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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vol.30 2015.01.09
스페이스
쓰는 이의 고통이 읽는 이의 행복이 될 때까지

촌철살인 문장들로 언어의 연금술을 펼치는 작가 이외수.
세상과 등지고 스스로 만든 감옥에 갇혀 글을 썼던 그가 ‘국내 최초 트위터 팔로워 100만 돌파’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고 현재 팔로워만 200만이 넘는 소통의 달인이 된 비결은 바로 ‘감성(感性)의 힘’이었다.

오늘도 감성 충만한 세상을 꿈꾸며 원고지 위에 필력을 쏟고 있는 작가 이외수의
‘심오하나 심각하지 않은’ 예술 세계를 만나러 다목리 감성마을을 찾았다.

산골짜기 감성 충전소

밤 새 내린 눈이 소복하게 쌓인 다목리는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순백의 마을이었다.
평지보다 산이 더 많고, 민간인보다 군인이 더 많을 것 같은 화천군이어서 그런지
마을 어귀로 들어서기 전까지는 분위기가 다소 비장하고 삼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감성교를 건너자 청정 자연에 둘러싸인 전혀 다른 느낌의 ‘감성테마문학공원’이 우리를 반겼다.
작가 이외수가 ‘자연이 주인인 마을, 감성이 살아나는 마을’이란 의미로 지은 감성마을은
어느덧 화천 문화관광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길이 있어 내가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감으로써 길이 생기는 것이다.’
초입의 글귀는 방문객들로 하여금 얼어붙은 마음의 빗장을 풀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감성테마문학공원까지 총 430m에 이르는 ‘감성산책로’는, 119개의 자연석으로 이루어진 시비들로 시석림(詩石林)을 이루고 있었다.
시석에 적힌 이외수 선생의 시와 그림들을 감상하며 계곡을 끼고 산책로를 걸어 올라갔다.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눈길을 엉금엉금 조금 더 걸어 이외수문학관에 도착했다.
작가 이외수는 ‘이외수 매니아’라고 자처하는 독자들과 소통하기 위해 문학, 미술, 음악, 방송 등 다양한 작품과 콘텐츠를 창조했다.
2012년 8월 12일에 문을 연 ‘이외수문학관’은 이처럼 그의 예술 세계와 교감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마련됐다.
이는 생존 작가의 이름을 걸고 지은 국내 최초의 문학관으로, 작가 이외수 인생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소장품을 비롯해 책, 그림, 시 등이 전시되어 있다.
아울러, 현재 문학관 아래에는 ‘오감 체험장’ 오픈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결코 세상에 순종할 수 없는 그의 작품 세계

문학관에 들어서자 녹슨 철문 하나와 마주했다.
춘천 교도소 철문 납품업체에 가서 그의 아내가 직접 공수해온 것이란다.
이외수 선생은 스스로 집필실에 이 철문을 달고 자신을 ‘글 감옥’에 가뒀다.
9년 동안 그곳에 갇혀 쓴 소설 ‘벽오금학도’와 ‘황금 비늘’은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그리고 그의 작가 인생은 철장 속에 갇히기 전과 후로 나뉘게 됐다.
긴 통로를 따라 걸어가니 이외수 작가의 일대기를 살펴볼 수 있는 사진들이 전시돼있었다.
그가 살아온 인생은 유독 고달픈 사연이 가득하다.
그의 생모는 그가 두 살 때 돌아가셨고, 부친은 그가 다섯 살 무렵 6·25에 참전하시게 되었기에 이외수 작가는 할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이외수 작가는 할머니와 동냥을 하며 가난한 유년기를 보냈다.
그 후 춘천교대에 진학해서도 경제적인 가난은 계속 됐다. 그가 작가로 등단한 계기도 이 지독한 가난과 연결된다.
밀린 방세를 갚기 위해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해 수상을 하면서 등단하게 됐다.
산 속에서 문장 공부를 하고 3년 뒤에 중앙 문단에 데뷔했고, 강원일보 기자 생활, 학원 강사 등을 거쳐 전업 작가 길을 걸었다.

그가 살아온 발자취를 살펴보고 나니 그가 집필한 책의 초판본 100여 권이 그의 문학 세계로 안내했다.
베스트셀러 작가답게 이미 세상에 회자된 친숙한 책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책들 왼편으로는 그의 예술 세계를 엿볼 수 있는 다양한 그림 작품들이 전시돼있었다.
화가가 꿈이었던 그가 젊은 시절에 틈틈이 그려온 그림들로, 문학관 개관을 기념해 공식적으로는 처음 공개한 작품들이다.
그 중 나무젓가락을 소재로 만든 창작물들은 ‘라면 하나로 5일을 버텼던 시절’을 생각하며 만든 작품들이라고 한다.
맞은편에는 언뜻 봐서 유화 같은 그림들이 한 쪽 벽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 그림들은 알고 보면 크레파스를 으깨서 그린,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창작한 작품들이다.
그림에는 따로 제목이 없었는데, 보는 이가 자유롭게 느낄 수 있도록 상상의 여지를 남겨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또한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서, 문학관에 울려 퍼지는 배경음악들을 모두 그가 직접 작곡하였다.

쓰러질 때마다 일어서면 그만

그 밖에도 전시관에는 그가 그린 미술작품들, 그의 집필 인생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육필 원고들,
그가 집필에 사용했던 만년필, 타자기, 맥 컴퓨터 등 집필 도구들까지 낱낱이 만나볼 수 있었다.
또한 그 옆에는 캘리그래피가 적혀있었는데, 이 글씨체는 ‘이외수 목저(木箸)체’라는 폰트로 제작돼있는 것으로
이름처럼 ‘나무젓가락으로 먹을 찍어서 쓴 글씨’라는 의미다.

전시관을 둘러본 후 중정으로 나갔다. 화천의 맑디맑은 하늘이 문학관의 천장이 되는 곳으로,
문학관을 건축한 조병수 박사의 설계 의도를 짐작케 하는 공간이었다.
‘집으로 시를 쓰는 건축가’ 조병수 박사는 작가 이외수의 소설 벽오금학도를 감명 깊게 읽고
영감을 얻어 학이 승천하는 형상으로 공간을 설계했다고 한다.
다시 내부로 들어와 마지막 통로로 들어섰다.
작가 이외수의 모토인 ‘쓰는 이의 고통이 읽는 이의 행복이 될 때까지’ 라는 글귀가 적힌 벽이 나왔다.
원고지 한 칸 한 칸 글을 써내려가는 일이 농부가 밭을 일구는 땀과 노력, 즉 고통과 같다는 작가 이외수의 철학이 담긴 말이었다.

그는 지난해 갑작스런 위암 판정을 받아 힘겨운 수술, 그리고 기나긴 터널과도 같은 항암치료를 존버 정신으로 극복, 마침내 건강을 되찾았다.
이후 다시 작품 활동을 재개해 최근에 신간 ‘자뻑은 나의 힘’을 세상에 선보임으로써 그의 건재함을 전국 방방곡곡에 과시한 터미네이터 작가 이외수.
그는 자신이 쓴 책 제목처럼 ‘쓰러질 때마다 일어서면 그만’임을 몸소 보여줬다.

이외수 선생이 ‘트통령’이라 불리는 이유는 그의 말과 글이 삭막해진 세상에 지친 이들에게 단비 같은 힘이 되기 때문이다.
이 겨울, 건조해진 감성을 촉촉이, 무른 마음을 단단히 하고 싶다면 이외수 선생이 전하는 위로와 희망이 가득한 감성마을로 떠나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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