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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vol.30 2015.01.09
스페이스
마지막 여름의 잔상들

뜨겁게 치달았던 여름의 절정도 어느덧 멀어져가고 있다.
불과 3개월 후에 지금이 그리워질 것을 생각하면 이대로 여름을 보내줄 수 없다.
그래서 여름의 끝자락, 초록빛 낭만을 찾아 남도의 낙원 ‘담양’으로 달려갔다.

연간 5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방문하는 대표 생태도시 전라남도 담양.
그 중에서도 4월에 전남산림문화자산 1호로 지정된데 이어
최근 국가산림문화자산 ‘제2015-0001호’로 지정 고시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매년 ‘여름에 꼭 한 번 걷고 싶은 길’ 리스트에 빠지지 않는 곳이다.
담양에서 보낸 마지막 여름, 낙원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림보다 더 그림 같은 길

전남 담양은 전국 대나무 면적의 35%를 차지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대나무 산지로서 자연·생태·문화가 결합된 대표 여름 휴가지다.
서해안 외곽 고속도로를 막힘없이 달려 담양에 도착했을 때, 군은 다음 달 17일부터 50일 동안 열리는 담양세계대나무박람회 준비로 한창이었다.

담양에서 순창으로 넘어가는 24번 국도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이 길은 꿈의 드라이브 코스로도 유명하다.
메타세쿼이아는 미국에서 자생하는 ‘세쿼이아’ 나무 이후(meta)에 등장한 나무라는 뜻이다.
이 길은 2000년 담양-순창 간 4차선 도로확장 공사에 따른 벌목 위기와 훼손의 위기에 처했다가
담양가로수사랑군민연대와 지역 군민들의 자생적 보존운동을 통해 지켜질 수 있었다.
이렇게 담양군민들이 지켜낸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영화 촬영지, CF 명소로도 각광받기 시작했다.
2002년 산림청과 ‘생명의 숲’이 주관한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거리숲 부문 대상을 수상,
2006년 건설교통부 주관 「전국의 아름다운 도로 100선」에 선정,
2007년 한국도로교통협회 주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최우수상에 선정되면서 자타공인 명품 숲길이 되었다.

초록빛 나무 터널, 길이 시작되는 곳에서부터 걸음을 아꼈다. 느린 걸음으로 작게 걸었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난 곧은 나무들이 조형미를 뽐내고 있었다.
때마침 여름 햇살이 비춰 반짝이는 나뭇잎들은 마치 초록의 크리스탈 샹들리에를 연상케 했고,
나무 밑에 핀 맥문동 꽃들은 보랏빛 꽃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산책하는 연인들과 가족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학생들은 여름의 청량감과 싱그러움에 푹 빠진 표정들이었다.
여름을 걷고 있는 이 순간, 이 풍경을 카메라가 아닌 머리와 가슴으로 찍었다.

프로방스보다 더 프로방스 같은 마을

메타세쿼이아 길을 한 바퀴 돌고, 도로 건너편에 있는 ‘메타프로방스’로 향했다.
아치형 성문을 건너 마을에 들어선 순간, 눈앞에 펼쳐진 이국적인 풍경에 설렘지수가 급상승했다.
메타프로방스는 메타세쿼이아의 '메타'와 프랑스 휴양도시 '프로방스'를 합친 말로
‘담양 속 작은 유럽’이라는 테마형 관광단지다.
7월에 문을 열자마자 SNS에서 먼저 입소문을 타면서 담양의 또 다른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프랑스관광청 프레데릭 땅봉 한국지사장은 “프로방스를 가봐야 프랑스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프로방스는 프랑스의 속살을 볼 수 있는 지역으로,
지중해를 곁에 둔 프랑스 남동부 지역을 일컫는다.
작열하는 태양,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과 라벤더밭, 예술가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골목과 거리들···.
특히 이 소도시는 여름이 되면 그 아름다움이 극에 달한다.
이런 이유로 프로방스는 예술가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감각과 느낌, 색채의 고장이며 원초적 자연 세계의 피조물들의 표본이 된 곳,
메타프로방스는 예술적 감수성이 뛰어난 프로방스의 축소판이었다.

광장 이정표를 따라 카페거리에 들어섰다.
한 쪽 담벼락에는 트릭 아트 갤러리가 꾸며져 있었는데, 프로방스가 낳은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빛과 색채의 마법에 걸린 알록달록 창문과 지붕, 꽃과 나무들로 아담하게 장식된 아뜰리에,
독특하고 감각적인 벽화와 조각상들까지 마을 구석구석이 모두 한 편의 동화였다.

낙원보다 더 낙원 같은 순간

트릭 아트 갤러리 맞은편에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모여 있었고, 수제 공예품 공방과
니치 향수 가게, 소품 가게 등 프로방스풍의 로맨틱한 감성을 자극하는 상점들이 줄지어 있었다.
아직 일부만 개장한 상태로 마을 전체가 완공되면 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예술인촌도 들어선다고 한다.

돌바닥을 또각또각 걸으며 마을을 거닐다가, 그늘진 골목 계단에 주저앉아서 젤라또를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이렇게 앉아 있으니 정말 지구 반바퀴를 돌아 유럽을 누비고 다녔던 여행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메타프로방스는 타임머신처럼 기억 저편에 있던 아득한 추억들로 데려다주었다.
한참 생각에 잠겨 있다가 하루해가 기울어져 갈 무렵, 천천히 마을을 걸어나왔다.
담양에서 보낸 마지막 여름날 또한 한동안 잊지 못 할 아련한 한 조각이 될 것 같다.

또 한 번 계절이 바뀌고 있다.
흐르는 시간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카르페 디엠(Carpe diem : 현재를 잡아라, 현재를 즐겨라) 뿐.
여름이 머물다 간 자리에 남은 기억과 잔상들을 생각해보면 꿈같은 조각들이 있을 것이다.
낙원은 늘 순간 속에 존재한다.
일단 여름이 가기 전에 낙원으로 초대하는 담양에 들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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