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 문화가 만나는 곳
경복궁에서 창경궁으로 이어지는 전통문화의 길, 젊음과 실험의 현대문화가 꽃피는 대학로를 연결하는 새로운 문화의 길이 2015년 10월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열렸다. 바로, 재능문화센터(JCC : Jaeneung Culture Center)이다.
전통과 현대를 잇는 새로운 공간
서울은 온통 새로 지은 고층 빌딩으로 가득하다.
반면 혜화동은 아직 사람 냄새나는 곳이다. 낮은 건물과 골목길이 세월에 녹아들어 자연스럽다.
게다가 혜화문과 골목길 사이사이 오랜 역사를 지니지 않은 곳이 없다.
재능교육은 전통문화와 현대문화가 어우러진 새로운 문화의 길을 열고자 했고,
이러한 도심 속 가장 조화로운 건축물을 지을 수 있는 건축가로 안도 다다오가 최고 적임자라고 판단했다.
안도 다다오는 혜화동 파출소에서 혜화문까지 이어지는 작은 언덕길에 두 형제 건물을 지었다.
재능교육의 클래식 전용 공연장인 JCC 아트센터와 연구개발시설인 JCC 크리에이티브센터, 이 둘을 통칭하여 JCC이다.
이 일대에서 가장 최근에 지어진 건물이지만, 혜화동의 풍경 중 일부가 된 듯 자연스럽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혜화동을 보존하기 위한 지구단위계획으로 건물 높이가 제한되어 있기도 하지만,
마치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던 듯 다른 건물과 함께 숨쉬길 바랐던 건축가의 노력 덕분이기도 하다.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해 두 건물을 세우고, V자 모양의 중심 기둥으로 건물을 떠받쳤다.
JCC의 안과 밖을 둘러보면 사선을 많이 찾을 수 있는데, 이는 혜화문까지 올라가는 혜화동 길의 각도와 일치하게 하여 주변 공간과 어울릴 수 있게 설계한 것이다.
모든 ‘길’의 특징은 어느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흐름이다.
JCC는 설계 당시 ‘길’이라는 콘셉트를 가지고 흐르는 길의 연속성 안에 그 동네만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도록 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또한 혜화동의 골목 어귀를 거닐다가도 누구나 JCC 아트센터의 내부로 진입할 수 있도록 했다.
건물에 유달리 창을 많이 낸 것은 이곳이 단절된 공간이 아닌, 소통의 공간임을 강조하는 듯하다.
콘서트홀에 숨겨진 과학
JCC 아트센터 1층 내부 한쪽에는 지하 콘서트홀로 내려가는 나선형 계단이 있다.
관람객은 준비된 공연을 보기 전까지 설레는 마음으로 구불구불한 계단을 한 걸음씩 내려간다.
이 공간을 더욱 오랜 시간 느끼고, 공연을 보기 전까지 기대감을 점점 높이는 역할을 한다.
콘서트홀에 들어서면 여러 가지 과학 요소를 살펴볼 수 있다.
불규칙하게 이어진 각기 다른 굵기의 나무가 벽면을 가득 채운다.
외부 콘크리트와 달리 목재가 전하는 따뜻한 아늑함을 느낄 수 있다.
마치 커다랗고 고요한 요람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
벽면에 부착된 나무들은 이곳에서 연주되는 악기 소리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음파가 나무 벽에 부딪혀 어느 자리에서도 풍성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전 좌석이 S석인 셈이다.
실제 공연을 할 때도 소음이 밖으로 거의 들리지 않게 설계해 주변 이웃을 배려했으며,
공간 벽면 중앙에 긴 나무 띠가 이어지는 작은 가벽을 만들어 윗 층 객석에서도 안정감 있게 관람을 할 수 있게 했다.
JCC 크리에이티브센터는 아트센터와 달리 직선 형태로 된 계단 구조로 이루어졌다.
직원들이 근무하는 곳이니 동선을 간편하게 하여 실용적인 공간 활용에 주안점을 두었다.
건물 옥상에 올라가면 낮은 혜화동의 건물들로 시야가 확 트인다.
멀리 북악산과 인왕산, 남산 등이 한 눈에 보여 경치가 훌륭하다.
이곳에서라면 많은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샘솟을 것만 같다.
안도 다다오는 두 건축물이 비록 서로 떨어져 있지만, 마치 서로 마주보는 형제 같은 건축물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두 건축물의 공통적이면서 차별화된 모습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롭다.
전체 건물에 표현된 사선 그리고 삼각형 창이 이루는 리듬으로 JCC만의 개성을 표현하면서 주변과 조화로움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서울 전경을 한 눈에··· 낙산공원
JCC에서 현대문화로 이어지는 ‘길’, 대학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곳에는 빼놓을 수 없는 명소인 낙산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서울 시내를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어, 일출과 일몰 장소로 유명하다.
낙산은 본래 풍수지리상 북악산의 좌청룡에 해당한다고 알려진다.
전체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산 모양이 낙타를 닮았다 하여 낙타산으로도 불린다.
일제강점기 당시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고, 근대화 과정에서 무분별한 도시계획으로 방치되어 또 한 번 슬픔을 겪어야 했다.
이에 서울시에서는 이곳을 근린공원으로 지정하고 주변 녹지축과의 연결을 도모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현재는 낙산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풍경을 담으려 카메라를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과
아름다운 야경을 즐기려는 가족 및 연인에게 사랑받는 명소가 되었다.
성곽과 도심이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자랑하기에 각종 드라마, 영화 촬영지가 되기도 했다.
현존하는 성곽 중 가장 오랜 시간 성곽의 기능을 담당했던 혜화문에서 낙산공원까지 이어지는 성곽길을 거닐다보면,
오랜 세월 세찬 풍파를 견뎠을 성곽이 어지럽고 힘겨운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힘이 되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만 같다.
이곳의 대표적인 조형물 ‘가방을 든 남자와 강아지’를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
외로운 사람이 보면 쓸쓸히 이어지지 못할 길로 걸어가는 모습이고, 희망찬 사람이 보면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모습으로 느껴진다고.
혜화동은 전통과 현대, 역사와 문화를 잇는다. 그리고 그 길에 자리 잡은 JCC는 과학 요소를 통해 기존의 고정관념을 새롭게 환기시키며, 창의적인 영감을 전달한다.
마치 옛것을 익히고 그를 통해 새것을 안다는 온고지신의 교훈을 전하려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