새로운 이동 통신의 역사를 쓴 그를 만나보았다.

ETRI 웹진 구독자분들께 본인의 소개와 근황을 전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전 이동통신연구소장 한기철입니다. 정년퇴직을 한 지 10년이 흘렀네요. 요즘은 교회 활동과 더불어 연구단지 은퇴 동문회 연합 모임인 과학기술연우연합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은퇴 고경력 과학자들의 재능 사회기부와 존재 가치 향상, 국가 과학 기술 발전을 위한 제언과 노력에 힘쓰고 있습니다.

ETRI 재직 시절 주력하셨던 연구와 ETRI에서의 추억에 대해 들려주세요.

대한민국 통신 기술 발전의 역사와 함께한 한기철 전 이동통신연구소장

1977년 ETRI의 전신인 한국전자통신연구소 1기로 입사했습니다. 제 역할은 외국에서 수입하는 전자교환기의 운용 기술을 습득해 체신부*의 전화국 운영자에게 쉽게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 전화 통신망을 설계하고, 도입된 전화교환기가 원활히 설치되고 개통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어서 1984년 대전으로 이전해 전전자교환기 TDX-1 개발에 참여했고, 우리 손으로 국산 교환기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연구개발은 TDX-10, TDX-ISDN 연구개발로 이어지며 우리나라가 전국적으로 국산 교환기를 사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3년 이동통신연구단으로 이전하여 이동전화 연구개발을 지휘하며 마침내 CDMA 디지털 이동 통신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3G 이동 통신인 IMT-2000 세계 표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우리의 특허 기술을 표준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통신 부분 특허 기술료 지급 국가에서 기술료 수익 국가로 바뀌는 쾌거를 이뤄냈습니다.
* 체신부(遞信部): 우편·전신환·우편 대체(對替)·전파관리 및 전기통신에 관한 사무를 장리(掌理)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중앙행정기관을 말한다. 체신부는 1994년 정보통신부로 개편되었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Wibro 개발 시험 모델 앞에서(2003년 12월)

2002년 이동통신연구소장으로 승진하여 4G 이동 통신 연구 사업을 이끌었습니다. 무선 휴대 인터넷 WiBro와 4G LTE 기술의 기반을 마련해 우리나라 휴대폰이 스마트폰으로 교체되는 이동전화 기술의 완성을 만들어 냈습니다.

ETRI 연장근무까지 합쳐서 40년을 연구원으로 지냈네요. 그 사이에 우리나라 통신 발전의 모든 핵심 연구과제에 참여했고, 그 연구 결과로 우리나라를 세계 최고의 정보통신 선진국으로 만드는데 이끌어 가는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ETRI 재직 시절 연구개발의 원동력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끝없는 도전 정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반복된 연구개발이나 기존 시스템의 개량화 연구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방식의 플랫폼이나 시스템을 개발하고 실현해 보는 도전을 좋아했습니다. 새로운 세상과 소통을 위한 생각에 빠지면 잠이 안 올 정도로, 상상하고 생각하며 실현해 보기 위한 노력과 도전을 지속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늘, 부족함이 새로운 원동력을 만들었습니다. 비싼 외국 전자교환기의 수입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국산 전자교환기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유선 전화가 이동 통신이 안 되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CDMA 디지털 이동 통신 시스템을 만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전은 계속해서 이어졌습니다. CDMA는 미국 특허를 사용해야 했는데요. 특허료 해외 지출을 유발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위해 3G에 우리 특허 기술을 사용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막대한 특허료 수입을 창출할 수 있게 됐죠.

3G는 데이터 통신 속도가 느리다는 지적을 개선하기 위해 4G OFDM 무선 전송 기술을 사용함으로써 세계의 무선통신 기술 발전 방식을 바꾸어 놓기도 했습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죠. 새로운 기술 소요와 방향을 찾는 것이 연구자 리더십이 해야 할 일일 것입니다.

