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충전소
작년, 온 국민이 유난히 기력이 방전된 해를 보내니, 충전이 필요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여기 누구보다도 방전이 많이 된 이가 있다. 무선충전기술로 경사가 난 연구실에서 동료들의 충전소 역할을 하면서도 겹치는 불상사에 속앓이를 한 남자, 김상원 선임연구원의 방전 및 충천 포인트를 따라가본다. 2017년의 행운과 행복을 염원하며.
내 인생의 방전 포인트
2009년 어느 날, 김상원 선임은 허리가 너무 아파, 일어날 수가 없었다. 바로 병원을 찾아갔더니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확진을 받았다. 허리가 뻐근하고 심하면 척추가 대나무처럼 붙는다고 해서 ‘강직성 척추염’이라고 하는데, 현대 의학으로 원인이 정확히 규명되지 않은 난치병 중 하나이다. 부작용으로 포도막염이 자주 발생하는데 최근 증상이 매우 심해져서 양안에 백내장이 발생해서 작년 8월에 눈 수술을 해야 했다. 그래서 현재 그의 양안은 인공 수정체다.
설상가상으로 작년 아내의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평소 운동도 많이 하고 건강한 습관을 가졌음에도 아내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갑상선암 확진을 받고 수술을 받아야 했다. 수술대로 들어갈 때까지 웃음을 잃지 않을 정도로 아내는 평소와 다름없이 명랑했지만, 수술 후 그녀는 고통을 호소해 김 선임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겠지만,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도 신부가 되기 위해 신학부로 편입한 특이한 이력이 있는 그는 달랐다. 어려움을 초월하는 긍정적 마음으로 그는 굳세게 이겨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를 힘나게 한 것은 가족과 동료들이었다.
연구실의 충전 포인트
RF프론티어연구실의 중점 과제인 ‘무선충전기술’의 올해 성과가 뛰어나다. 연구실의 수장인 조인귀 실장이 한국경제신문의 다산기술상을 수상하였고, 2017년 1월 CES 전시회에 자체적으로 개발한 무선충전기를 출품해 공식석상에 처음으로 선보였다. 전파환경감시연구그룹에서 CES에 기술을 내보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에 연구부 안팎으로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무선충전은 여러 명이 연구한 것을 합쳐야 가능한 연구다. 동료 중 한 연구원은 ‘혼자 하면 안 되는 일도, 같이 하면 된다.’ 라는 말을 했다. 무선 충전 기술은 간단해 보이지만, 충전이 사람 주변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편리성은 물론 안전성을 고려해야 하기에 다각도로 시뮬레이션을 해봐야 한다. 또한 코일을 감고, 드릴로 구멍 뚫고, 접착제를 붙이는 등 몸으로 하는 작업이 많아 힘들다. 처음에는 기술이 없어서 실험을 할 때 열이 나고 전선이 타는 등 위험한 일도 많았다. 그런 고생과 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는 힘을 합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날의 성과를 불러온 것은 RF프론티어연구실 내의 체계화된 협업과 화기애애한 팀워크이리라.
더불어 나이가 비슷한 팀원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은 맥주 한 잔씩 함께 마시며, 과중한 업무로 소모된 에너지를 충전하곤 한다. 그리고 김 선임은 동료들에게 빈말이라도 ‘고맙다’ ‘수고했다’고 서로 말하자고 제안했다. 아무리 실에서 연구원들에게 형평성 있게 일을 분담한다고 해도 누군가에게 업무가 몰리기 마련이다. 직장 생활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이기에, 적어도 곁에 있는 동료에게 수고했다는 말 한 마디를 건넨다면 불만이 생겼다가도 금세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내 인생의 충전 포인트
그는 여복이 많다고 스스로를 표현했다. 가족 구성원은 그를 제외하고 아름다운 와이프와 사랑스러운 두 딸, 예콩이(장모 치와와 암컷), 핑이, 퐁이(예콩이 새끼로 모두 암컷) 이렇게 모두 공주들이다. 1997년도 KBS 공채 탤런트 출신의 미모의 아내는 그의 충전소 역할을 톡톡히 한다. 결혼 전, 지인의 소개로 만난 아내를 만나기 위해 그는 대전에서 서울까지 주말마다 달려갔다. 나중에는 차가 퍼질 정도로 장거리 연애에 공을 들인 결과, 100일만의 프로포즈를 아내가 받아주었고, 300일째에 결혼에 골인했다.
