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 정든 ETRI
안녕하십니까? 충남 천안 호서대학교 디지털기술경영학과에서 후진을 양성하고 있는 조상섭입니다. 우리나라 ICT 발전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시는 원장님과 연구원들에게 이 자리 빌어 인사드립니다.
저는 2006년에 정든 ETRI를 떠나 호서대학교에 몸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서도 ETRI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경영을 전공한 저로서는 ETRI에서 체득한 ICT 지식이 온전히 교육자산이 된 셈입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ICT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저에게 ETRI는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했던 지적 고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본에 충실한 교육 실천하고파
대학교수는 크게 두 종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연구형 교육자와 교육형 연구자로 분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단적으로 구분하자면 저는 전자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통상적으로 연구원 출신이 대부분 연구형 교육자들입니다. 이는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교육적 동기와 내용물을 얻기 때문입니다. 기술기반 경영에 대해 가르치려면 기술을 잘 이해해야만 하며, 경험이 풍부해야만 학생들에게 보다 현실적인 지식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이론과 실제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ETRI를 떠나 교육현장에서 느낀 점은 우리나라 교육이 기본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너무 쉽게 습득하는 데 익숙해 있습니다. 이러한 교육습관은 우리나라 교육이 성과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 하나의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육에서 그 과정은 길고, 성과는 한 순간일 뿐입니다. 학생들의 이러한 교육습관을 바로잡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육자로서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긴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인식시켜주는 데 보람을 느낍니다.
소중한 시간들, 귀중한 친구들
제가 처음 ETRI에서 수행했던 연구는 인터넷 초고속망 구축사업으로, 당시 매우 촉망받는 정부 사업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연구로는 IT839 전략 사업입니다. IT839 전략은 국가 IT 산업의 신성장 동력을 뒷받침하기 위한 전략으로, ETRI가 기술개발 뿐 아니라, 사업 전반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저는 약 2년 간 기술정책 주무 팀장을 맡아 본 사업에 참여했는데, 본 사업을 통해 기술기획에서 모니터링까지 기술정책의 전 주기를 연구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고생도 많았고 부담도 컸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 때 같이 했던 팀원들은 아직도 귀중한 친구들로 남아 있습니다.
특별히 흥미로운 에피소드는 없지만, 직장동료들과 퇴근 후 술 한 잔 하며 서로를 격려하던 기억들이 많이 있습니다. 추진하는 연구들이 너무 힘들어 술로 회포를 푼 때가 많았는데, ETRI 조직이나 선배를 안주삼아 술을 먹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 ETRI만큼 좋은 조직도 없을 것입니다.
2004년 3월 어느날, 폭설이 내리는 줄도 모르고 밤새 연구하다 아침에 2시간을 걸어서 귀가했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 때 ETRI 원내의 설경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웠습니다.
연구자에게 유익한 두 권의 책
먼저 최근 많이 회자되고 있는 책으로 ‘The Second Machine Age(에릭 브린율프슨 외, 2014)’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ICT성과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기술과 경제 및 사회에 대한 최근 연구를 집약하고 있으며, ICT가 우리 생활에 미친 영향을 전체적으로 평가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The Nature of Technology(브라이언 아더, 2009)’는 기술의 속성에 대하여 폭넓게 서술해 놓은 책으로, 기술을 본질적으로 연구하는 분들에게 유익할 것입니다. 즉, 기술의 성과에 비해 등한시되는 기술의 속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시간이 있을 때마다 리만 가설에 대한 책들을 흥미롭게 읽고 있습니다. 풀리지 않은 문제, 그리고 풀릴 것 같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안한 수학적 도구에 관심이 있으며, 이를 사회과학 분야에 적용하고자 노력합니다. 이에 관련된 수학적 도구들이 인간노력의 최고봉이 아닐까 합니다.
ETRI에 바라는 점과 앞으로의 계획
ETRI는 기술사업화의 첨단을 달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희 교육자들이 배워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기술사업화라는 큰 틀에서 보면, ETRI가 우리나라 기술사업화의 플랫폼역할을 감당해야 하며, 더욱이 그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봅니다. 즉 ETRI는 기술개발과 기술사업화라는 두 가지 방면의 영역에서 플랫폼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우리나라 기술사업화의 영역에서 큰 힘을 발휘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 플랫폼전략은 ETRI에게도 실질적으로 큰 이득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 인생은 너무 짧고, 갈 길은 아직 멀어서 그저 순간순간 성실히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시간을 내어 책 한권을 쓸 계획입니다. 정보통신에 근간하여 한국경제구조를 광범위하게 다뤄보고 싶습니다.
그동안에 수행했던 연구들 가운데 몇 가지를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틈틈이 ETRI 지인들과 만나서 술 한 잔 하면서 지내면 좋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