현재 5G를 넘어 6G 개발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재 이동 통신 기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수많은 연구 제목을 떠 올릴 수 있습니다. 세상은 계속 변할 것이고, 소통과 통신을 위한 기법들은 놀랄 정도로 발전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필요한 기술들을 찾아서 발굴하고 이를 구축하기 위한 플랫폼을 디자인하면서 연구 과제화하여야 할 것입니다.

단순히 이동 통신의 데이터 전달 속도를 높여야 하겠다는 기술적 노력만으로는 세상의 변화를 추구할 수 없습니다. 5G가 별로 좋은 호응을 받지 못하는 이유를 생각하면 알 수 있습니다. 통신 요금은 비싸지만, 기존의 3G, 4G와 비교했을 때 차별화되는 유익한 서비스나 편의성이 없어요. 6G를 생각할 때도 같은 문제입니다.

2G, 3G, 4G 등 G는 Generation, 즉 세대가 교체되었다는 말입니다. 단지 속도가 빨라졌다고 말하는 것은, 운동을 해서 몸이 좀 건강해졌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요. 이동 통신 기술 세대가 교체되려면 서비스에서 혁신이 일어나야 합니다. 내가 잘한다고 개발한 기술을 내밀지 말고, 세상에 필요한 기술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필요한 것을 못 찾았으면 과감히 다른 일을 해야지요.

한기철 소장이 기존 통신 네트워크의 세대(Generation) 개념을 차원의 개념으로 재정리, 확장 시킨 내용

ETRI 후배 연구원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메시지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살펴보고, 기록하고, 생각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타인의 논문이나 문헌을 찾는 것은 선임 경험자의 노하우를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연구 결과조차 기록하기를 싫어합니다. 연구 계획서는 잘 쓰지만, 결과물 기록보고서는 내용이 부실합니다. 기록이 없으면 역사가 없고, 역사가 없으면 전통과 지적 축적이 없게 됩니다. 생각하지 않으면 남들의 뒤나 따라가겠지요.

열심히 따라만 가도 잘 살 수 있는 시대도 있었으나, 이제는 아닙니다. 세계 최초, 최고만이 살아남는 세상입니다. 군대나 소방관은 연습과 훈련은 열심히 해도, 출동 활동 결과가 없어야 좋은 일이지만 연구원은 반대입니다. 열심히 노력한 것은 중요하지 않고, 활동 결과와 성과가 없으면 존재할 이유가 없는 조직이 됩니다. 무엇을 연구해야 하는지 목표를 잘 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추후 계획과 목표가 어떻게 되시나요?

지금은 정보통신 기술을 축적해 나가는 것보다, 인문학 같은 더 폭넓은 지식을 배우고 쌓는 일을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세계 미술사, 서양 역사와 철학, 기독교 역사해석, 세계 지정학적 정치철학 등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2년 전에는 프랑스 문학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장편 소설 10집을 1년에 걸쳐 모두 읽었습니다.

가능하면 세계여행도 열심히 다니려고 합니다. 코로나 이후 미국에서 3달 살기와 카자흐스탄의 신장 위구르 피난민 탐방 여행, 그리고 작년 말에는 타이완 크리스마스 음악 축제를 다녀왔습니다. 은퇴 후 늙어 가는 것은 피할 수 없으므로, 남은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가기 위해 꼰대가 되지 말고 어르신이 되자는 노력을 몇 명 친구들과 함께해 나가고 있습니다.

한기철
고려대학교에서 재료공학과 학사·석사 및 박사를 취득하였다.
1977년 KIST 부설 한국전자통신연구소에 입소하여 TDX 품질보증실장, AT&T Bell Labs 초빙연구원, 이동통신계통연구부장, 이동통신연구소장을 지냈다. 2014년 ETRI에서 정년 퇴임한 후, 2016년 QUI Inc.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2017년부터 현재까지 과학기술연우연합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1986년 TDX-1 개발유공자(체신부), 1992년 연구단지발전유공자(과학기술처), 1996년 철탑산업훈장(정보통신부), 2002년 신산업경영대상(21세기경영인클럽), 한국이동통신산업 해외진출 공로감사패(한국정보통신수출진흥센터) 등을 수상하였다.

ETRI Webzine Vol.236 FEBRU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