신혼 때 아내의 코디네이터가 집에 내려와 같이 살 정도로 적응을 위해 노력했지만, 대전으로 오면서 상황이 여의치 않아 아내는 결국 방송활동을 접었다. 그러나 워낙 활동적이었던 아내는 인터넷 카페 ‘대시모(대전으로 시집온 사람들의 모임)’ 카페를 만들어 운영했다. 운영자 권한은 다른 이에게 넘겼지만, 아직도 회원 중 몇 사람은 부부끼리 만남을 지속하고 있을 만큼 아내의 사교성은 늘 그에게 자극을 준다.
아내를 닮아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를 갖추고 애교까지 많은 두 딸은 그의 가장 강력한 충전 포인트다. 야근이 잦은 요즘, 늦은 시간에 집에 들어가 보면 문 앞에 ‘아빠 힘내세요. 아빠 사랑해요!’ 라고 비뚤비뚤한 글씨지만 정성 가득한 편지가 종종 붙어 있다. 뿐만 아니라 딸들은 그의 핸드폰에 몰래 격려 쪽지를 넣어두기도 한다. 감동받은 그가 조용히 아이들 방에 들어가서 뽀뽀를 해주곤 하는데, 천사같이 잠든 딸들의 모습을 보면 이내 피곤이 싹 사라진다.
운동은 그의 3번째 충전 포인트다. 강직성 척추염 때문에 계속 움직이지 않으면 뼈가 굳어서 반강제적으로 운동을 해야 하는데, 꾸준한 게 중요하기에 그는 격렬하게 하는 것은 피한다. 그래서 그가 동료들과 함께 만든 ‘거북이 라이더’ 바이크 동호회에서, 말 그대로 거북이처럼 여유롭게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또한 등산을 좋아하는 아내와 함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부지런히 주변 산을 정복하는 중이다.
2017년, 충전은 계속된다
다사다난한 2016년을 보낸 그는 충전 가득한 2017년을 기대한다. 그는 바쁜 일정으로 학위 논문 제출을 하지 못해 유예된 박사 졸업을 최우선 목표로 뽑았다. 이후 가족여행을 많이 다닐 계획이다. 캠핑이 어렵다면 연구단지 공원에 해먹을 치고 독서도 하고 가족끼리 자전거도 면서 소풍을 자주 즐기려 한다. 특히 김 선임은 아내에게 이벤트를 해주고 싶다고 밝혔다. 평소 유쾌한 성격의 아내는 올해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후 감정 기복이 심해졌다. 그런 그녀를 다독거리기 위해 부부의 시간을 더 많이 가질 계획이다. 사실 김 선임은 아내에게 이벤트를 곧잘 해주었는데, 바쁜 업무와 악화된 건강으로 미처 아내의 마음을 돌보지 못해 가슴 한 구석에 미안함이 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항상 신바람이 나는 아내와 국내외 이곳저곳으로 여행갈 것이라 다짐하는 한편, 부부 단둘의 여행도 살며시 꿈꿔본다.
또한 ETRI 동료들을 향해 김 선임은 위로와 격려의 말을 건넸다. “요새 동료들을 보면 예전에 비해서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습니다. 웃는 얼굴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고, 일과 후에 갖던 동료들과의 회식 기회도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ETRI는 너무나 멋진 동료들과 언제나 나에게 새로운 일이 주어지는 우리나라 최고의 멋진 직장입니다. 힘든 일이 있어도 언제나 동료의 등을 다독여주고,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선배들에게 귀여움 받는 연구원이 되는 것이 저의 입사 동기였고 지금도 마찬 가지입니다. 나에게 주어지는 일이 하찮게 여겨져도 항상 기쁜 마음으로 매사에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그러다보면 존경받는 아빠, 사랑받는 남편, 남들이 힘들 때 찾아주는 연구원이 되지 않을까요?”
김 선임처럼 힘든 한해를 보낸 ETRI 연구원들에게, 삶의 활력소를 충전시키는 힐링 타임이 되길 희망하며, 김 선임을 비롯해 모두에게 2017년도에 행복한 일이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