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들의 지상낙원 '금강하구'
“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 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大處)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군산에서 태어난 근대문학의 거장 백릉 채만식 선생은 <탁류>의 첫 대목을 이렇게 시작한다. 전북 장수군 뜬봉샘에서 발원한 금강은 충남으로 흘러들어 백제의 옛 도읍 공주와 부여를 거치는 천리 길의 여행을 마치고 군산 금강하구에 도달한다.
숱한 역사와 애환을 담은 강줄기가 바다와 만나는 곳. 금강하구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간직한 생물자원의 보고이다. 천수만, 주남 저수지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철새도래지 중 하나인 금강하구에는 해마다 겨울이면 국제적 보호종인 가창오리를 비롯해 혹부리오리, 쇠기러기, 붉은부리갈매기, 청둥오리, 큰고니, 재갈매기, 검은머리물떼새 등 각종 희귀조류 50여종 80여만 마리의 철새들이 너른 평야와 갈대밭을 가득 메워 장관을 이룬다.
철새를 관찰하기 좋은 장소로 금강철새조망대와 인근 성산지구 야외학습장, 나포십자들, 그리고 우곡제를 꼽을 수 있는데, 먼저 금강철새조망대에서 현재 조류종별 관찰가능 장소를 확인한 뒤 본격적인 탐조에 나서는 것이 좋다. 금강철새조망대는 국내 최대의 생태학습 시설로, 금강 일대의 철새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조망대와 함께 야생의 생태환경을 그대로 간직한 금강공원, 철새신체탐험관, 부화체험관 등의 시설을 고루 갖추어, 철새들의 다양한 종류와 특징을 조목조목 학습할 수 있다.
지키고 누리는 생태환경, 군산세계철새축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자연생태축제인 군산세계철새축제는 금강하구의 아름다운 자연과 철새를 탐방하고 다양한 생태체험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운 동행’을 테마로 열린 이번 축제는 이벤트성 프로그램을 탈피해 새가 주인공인 프로그램들이 마련됐다. 철새 스템프 릴레이 · 솟대 만들기 · 철새 그림그리기 대회 · 철새 종이비행기 날리기 대회 · 앵무새 모이주기 · 철새 사진 콘테스트 · 철새 런닝맨 등 새를 주제로 다양한 체험 이벤트가 진행됐으며, 철새병원과 철새도서관이 상설 운영됐다.
축제의 메인 프로그램은 역시 탐조투어였다. 관람객들은 도보여행과 자전거여행, 버스여행 3가지 코스로 진행된 탐조투어를 통해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철새를 눈앞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탐조투어는 철새조망대에서 출발해 조류관찰소와 나포탐조회랑, 나포십자들 등을 돌아보는 코스로 진행되었으며, 특히 나포십자들에는 흑두루미 수십 마리와 가창오리 2천여 마리 등 총 1만여 마리의 철새들이 몰려들어 일대에 장관을 연출했다. 흑두루미는 ‘천연기념물 제228호’이자 ‘멸종위기야생동식물 II급’으로, 올해처럼 수십 마리가 무리로 찾아온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일몰 시간에는 가창오리가 주인공이었다. 오후 5시 쯤이 되자 제방을 따라 삼각대들이 줄지어 설치됐다. 30분 정도 지나자 가창오리들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일순간 2천여 마리가 수면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노을이 번진 저녁하늘 위에 가창오리들이 그려내는 한 폭의 그림이 황홀하기만 하다. 한동안 멋진 공연을 펼친 가창오리들이 산 너머로 모습을 감추자 여기저기서 아쉬움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군무가 끝나자 촬영장비를 챙겨 하나 둘씩 자리를 떴지만 아쉬운 마음에 저녁이 될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도 있었다.
새벽에는 대명리에 있는 저수지 '우곡제'로 사람들이 몰렸다. 밤새 저수지 수풀 속에서 휴식을 취한 고니들이 먹이를 찾아 날아오르는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서였다. 물가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십여 마리의 고니들이 퍼드덕 퍼드덕 날갯짓을 하며 날아올라 새벽하늘을 신비롭게 수놓았다. 날이 밝기 전부터 서릿발 속에서 추위를 견딘 보람이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해물칼국수군산세계철새축제의 모든 프로그램들은 사람이 아닌 철새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런 만큼 사람들에게는 기다림과 인내의 자세가 필요하다. 하지만 인근 군산의 명소들을 둘러보거나 맛집을 찾아 별미를 즐기다보면 지루할 새가 없다. 금강철새조망대에서 차로 3분 거리의 음식타운에는 해물칼국수 음식점들이 줄지어 있다. 열무김치, 무생채와 비벼 먹는 보리밥과 해물이 듬뿍 들어간 칼국수가 함께 나오는데, 진한 육수에 해물이 가득해 개운하면서도 시원하다. 고기와 야채로 속이 꽉 찬 왕만두, 흰찰쌀보리로 반죽한 쫄깃한 면발의 칼국수도 맛이 일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