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짐작키
어려운 세계
양자 세계는 쉽게 짐작하기 어려운 초미시의 영역이자 기존 뉴턴의 고전역학이 지배하지 않는 불확실한 비밀의 세계다. 그렇다고 양자 영역이 우리 일상과 영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니다. 양자역학의 원리들은 현재 많은 분야에 응용되고 있으며, 무한한 가능성은 우리 삶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갈지도 모른다. 양자물리학은 양자 컴퓨팅, 양자암호체계, 양자 인터넷으로 확장되며 인류를 새로운 미래로 이끌고 있다.
양자란 ‘에너지 덩어리’를 의미한다. 물리적으로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에너지 최소 단위이기도 하다. 양자를 연구하는 양자론은 에너지가 덩어리 혹은 알갱이로 존재한다는 개념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양자론의 문을 연 과학자는 바로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다. 아인슈타인은 기존에 뉴턴이 주장한 ‘빛은 알갱이’라는 가설을 규명하며 빛이 파동이자 입자라는 것을 밝혀낸다. 양자의 성질을 빛에서 찾아낸 것이다.
하지만 양자역학은 오랫동안 쉽게 예측할 수 없었다. 양자역학이 다루는 미시 세계는 인간이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정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광자론으로 양자역학의 문을 연 아인슈타인조차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말로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양자역학을 이루는 중요한 축인 파동 방정식을 만든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도 마찬가지다. 슈뢰딩거가 양자역학을 부정하기 위해 제시한 사고 실험(Thought experiment)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양자역학의 중첩성을 설명하는 최적의 사례로 불린다. 천재들도 예상 못 한 양자 세계의 신비함이랄까.
양자역학은 거의 모든 자연의 다양한 성질을 설명하며 현대 물리학의 기반을 마련했다. 하지만 여전히 양자역학으로는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양자역학의 결함을 보완한 것은 영국의 물리학자 폴 디랙(Paul Dirac)이다. 폴 디랙은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결합시켜 전자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방정식을 만든다. ‘디랙 방정식’은 전자가 입자면서 동시에 파동이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 이로써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을 양자론적으로 기술한 양자 전기역학의 기틀이 마련된다.
인류의 난제를
풀어줄까
양자 전기역학(Quantum electrodynamics, QED)이 중요한 이유는 슈퍼컴퓨터를 능가하는 양자컴퓨터나 어떤 암호도 뚫을 수 없다는 양자암호 보안체계, 해킹이 불가능한 양자 인터넷 등 양자 관련 기술이 모두 양자 전기역학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폴 디랙을 통해 기틀이 마련된 양자전기역학은 미국의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을 통해 크게 발전한다. 그는 빛의 현상을 숫자로 계산한 ‘파이만 다이어그램(Feynman diagram)’을 통해 ‘양자 전기역학’에 커다란 공헌을 한다.
이후 파인만은 1981년 ‘꿈의 컴퓨터’라고 불리는 양자컴퓨터의 개념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그는 현재 인간이 살고 있는 거시 세계에서는 양자의 미시 세계를 이해하기 어렵다며 양자 세계를 알기 위해서는 양자컴퓨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양자컴퓨터는 슈퍼컴퓨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성능이 뛰어나다. 이진법을 사용하는 슈퍼컴퓨터는 계산하는 처리속도와 양이 제한적이다. 하지만 양자컴퓨터는 슈퍼컴퓨터가 1만 년 동안 계산할 것을 단지 200초 안에 풀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연산 능력을 가진다.
1997년 IBM에서 2 큐비트 규모의 양자컴퓨터가 세계 최초로 만든 이래 오랫동안 지지부진했던 양자컴퓨터 개발은 지난해 구글에 의해 한 단계 도약했다. 구글은 양자 프로세서 칩 ‘시카모어(Sycamore)’를 통해 슈퍼컴퓨터보다 더 뛰어난 53개의 큐비트를 이용한 양자컴퓨터 기술을 구현했다. 최근에는 중국이 구글 컴퓨터보다 100억 배 더 빠른 연산이 가능한 양자컴퓨터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하는 등 양자컴퓨터 개발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사람들은 양자컴퓨터가 그동안 인간이 풀 수 없었던 난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외부 해킹이
불가능하다?
양자 암호통신체계도 양자기술의 진화과정에 따른 산물의 하나라 볼 수 있다. 양자 암호통신은 양자역학의 특성을 이용해 보안성을 높인 차세대 통신기술이다. 말 그대로 통신 과정을 양자 상태로 암호화한다는 뜻이다.
양자 암호통신의 핵심은 양자 키 분배에 있다. 양자 암호통신은 비밀키를 분배하는 과정에서 일반 암호통신(PKI 등)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일반 암호통신과는 달리 원거리에 있는 두 사용자가 동일한 양자 키를 공유한다. 양자 키를 생성하기 위해 주고받은 정보는 양자 상태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외부에서는 키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없어 해킹이 불가능하다. 이 과정을 양자 키 분배(Quantum key Distribution)라고 한다.
이 과정에는 양자의 불확정성 특성이 크게 작용된다. 불확정성이란 양자 세계에서는 하나의 물리량을 측정하거나 관측하는 순간 다른 물리량의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에서 암호를 해킹하려고 시도(관측)하면 송신자와 수신자가 나눠 가진 양자 키 분배에 오류가 생겨 해킹 여부를 감지할 수 있다. 감지가 되는 순간 정보는 변형되어 복제도 불가능해진다.
양자 암호통신기술이 성공적으로 전개되기 위해서는 양자암호 전송 시스템의 표준화 작업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국내 이동통신사와 ETRI는 국내 양자 암호통신 연구기관들이 양자 암호통신 전송 시스템의 상용시스템 표준을 선도할 수 있도록 추진해왔다. 그 결과 한국이 주도해 제안한 보안 관련 표준 8건이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전기통신 표준화 부문 국제표준으로 채택되는 성과를 보였다.
여기에 ETRI가 지난 10월 상온에서 작동하는 양자 게이트(CNOT)를 구현함에 따라 양자 인터넷의 실현 가능성에도 한층 다가서게 됐다. 양자 인터넷은 양자역학 현상을 활용해 양자 데이터를 전달하는 차세대 인터넷 통신이다. 양자 인터넷이 실현되면 인류는 기존 인터넷과는 비교할 수 없이 빠른 데이터 전송과 보안성, 계산 능력을 얻게 된다.
이처럼 앞으로 양자기술을 기반으로 한 미래는 이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하지만 진짜 양자기술의 ‘마법’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지금까지 마법이라고 생각했던 수많은 것들이 과학으로 실현된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