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게임기 시장을 열어라
때로는 선택의 내용 못지않게 선택의 시기가 중요할 때가 있다. ETRI에서 연구원으로 일한 지 18년째가 되어가던 지난 2015년, 이 대표 역시 선택의 때가 왔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당시 3D 영상 분야에서 연구개발을 하던 그에게 ETRI에 계속 남아 관련 분야를 계속 연구하는 것도 보람 있는 일이었지만, 더 늦기 전에 변화를 도모해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비록 그동안 변화를 꿈꾸지 못했지만 더 늦는다면 후회할 것 같았다. 결국 창업을 결심한 이 대표는 ETRI 예비창업자 지원 프로그램의 문을 두드렸다.
“연구원으로 사는 삶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연구원으로 계속 연구개발에 전념하는 것도 뜻깊은 일이지만, 더 늦기 전에 나만의 사업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국내 게임 시장을 바라보는 이 대표 나름의 시각도 창업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 즉 전 세계적으로 게임 시장, 특히 아케이드 게임 시장의 열기는 식지 않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다른 요인들로 인해 아케이드 게임 시장이 성장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그것이다.
02
쇼케이스에 증강현실 콘텐츠를 구현하다
이 대표는 창업 아이템으로 홀로그램을 선택했다. 3D 입체영상의 수요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지만, 폭발적으로 시장이 열리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콘텐츠 부족 등 원인은 다양하지만, 3D 입체영상을 손쉽게 접할 수 없는 기술적인 문제도 관련 시장을 팽창시키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다. 예를 들어 3D 입체영상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가상현실(VR)은 사용자의 어지럼증과 눈의 피로감 등의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가상현실 콘텐츠는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는 기술적 완성도는 낮으면서도 가격은 너무 비싸 대중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에 이 대표는 어지럼증이나 눈의 피로감을 없애면서도 가상현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제품이 나온다면 시장성이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그 답을 홀로그램에서 찾았다. 전시회나 박람회, 신제품 발표회, 공개 행사, 각종 이벤트 등에서는 참가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쇼케이스가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하지만 기존의 쇼케이스는 제한된 평면에서의 영상 출력만 가능했다. 이 때문에 쇼케이스를 제작하고 한 번 자리를 잡은 후에는 다양한 콘텐츠 적용이 어려웠다. 이 대표는 이러한 쇼케이스에 증강현실 콘텐츠 제작 및 플레이어 기술을 적용해 증강현실 콘텐츠를 제작하고 홀로그램을 통해 3D 입체영상으로 장면 구성을 제공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03
아케이드 게임에 홀로그램을 더하다
연구원 창업자들은 자기 기술에 대한 자부심과 확신이 있고, 이것이 창업으로 이끄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래서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제품이나 기술적 수준과 관계없이 자신이 목표로 하는 기술적 완성에 주력하기도 한다. 이것이 연구원 창업자의 가장 큰 무기이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초기 기업 성장의 장애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 대표는 이러한 경직성에서 벗어나 수요가 있는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제품에 눈을 돌렸다.
“창업 준비로 한창이던 2016년 10월경이었는데요. 우연히 지인들과 얘기를 나누던 중에 이런 홀로그램 기술을 아케이드 게임에 적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임에서는 입체감과 몰입감이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홀로그램이 이러한 입체감과 몰입감을 배로 증가시키는 작용을 하거든요.”
시장의 수요가 있다는 진단이 내려지자 이 대표는 국내 시장을 겨냥한 쇼케이스용 증강현실 콘텐츠 제작 및 플레이어 제품에 주력하는 동시에 해외 시장을 대상으로 한 홀로그램 아케이드 게임기 제작에 착수했다. 기술은 같지만 국내와 해외의 시장과 소비자들의 요구가 다른 만큼 동시에 두 제품을 개발하는 일종의 ‘투 트랙(two-track) 전략’을 채택한 것이다.
04
연말까지 중국 수출 목표
기회는 우연히 찾아온다. 물론 그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행운의 화살’과 같다. 지인을 통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아케이드 게임기를 유통하는 중국 기업 ‘금룡유락집단(金龙遊泺集团)’을 소개받게 된 것이다. 테마파크 놀이기구를 제조하고 전 세계 7,000여 곳을 대상으로 아케이드 게임기를 유통하는 기업으로, 연 매출액이 1조 원에 달한다. 2016년 12월 해당 기업의 관계자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더나기술에서 개발하고 있는 홀로그램 아케이드 게임기 시제품을 시연할 기회까지 얻었다. 해당 기업 관계자들은 아케이드 게임을 홀로그램으로 구현한다는 점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중국에서도 많은 종류의 게임기를 생산하고 유통하고 있지만 홀로그램 아케이드 게임기는 없었기 때문이다.
“2017년 1월 제가 금룡유락집단에 직접 방문해 자체 개발한 홀로그램 아케이드 게임 시제품을 시연하고 유통에 관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회사 고위 관계자들도 제품에 높은 관심을 보이더군요.” 관심은 구체적인 협력으로 이어졌다. 법인 설립 후 지난 3월 2차로 중국 현지를 방문한 데 이어 5월 3차 방문에서는 홀로그램 아케이드 게임 시제품과 관련된 구매의향서를 받았다. ㈜더나기술은 2017년 말 홀로그램 아케이드 게임기의 양산형 제품 납품과 금룡유락집단 전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05
기술과 관계로 중국 판로 개척
이 대표는 말로만 들었던 중국의 ‘콴시(關係·관계)’를 경험했다. ‘콴시’란 사람과 사람으로 관계를 맺으면 의리상 서로 도움을 주고받거나 끌어주고 밀어주는 중국의 독특한 문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문화에 대한 평가를 떠나 한국의 스타트업이 중국의 기업과 이렇게 단기간에 ‘관계’를 맺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ETRI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더나기술의 탄탄한 기술력과 제품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형성되기 어렵다. 동시에 ㈜더나기술의 제품 개발과 판로 개척을 위해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은 지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창업을 해야겠다고 구체적으로 마음먹게 된 것도 이러한 주변 분들의 지원과 조언, 그리고 중국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판로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ETRI에서 그동안 갈고닦은 기술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한국 제품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게임기 시장을 개척하고 신기술을 도입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주)더나기술은 도전정신과 탄탄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의 대표주자였다.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주)더나기술의 발자취에서 차세대 게임기 기술이 다시 전성기를 맞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