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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수화로 소통하는 더 큰 세상

강화평 열린책장 대표

지난 2015년 12월 31일, 한국수화언어를 한국어와 구별된 우리나라의 공용어로 인정한 ‘한국수화언어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7만 명이 넘는 청각장애인 및 언어장애인 대다수가 수화를 사용하지만 수화 환경이 개선되지 않아 일상생활과 사회활동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모든 정보서비스가 음성언어 중심으로 제공됨에 따라 구조적인 정보 활용 불평등을 겪고 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 콘텐츠를 제작하는 소셜벤처 열린책장 강화평 대표를 만나 이들이 꿈꾸는 ‘좋은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소셜벤처"

청각장애인들에게 ‘수화’로 제작한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당연한 것을 만들어 가려 노력하고 있는 열린책장 강화평 대표입니다. 열린책장에서는 수화 영상도서, 방송자막 제작, 수화 이모티콘 및 웹툰 제작, 헬렌켈러 작은 도서관 운영 등 청각장애인들이 다양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도록 돕고, 비청각장애인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열린 책장은 ‘부자들은 책으로 가득한, 부유하고 커다란 서재가 있을 것이다’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저에게 청각장애아동들은 한글과 수화를 동시에 배우면서 동화를 쉽게 접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비청각장애인들은 ‘금도끼, 은도끼’를 취학아동 전 시기에 알게 됩니다. 하지만 청각장애인들은 글을 이해할 수 있는 보통 만 12세의 나이에 알게 되지요. 이 분들이 동화를 조금 더 재미있고 쉽게 이해하고, 자신이 원하는 도서를 선택해서 볼 수 있도록 선택의 폭을 비청각장애인과 동등하게 주는 수화로 된 영상도서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책이 필요한 이들에게 책을 함께 읽고, 나누자는 목적인 공유책장이 생긴거죠.

 

“시각언어인 수화는 청각장애인의 ‘언어’입니다.”

청각장애인의 언어는 한글이 아닌 수화입니다. 귀가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소통하기 위해, 들리는 언어가 아닌 보이는 언어인 것입니다. 그래서 청각장애인을 말할 때 ‘들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표현보다는 ‘잘 보이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대한민국 비청각장애인의 모국어는 ‘한글’입니다. 그리고 제2의 언어를 영어라고 생각한다면 청각장애인에게 모국어는 ‘수화’언어이고, 제2의 언어는 한글이 되겠죠. 수화에는 조사를 포함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글과는 다른 문법체계로 이루어진 ‘수화’언어로 볼 수 있는 기준에는 “청각장애학생의 국어(한글) 문해력이 비청각장애학생의 65% 정도 해당한다“라는 국립국어원의 조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지난 12월 31일에 ‘한국수화언어법’이 통과되어 ‘수화’가 한국어와 동등하게 대한민국의 공용어, 하나의 언어로 인정 되어진 것이 정말 큰 의미입니다. 앞으로 ‘수화’가 대한민국에서 하나의 언어로 자리매김하는데 이뤄지는 일들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수화영상도서를 만듭니다.”

처음 수화 영상도서를 제작할 땐, 수화 통역사 분을 섭외하여 핸드폰 동영상으로 촬영했습니다. 청각장애인의 문화를 잘 전달하고 표현 할 수 있는 분과 함께 연구하여 수화 영상도서를 만들었습니다.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자하는 욕심에 그저 작은 아이디어로부터 시작된 것이 분장과 소품, 배경을 준비하여 지금처럼 완성된 형태의 수화영상도서가 탄생하게 된 것이죠.
수화 영상도서를 처음 보고 눈시울을 붉힌 분도 있었습니다. 청각장애인을 가족으로 둔 분이었는데 그 분은 왜 이런 콘텐츠가 이제야 만들어졌고, 많지 않으냐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인식개선 프로젝트: 수화이모티콘, 수화웹툰, 영상콘텐츠

청각장애인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로서 수화영상도서를 제작했습니다. 반면 청각장애를 모르는 비청각장애인의 생각을 변화시켜 보자라는 취지에서 시작된 인식개선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것이 수화 이모티콘과 수화 웹툰입니다. 카카오톡에 출시된 수화 이모티콘과 웹툰은 저희 청각장애인 디자이너가 만들었습니다. 빨간 망토를 단 모습이 귀엽죠. 수화를 알려줌으로서 청각장애인과 비청각장애인 사이의 의사소통 문제를 해결해주는 ‘영웅’ 컨셉으로 ‘히로’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웹툰은 청각장애인들의 공감과 비청각장애인들의 인식 개선을 위해 제작되었고 또 수화에 대한 영상콘텐츠를 제작하여 대전 은행동 스카이로드에 보여주게 된 것도 당연한 것들을 만들어가는 것에 대해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당연한 것들을 만들어갑니다."

