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에 입장하면 정면에 상설전시실 ‘한글이 걸어온 길’ 입구가 보인다. 이곳은 570여 년을 거쳐온 한국의 문화유산이자 현대에도 살아 숨는 문자인 한글의 역사와 가치를 온전히 구현한 전시관이다. 전시는 크게 ‘새로 스물여덟자를 만드니’, ‘쉽게 익혀서 편히 쓰니’, ‘세상에 널리 퍼져 나아가니’ 등 3부로 나뉘어 있다. 이곳에서는 1443년(세종25년)에 창제된 한글의 모습과 이후 교육, 종교, 예술, 생활, 출판, 기계화 등 각 분야로 보급되고 확산된 한글의 연대기를 만나볼 수 있다.
먼저 상설전시실로 들어서면, ‘한글이 없던 시대의 문자’라는 문구와 함께 한글 창제와 관련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글은 문자의 창제자와 창제 시기, 창제 이유와 그 사용법까지 창제 관련 정보가 분명하게 기록된 유일한 문자다. 그 역사의 시작은 144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종대왕은 새로운 문자를 발표했다. 이후 3년 뒤 새 문자를 만든 목적과 발음, 쓰는 법, 만든 원리 등을 수록한 ‘훈민정음’이 탄생했다. 새 문자에 대한 해설과 예시가 되어 있어 ‘해례본’이라 불렸다. 훈민정음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우리가 익히 들은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짜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세 이런 전차로 어린 백셩이 니르고져 홀배이셔도”라는 구절이다. 당시 사대부들은 기존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훈민정음의 창제를 반대했지만, 세종대왕은 일반 백성들의 문자 생활의 불편함을 딱히 여겨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이처럼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으로 만들어진 한글은 5백여 년이 흐른 현대 언어학의 관점에서도 손색없이 훌륭한 제자 원리를 갖추고 있다. 한 음절을 초성·중성·종성으로 구분한 최초의 문자이며, 비슷한 소리를 나타내는 자음이나 모음자는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또 30개를 넘지 않는 자모음만으로 수천 개의 음절을 표현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한글은 독창성과 과학적 원리를 갖고 있어, 세계의 언어학자들에게 찬사를 받는 문자다.
한글은 조선 시대의 사회·문화 전반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사람들이 배우기 쉽고, 쓰기 쉬운 한글을 활용하여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글이 창제되자마자 널리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공식적인 문자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글 사용은 불교·유교 경전의 번역에서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후 어려운 한자를 비롯한 각종 외국어 학습교재에도 한글이 활용되었고, 점차 외국어 학습교재나 의학서·병법서 등 실용 분야로 확대되었다. 그러다 조선 후기부터 한글은 본격적으로 일상생활에 널리 쓰이게 된다. 부녀자의 편지·놀이 도구·생활용품·문학 작품 등에서도 영향력을 뻗치게 된 것이다.
마침내 19세기 후반부터 도입된 근대식 인쇄 기술에 힘입어 대량 출판이 가능해지면서, 사람들은 한글을 접할 기회가 더 많아졌다. 과거의 출판은 목판 인쇄나 금속활자 인쇄에 한정되어 있었다. 이에 비해 19세기 말 들어온 서구식 기계식 인쇄 기술은 인쇄물을 값싸게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20세기에 시작된 ‘한글 기계화’는 나라의 힘을 키우고, 문화를 꽃피우는 원동력으로 탈바꿈 시켰다. 사람들은 한글 신문과 잡지, 소설 등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고, 덕분에 멀리 떨어진 곳의 새로운 소식도 집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세종대왕의 바람대로 한글은 뛰어난 정보 전달 수단으로 국민적 정서와 대중문화를 이끌어가는 힘이 됐다.
현대의 한글은 단순 의사소통을 넘어 문학 작품을 통해 우리말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매일같이 접하는 광고나 한글 캘리그라피가 대표적인 예다. 한글은 다양한 매체의 발달 속에서 제품의 특성과 이미지에 맞게 한글의 시각적 아름다움과 개성을 강조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 이르기까지 순탄치만은 않았다. 1907년 국립한글연구기관인 ‘국문 연구소’가 설립되어 본격적으로 우리 말을 연구하는 기틀을 마련하려 했으나, 3년만인 1910년에 나라를 뺏기면서 우리말과 한글의 사용이 금지되었다. 그러나 학자들은 우리말 연구를 멈추지 않았으며, 최근 영화로 개봉한 ‘말모이’에서 보았던 (조선말) 큰사전 편찬도 착수했다.
특히 ‘세상에 널리 퍼져 나아가니’에서는 한글의 정보화도 함께 눈여겨 볼만하다. 일상생활에 널리 쓰이고 있는 ‘한글 워드 프로세서’와 ‘자판’ 컴퓨터 속 ‘한글 코드’와 ‘한글 글꼴’, 한국어 조사·수집·분류·분석을 가능하게 한 ‘말뭉치’, ‘음성 인식’, ‘자동 통·번역’등은 모두 한글 정보화의 산물이다. 우리는 한글 정보화에 빠르게 대처하여, 디지털 강국 중 하나가 되었다. 컴퓨터는 서양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알파벳에 적합한 방식으로 개발되었다. 그러나 한글을 컴퓨터 환경에 맞도록 개선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 대한민국은 지금과 같은 한글 정보화를 이루게 된 것이다.
현재 국립한글박물관은 개관 5주년을 맞이하는 2019년 첫 번째 기획특별전으로 <공쥬, 글시 덕으시니 : 덕온공주 집안 3대 한글 유산>전을 지난 4월 25일부터 오는 8월 18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2016년 기획특별전 <1837년 가을 어느 혼례날 : 덕온공주 한글 자료>에 이어 조선의 마지막 공주 덕온 집안의 미공개 한글 유산을 소개하는 두 번째 기획전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덕온공주 가족과 후손들의 왕실 한글 유산을 최초로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국립한글박물관은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면 넉넉히 둘러볼 수 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의 자랑스러운 ‘한글’을 자세히 알아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