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navigation

ENGLISH   vol.30 2015.01.09
인터뷰
위대한 이상을 품은 리얼리스트가 되자

최초의 국산 교환기 TDX, 세계 최초의 CDMA 이동통신, 세계 표준 3G 이동통신 IMT-2000,
새로운 서비스 패러다임 4G, 한국이 제안한 휴대인터넷 WiBro , LTE로 변화된 4G HMM.

지금의 ICT강국 대한민국을 있게 한 ‘신의 한 수’들이다.
우리나라의 척박한 통신판에서 초강수들을 두며 통신 역사를 개척한 한기철 전 이동통신연구소장.

“ETRI의 정체성은 기술 개발과 상용화 업적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연구가
무엇이 새롭고, 감동적인지 매 순간 느껴야 혁신을 이뤄, 세상을 놀라게 할 수 있습니다.“
한기철 소장의 단호하지만 진심어린 말에 묻어나는 연구자로서의 신념과 철학은 어느 젊은 공학도의 열정보다도 강렬했다.
무모 할 만큼 원대한 꿈을 꾸되, 날선 현실감각으로 자신의 역량을 모두 쏟아 부어서 연구자로서 정점을 찍고 내려온 그를 만나보자.

안녕하세요, 전 이동통신연구소장 한기철입니다.

작년 정년퇴임 후, 현재 ETRI 초빙 연구원으로 주 2일 출근하고 있습니다.
전임소장, 현직 연구원들과 모여 미래기술을 함께 연구하는 ‘새로운 통신사랑 모임’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월 1회 세미나 발표와 미래 근접 통신 서비스 발전 방향 연구도 하면서 지냅니다.

과학자를 꿈꾸던 소년이 ICT신화의 산 역사가 되기까지

어릴 적 제 방에 ‘Han's Laboratory'라고 써서 걸어놓았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확고했던 꿈이 제 외길인생이 된 셈이죠. 1977년 3월 지금 ETRI 전신이며 KIST 부설 한국전자통신연구소에 창설 1기 연구원으로 입사했습니다. 연구원 2년 차 여름, 벨기에로 교육 훈련을 위한 6개월 출장을 갔었는데, 그 때 선진국의 기능직 인력들에게 종일 강의를 들으며 ’언젠가는 이들에게 우리 기술을 자랑할 수 있게 만들자! 세계 속의 기술자로 성장할 것이다.‘라고 마음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으로 와서 1984년 선임연구원 때, TDX 디지털전전자교환기를 개발하고 시스템을 상용화했습니다. ICT 후발 주자인 우리나라가 자체적으로 교환기를 만들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때죠. 그 후 1993년 이동통신계통연구부장 시절, 우리나라가 실질적인 ICT 강국으로 일어서는 데 기폭제가 된 CDMA를 개발했습니다. 이때를 기점으로 대한민국이 이동통신 단말기 및 시스템 등 장비 전량 수입국가에서 수출국가로 탈바꿈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계 최초로 CDMA 이동통신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ETRI가 미국의 원천 특허 기술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제조업체로서 기술료를 지불해야만 한다는 것이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IMT-2000 시스템을 개발하면서는 어떤 기술이 원천 기반 기술이 되는지 그 고민부터 시작하여 핵심 기술 및 표준화 관련 특허 기술 확보에 주력했습니다. 이 연구 결과로 얻어진 OCQPSK·AiSMA 등의 우리 특허 기술로 ETRI가 애플과 노키아를 비롯한 해외 선진 제조사로부터 수백억 원의 기술료 수익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미국의 특허로 CDMA를 개발하여 퀄컴에 막대한 로얄티를 지불하게 했다는 원망에서 자유로워졌습니다.

그 후, 2002년 이동통신연구소장으로 발령받아 4G 이동통신 연구를 총괄하게 되었습니다.
이때가 연구 방향과 내용을 결정하는 원론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가장 크게 고민했던 시기입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안전한 Multi-Carrier CDMA가 아니라 미지의 2.3기가 밴드에 와이브로를 접목시킨 OFDM(Orthogonal Frequency Division Mutiplexing)이었습니다. 최종 선택을 하기까지 서비스 패러다임의 변화, 연구 방향의 타당성 및 서비스 상용화 가능성을 입증하고 연구원들에게 비전을 보여주며 동의를 얻어내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동안에는 통신 기술의 후발 주자로서 앞서 있는 선진국들의 기술을 보며 열심히 쫓기만 했다면, 이제는 세계 1등 주자의 또 다른 새로운 고민들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은 우리에게 연구 목표를 잘 모르겠다는 어려움과 두려움을 주었지만, 동시에 우리가 세계 최고로 앞서 있다는 자신감도 갖게 했습니다. 그렇게 연구소에 들어온 지 25년 만에 정말 백지상태에서 시작하는 창의적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과감히 택한 OFDM은 가장 큰 혁신이 되었고, 4세대통신 및 WiBro 개발 성공 성과를 낳았습니다.
이 경험으로 얻게 된 교훈은 리더로서 기술적 비전과 신념, 창의적 아이디어를 팀원들과 공유하고, 의견을 모아 목표를 분명히 하는 것은 가장 어려우면서도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연구과제의 바른 선택과 도전이 팀의 성패를 가르기 때문입니다.

