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인터넷의 아버지
전길남 박사
1943년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인 전길남 박사는 1970년대 말 정부 초청 과학자로 귀국해 1982년,
한국전자기술연구소와 서울대학교 사이를 연결하는 최초의 인터넷 네트워킹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대한민국을 세계에서 2번째로 인터넷을 연결한 나라로 만든 것이다.
대한민국 인터넷 40주년을 맞아 ‘인터넷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전길남 박사를 만나 봤다.
아무래도 옛날 생각이 많이 납니다. 당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게 정말 쉽지 않았는데, 함께 연구했던 사람들의 인터넷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어요. 제가 한국에 왔을 때, 한국전기통신연구소(현 ETRI) 소장이었던 경상현 박사가 여러 조언을 해 주곤 했어요. 어떻게 보면 경쟁하는 사이였음에도 연구 성과를 위해 협력해 줬던 거죠. 1982년도에 인터넷 연결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성공했는데, 평가는 별로 좋지 않았어요. 컴퓨터를 만들지 않고 왜 이런 걸 만들었느냐는 반응이었죠. 연구 지원금이 끊기는 바람에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그때 당시 한국전기통신공사 부사장으로 있던 경상현 박사의 도움을 받았어요. 아마 그 도움이 없었더라면 힘들었을 거예요. 이 분야에 경험이 있는 사람도 없었는데, 그럼에도 대학교, 연구소, 기업들이 모두 협력해줬어요. 경쟁이 아니라 협력하는 분위기로 모두가 힘을 합쳐서 해냈던 거죠.
그때 정부에서 추진했던 해외과학자 유치 사업을 통해 입국했습니다. 일본에 있을 때부터 조국의 선진화에 기여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귀국했어요.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은 몹시 열악했어요. 대한민국이 모국인 사람들은 그래도 괜찮았겠지만, 저처럼 외국에서 온 사람이 봤을 때는 많이 힘들었죠. 귀국행을 결정했을 때, 미국에 있던 동료들은 모두 말릴 정도였어요.
당시에 긴장감이 엄청났습니다. 모든 연구원들이 구미에 있던 전자기술연구소 컴퓨터개발실에서 컴퓨터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때 서울대학교에서 보내기로 했던 문자 중 가장 첫 글자, ‘S’가 화면에 뜨니까 다들 환호했어요. 1,200bps 속도의 전용회선으로 연결돼 통신에 성공한 거였어요. ‘SNU’ 세 글자가 완성되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우리나라에서 컴퓨터와 컴퓨터를 연결해 통신에 성공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인터넷은 곧 ‘연결’을 뜻합니다. 세상이 발전하면서 웬만한 사람들 모두가 컴퓨터, 스마트폰을 가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서로가 이어졌어요. 인터넷은 기계만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연결되어야 진정한 가치가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현재 우리나라의 인터넷은 잘되고 있는 편입니다. 종종 속도는 세계에서 최고라는 이야기도 들리고, 국민 대부분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기도 해요. 그렇기 때문에 더 나아가서 인터넷으로 존경받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넷으로 존경받는 다섯 국가 중 하나만 되어도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반대로 우리나라 인터넷이 형편없다는 소리를 들으면 정말 슬플 것 같아요. 잘못하면 형편없는 나라 중 하나가 될 위험성도 있는 거죠. 어느 나라에도 그런 위험성은 있습니다. 기술이라는 것이 좋은 방향으로만 사용되면 좋겠지만, 이상한 방향에서 사용될 위험성도 있는 거예요. 요즘 발전하고 있는 AI도 마찬가지고, 우리 인터넷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해요.
간단합니다. 제 나이가 지금 80세인데요, 앞으로 제대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은 10년 정도가 될 것 같아요. 90세가 되면 은퇴하고 쉴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이제 남은 시간 동안은 세계 인터넷 60주년, 우리나라 인터넷 50주년에 대한 것을 엮은 책 만드는 일에 집중할 것 같습니다. 어찌 됐든지 제가 만든 것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지고 싶습니다.
출처: nexoncomputermuseum, CC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