대한민국 공공도서관 960개 중 수화영상도서는 70여 곳에만 배치되어 있습니다. 전국에 대략 7%의 공공도서관만이 수화영상도서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죠. 앞으로는 모든 공공도서관에 수화영상도서가 배치되는 것이 목표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생각보다 많은 청각장애인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가족이나 친척 중에 있을 수도 있고, 옆집에 사는 이웃일 수도 있습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가는 우리 사회에 청각장애인들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 친척과의 대화나 TV프로그램, 영화, 병원, 사회에서의 소통가운데 배제되어 있습니다. 매일 나오는 TV프로그램이나 천만 관객을 돌파한 한국영화를 볼 수는 있으나 무슨 상황인지 무슨 이야기인지 몰라서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대한민국에 있는 또 다른 언어인 ‘수화’로 책을 보고 청각장애인 아나운서가 수화로 전달하는 뉴스를 보고 한국영화를 자막과 함께 볼 수 있고 박물관이나 문화유적지에서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뿐만이 아니라 ‘수화’언어로 설명을 전해 볼 수 있는 이 모든 것이 당연하게 갖춰져 있는 사회가 당연한 모습이 아닐까요?
 

“앞으로는 수화방송채널을 만들고 싶어요.”

열린책장은 뉴스도 제작하고 있습니다. TV 속 청각장애인들의 세상을 보면 화면 오른쪽 아래 작고 네모난 공간뿐입니다. 방송통신법으로 적어도 5%의 영상물에 대해서 수화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하루에 여러 번의 뉴스가 방송되어도 수화가 함께 있는 뉴스는 대략 세 번 정도입니다. 이런 뉴스조차 장애인과 관련된 소식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 분들도 스포츠, 정치, 경제 등 다양한 이슈에 관심이 많고 그런 내용이 담긴 뉴스를 보고 싶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화 통역사가 큰 화면 중심에 메인 앵커로 나와 뉴스를 진행하면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고 이해도 쉬울 겁니다. 이러한 생각으로 ‘스마트 뉴스’라는 타이틀의 수화 뉴스 콘텐츠를 제작하고 시작단계에 있습니다. 수익보다는 청각장애인들에게 정보를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하여 재능기부를 통해 국내에서 가장 유명하신 수화 통역사분과 함께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뉴스 등 청각장애인에게 필요한 다양한 콘텐츠를 방송할 수 있는 수화방송채널을 만들고 싶습니다. 상상하다보니 ETRI에서 수화와 관련된 디지털 기술도 개발되어진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같이의 가치를 발견해나가는 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

청각장애인을 위한 콘텐츠 사업과 인식개선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기업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 수익을 내는 것이 가장 어렵고 고민됩니다. 많은 아이디어가 있지만 여러 현실의 벽 앞에 부딪쳐 좌절될 때가 많습니다. 당연히 있어야할 것들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현하는 것에 있어 많은 어려움을 느끼죠. 청각장애 그리고 수화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과 관심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획한 것을 실행할 수 있을 때와 청각장애인 분들이 수화 콘텐츠를 보고 즐거워하실 때 보람도 느끼고 힘이 납니다. 열린책장은 절반이상이 청각장애를 가진 직원들입니다. 수화 이모티콘, 웹툰, 삽화 등을 제작하는 청각장애인 디자이너들이 있고 이야기 및 각종 정보를 전달해주는 청각장애인 수화이야기꾼이 있습니다. 미래에는 청각장애인들이 소통의 어려움과 정보의 차별이라는 벽 앞에 좌절되는 상황이 아닌, 자신의 능력을 펼치고 비청각장애인들처럼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는 더 넓은 환경과 사회를 꿈꿔봅니다. 또 모든 실행과 발상이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역할을 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들이 이루어지기 힘든 세상에서, 당연한 것들을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