연구는 분야만 주어진 것, 한계가 주어진 것은 아니다

최고를 향해 지치지 않고 도전하고 시도하며, 굵직한 성공 성과들로 연결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신념과 의지입니다. 아시다시피 과학기술의 세계 자체가 두뇌 집단입니다. 이 가운데, 결국 성공을 결정하는 것은 단순한 의욕이나 열정이 아니라 무슨 일이 있어도 이뤄내겠다는 집념입니다. 통찰력과 선견지명은 상식적인 차원에서 벗어날 때가 많습니다. 물론 상식적인 견해라면 반대의견이 나오지 않겠지만, 그래서는 혁신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CDMA 이동통신 기술 개발 과정에서 고난과 어려움이 컸던 이유는, CDMA를 비판하는 대중적 학자와 단편적 전문가들이 너무 많았고, 국가 경쟁력보다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는 통신 사업자 대표들, 협조와 격려보다 비판하기 좋아하는 언론인과 정치인들도 많았습니다. 개발 관리 조직인 사업관리단이 제왕적으로 군림하고, 표준과 공통적 기술 개발보다 개별적 특화를 지향하는 제조업체까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비난들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목표한 연구를 추진 할 수 있었던 것은 변화의 물살이 큰 ICT에서 안주하는 순간 살아남을 수 없고, 세계적으로 우리가 기술을 선도하겠다는 꿈이 확실했기 때문입니다. 원대한 지향점은 환경과 제약을 뛰어넘고, 위대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잠재력과 파급력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시끄럽고 잡음 많은 연구 사업이 ICT계의 획을 긋는 기술 개발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이 기술 가치를 인정하고 용감하게 연구 개발 사업을 만들어낸 연구원들의 힘과 지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거대한 영향력을 가진 공학도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살아남기 위해 생각이 변해야 합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연구의 본질과 연구원의 사명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연구원은 연구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변화를 이끌어 내야합니다. 값어치 있는 일과 발전 방향에 맞는 새로운 일을 선택하여 필요한 연구를 하고, 최고의 성과를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격동하는 변화의 시류를 읽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열심히 수행하고 좋은 평가점수를 받은 연구 결과들이 무용지물이 된 적이 많습니다. 이런 경험을 겪고 나서 좋은 연구 결과를 몰라주고 상용화 하지 않았다고 정부나 기업체 등에게 화살을 돌리는 경우를 종종 봤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고 싶은 연구를 열심히 하는 것보다 세상이 요구하고 필요로 하는 연구에 초점을 맞춰서 쓸모 있는 창의적 연구 목표를 잡고, 창조적 문제 해결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연구 기술이 상용화에 성공 할 수 있도록 연구 과정에서 치밀하게 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과제가 없고 예산전용이 안 된다는 이유들로 나약한 마음을 갖고, 눈앞의 단편적 연구 수행을 하면서 생계형 연구원으로 머무르지 않길 바랍니다. 한 시대의 연구 개발자로서 자랑스러운 연구 업적으로 보여주는 창조형 연구 리더로 비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한 방랑자의 목적이 이끄는 삶

퇴임 후부터는 제 삶의 모토인 ‘Happy Wander'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치 있는 일을 찾아서 여행하듯 사는 것이 제 인생 2막의 지표입니다. 매달 장애인들 목욕을 시켜주는 봉사활동을 10여 년 넘게 해오고 있는데, 그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참 즐겁고 기분 좋습니다. 또 대전역 부근 쪽방 촌 노인들에게 도시락을 만들어다 주는 일도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외로운 노인들의 이야기를 사진에 담아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 보고자 계획 중입니다. 대자연을 만끽하거나 아름다운 건축물을 감상 할 수 있는 여행을 좋아하기 때문에 세상을 유랑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큽니다.
왕성한 지적 호기심도 많은 편 입니다. 특히 서양 역사 유물을 잘 살펴보기 위해, ‘마지막 지식’이라는 명제로 서양 미술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신학공부와 함께 미술 역사학을 공부하면서, 철학과 인문학 공부로 자연스럽게 확장해나가는 중입니다.

창조적 혁신으로 새로운 세계를 깨울 후배 연구원 여러분,
누구보다 여러분의 고뇌와 마음을 잘 이해하는 한 사람으로서 가까이서 항상 응원하고, 격려를 아끼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