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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시간을 간직한 군산

군산 진포해양공원 & 근대문화유산의 거리

근대문화도시 군산···
공교롭게도 이 도시에는 역사 속 우리민족의 드높은 긍지와 뼈아픈 슬픔이 공존한다.
최무선 장군이 왜구를 물리친 진포대첩의 현장이면서 동시에 일제강점기 강제 수탈의 거점이었던 곳.
금강하구에 위치한 군산은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부산, 원산, 인천, 목포, 진남포, 마산에 이어
1899년 5월 1일에 개항된 항구도시로, ‘해상물류의 거점’이자 ‘일본인들의 도시’가 되었다.
일제의 경제수탈과 문화침략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어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될 그 현장들을 찾아가봤다.

진포대첩과 진포해양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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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슬러 떠난 군산 여행에서 처음 향한 장소는 진포해양공원이다. 군산 내항에 위치한 진포해양공원은 세계최초의 함포해전으로 기록되는 진포대첩의 역사적 의미를 기리는 곳이다. 고려 말 최무선 장군은 이곳에서 화포를 이용해 왜선 500여 척을 패퇴시켰다. 진포해양공원 중심에는 수륙양용 장갑차, 전투기, 해경정, 자주포 등 대한민국 육해공군의 퇴역 군·경장비 13종 16대가 전시되어 있다. 그 중 바닷가에 정박되어 있는 4,200톤 급 위봉함이 위엄을 자랑한다. 위봉함은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로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상륙작전 등에 참전한 군함이다. 1959년 1월 13일 미국으로부터 인수되어 월남전을 비롯한 상륙·수송작전을 수행했다. 위봉함 내부는 현재 전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최무선 장군의 진포대첩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화포와 무기, 선박의 발달과 해상전투, 한국전쟁,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 등의 내용을 학습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특히 해군들의 식당, 침실, 화장실, 욕실 등을 직접 살펴볼 수 있는 병영생활 체험공간은 ‘민간인’ 여행객들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잠깐 구경하는 것과 실제 생활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일 것이다. 이곳에 머물며 나라를 위해 청춘을 바쳤을 우리나라 해군들의 수고가 느껴졌다.

 

진포해양공원을 나서니 내항에는 아직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수심이 낮아 더 이상 큰 배가 드나들 수 없는 내항에는 일명 뜬다리로 불리는 부잔교가 자리하고 있다. 부잔교는 1899년 군산항 개항이후 3,000톤급 배 4척을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다리로 얼핏 봐도 규모가 컸다. 다리는 하루 1백 50량 화차를 이용해 호남평야의 쌀들을 일본에 반출하는 역할로 이용당했다.
우리나라 해상 역사의 자긍심과 일제강점기 아픈 역사를 뒤로하고 군산 근대문화유산의 거리로 향했다.

1900년대 시간 속을 걷다

이렇게 에두르고 /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 마침내 황해바다에다가 / 깨어진 꿈이고.
탁류 얼러 좌르르 쏟아져버리면서 /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 채만식 ‘탁류’ 中 -
 

군산은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배경지다. 채만식은 일제강점기의 억압과 수탈의 역사를 혼탁한 물결인 ‘탁류’로 표현했다. 소설 속 배경이 된 군산 내항일대인 탁류길을 걸으면 일제강점기 우리 선조들의 애환을 마주할 수 있다. 곡창지대인 호남지방에서 쌀 등을 빼앗아갔던 일본은 군산을 쌀 수탈의 거점지로 이용했다. 근대 건축물은 이국적인 모습으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역설적이게도 일본의 침탈적 자본주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역사는 미래가 된다’는 모토로 군산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근대역사박물관과 일제강점기 준공되었던 관공서, 은행 등의 건축물이 남아있다. 1908년 지은 구 군산세관은 현존하는 서양 고전주의 3대 건축물 중 하나로 새 군산세관보다 존재감을 드러낸다. 일제강점기 쌀 수탈의 아픔을 간직한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는 현재 장미공연장이 되었다. 1907년 설립된 구 일본제18은행 군산지점은 현재 근대미술관으로 쓰인다. 내항 일대를 거닐며 군데군데 서려 있는 역사의 아픔을 마주하니 마음이 숙연해졌다.

내항을 뒤로 하고 찾은 곳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군산 신흥동 일본식가옥과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이다. 동국사는 1913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승려 우치다에 의해 창건되었다. 중앙에 대웅전이 자리하고 있고, 그 뒤편에는 사계절 내내 초록빛을 띠는 일본산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동국사 한 쪽에는 평화의 소녀상과 함께 일본이 최초로 조선 침략에 대해 참회하는 뜻으로 세운 참사문비가 세워져있다.

 

군산 신흥동 일본식가옥은 포목점을 운영하던 히로쓰 게이샤브로가 지어, 히로쓰 가옥이라고 불린다. 히로쓰 가옥은 일제강점기 부유층 거주 지역에 있다. 목조로 짜여진 2층짜리 일본식 가옥과 정원이 잘 보존되어있다. '장군의 아들', '타짜' 등 여러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된 곳인 만큼 아름다운 정원과 건물이 인상적이었다. 당시 가난했던 우리민족의 모습과 대비되는 일본인의 부유한 삶이 그려져 씁쓸했다.

기억을 품고 있는 곳

 

군산 여행의 마지막 장소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배경인 초원사진관과 출사지로 유명한 경암동 철길마을이었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1998년에 개봉한 배우 한석규, 심은하 주연의 멜로영화로, 이곳은 시한부를 선고받은 정원이 서울 변두리에서 운영하는 사진관으로 등장한다. 영화 속 다림(심은하)이 타고 다닌 주차단속 자동차와 정원(한석규)의 오토바이가 세워져있는 사진관 내부는 영화 속 정원과 다림처럼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빛바랜 사진 속의 여운을 가지고 군산 여행의 마지막 장소인 경암동 철길마을로 향했다. 출사지로 유명한 철길마을은 원래 바다였지만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매립해 신문용지 제조공장을 세우고, 생산품을 수송하기 위해 1944년에 철길을 개설한 것이다. 그리고 지난 2011년 65년 세월 민족의 곡절어린 사연을 실어 나르던 철도는 그 걸음을 영원히 멈췄다. 지금은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길 양 옆엔 10가구 남짓한 주민들이 살고 있다. ‘선로를 무단 통행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군산역장 경고문만이 이곳에 기차가 지나다녔음을 증언해주고 있었다. 철길 곁에는 1970년대에 지어진 낡은 주택들과 작은 창고들이 화물열차처럼 다닥다닥 붙어있고, 곳곳에는 마을에서 사라진 기차를 비롯해 마을의 과거를 담은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이처럼 근대문화유산의 거리에는 일제강점기 치욕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누군가는 치욕스런 역사의 현장을 왜 저렇게 남겨놓느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윈스턴 처칠의 말처럼,
군산의 이 거리는 우리에게 뼈아픈 역사를 잊지 말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은 아닐까.
 

진포해양공원

주소

전라북도 군산시 내항2길 32

이용 시간

9 am ~ 6 pm (휴관일 : 매주 월요일)

근대문화유산의 거리

주소

전리북도 군산시 해망로 240(근대역사박물관)

동국사

주소

전라북도 군산시 동국사길 16

군산문화관광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