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암 최익현 선생의 덕(德)을 흠모하는 곳
모덕사(慕德祠)라는 이름을 들어보면 ‘절인가?’라는 의문을 먼저 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모덕사는 조선말기 대학자이며, 의병장으로 나라를 구하고자 살신성인한 면암 최익현 선생이 거주했던 집이자,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사당이다. 이 사당의 이름은 고종황제가 선생에게 내린 글들 가운데 <면암의 덕을 흠모한다>라는 구절에서 ‘모(慕)’와 ‘덕(德)’자를 따와 지어졌다.
사당이긴 하나 선생이 살던 고택과 함께 어우러져 있어 금방이라도 집주인이 버선발을 신고 뛰어나올 것 같다. 고택 뒤에는 여러 개의 항아리도 놓여있어 더욱 더 그런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마당은 후대에 현대식으로 새로 만들어진 돌길과 자갈길로 예스러움이 덜하지만 선생의 숭고함을 기리기 위한 후손들의 손길이 느껴진다. 한가로이 선생의 넋을 기리며 둘러보고 있는데, 모덕사 오덕환 해설사가 선생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냈다.
“면암 최익현 선생은 불의를 참지 못하는 분이셨어요. 대원군의 정책을 반대하시며 상소문도 여러 차례 올리고 흑산도에 유배되기도 하셨답니다. 또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을사 5적을 처단할 것을 주장하셨으며, 같은 해 일본의 만행에 항쟁하며 의병을 모집하시고 일본군과도 싸우셨어요. 결국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대마도에 유배되었지요. 이때 일본 땅은 밟기도 싫다고 하셔서 버선 속에 우리나라 흙을 넣어가셨고, 양동이에는 물을 담아가셨어요. 결국 왜놈이 주는 물과 밥은 먹을 수 없다며 단식하시다가 끝내 순국하셨죠.”
최익현 선생의 기강은 관리사무소를 지나면 보이는 건물인 ‘대의관(大義館)’에서 한 번 더 느낄 수 있다. 선생의 생전과 사후의 유품이 전시되고 있는 곳으로 문방구를 비롯한 소품과 교지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대마도 감옥에서 고종황제께 마지막으로 올린 유소문이 소개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나라를 지키고자 살신성인한 선생의 면모가 엿보인다.
"바라옵건데 폐하께서는 나라일이 할 수 없이 되었다고 속단마시고, 큰 뜻을 더욱 굳게하시고, 과감하게 용진하여 원수 왜놈들에게 당한 치욕을 되새겨 실속없는 형식을 믿지 마시고, 놈들의 무도한 위협을 겁내지 마시고, 간사한 무리들의 아첨을 듣지 마시고 힘써 자주체제를 마련하여 길이 의뢰하는 마음을 버리고 더욱 와신상담의 뜻을 굳게하여 실력양성에 힘써서 영재를 등용하고 (중략….) 신이 죽는 마당에 이르러 정신없는 소리를 지껄인다고 속단마시고 더욱 보중하시기를 지하에서 손꼽아 비나이다."
유유히 흐르는 호수 위로 아찔한 다리 하나
칠갑산 동쪽 끝자락에 위치하는 정산면에는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천장호’와 그 위에 세워진 ‘출렁다리’가 있다. 건너는 사람들에게 아찔함을 선사하는 출렁다리는 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되어 청양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이 다리는 천장호와 칠갑산 주봉을 연결하는 207m 길이의 다리로, 국내에서는 가장 길고 아시아에서는 일본 오이타현의 고공현수교(370m)에 이어 두 번째로 길다. 특히 다리 중심부로 갈수록 출렁거림을 잘 느낄 수 있어 놀이기구를 타는 듯한 짜릿함도 맛볼 수 있다.
천장호 입구에서 출렁다리로 가는 길목에 정갈하게 조성된 산책로가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출렁다리와 비교해 무척이나 소박한 공간이지만, 방문객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더위를 식히기 적당한 곳이다. 그래서인지, 더위에 지친 방문객들은 평상에 편안하게 누워 쉬거나, 군데군데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 간간히 불어오는 호수바람을 쏘이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청양고추’라는 명성에 걸맞게 멀리에서부터 커다란 고추와 구기자 조형물이 나란히 방문객들을 반기고 있다. 멀리서부터 우뚝 서 있는 모습이 “어서 빨리 만나러 오세요.” 손짓하는 것 같다. 조형물 앞에 다다르자 여러 명의 관광객들이 “세계에서 제일 큰 고추와 구기자래!” 라며 마냥 신기한 듯 올려다 보았다. 다리위로 들어서니, 6월의 햇살에 반짝이는 호수가 아름답다. 다리의 중심부에 다다르자 출렁다리라는 이름에 걸맞게 심하게 출렁거렸고 사람들은 아찔함을 감출 수 없었다.
장곡사로 가는 아름다운 길천장호수에서 장곡사로 향하는 도중에 뜻밖의 길을 만났다. 단순한 길목이라고 생각했는데,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곳이라고 한다. 때마침 도로 표지판에 ‘한국의 아름다운 길’ 이정표를 발견, 그야말로 ‘유레카!’였다. 굽이굽이 이어진 길의 가로수들은 모두 벚나무로, 지난봄에 사람들이 벚꽃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걸었을 그 길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여전히 자신의 생명력을 자랑하는 벚나무들이 자기들끼리 초록의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장곡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입구까지 걸어가기로 마음먹었다. 벚나무와 은행나무가 한데 섞여 있는 길이었다. 10분 남짓 길을 따라 올라가니 장곡사에 도착했다. 칠갑산 남쪽 기슭 경사지에 자리잡은 장곡사는 규모는 작으나, 상(上)·하(下) 두 개의 대웅전을 가지고 있는 특이한 사찰이다. 정확한 기록이 없어 언제, 어떤 이유로 두 개의 대웅전이 들어섰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기도의 효험이 뛰어나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들을 수용할 공간을 늘리다 보니 대웅전 하나를 더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뿐이다. 뿐만 아니라, 장곡사는 두 개의 국보, 네 개의 보물을 간직하고 있어 문화재가 많은 사찰로 유명하다. 그것들은 국보 제58호 철조약사여래좌상 및 석조대좌, 국보 제300호 장곡사미륵불괘불탱, 보물 제162호, 181호 상·하대웅전, 보물 제174호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및 석조대좌, 보물 제337호 금동약사여래좌상이다.
상 대웅전까지 둘러보고 장곡사 마당으로 내려오니, 고양이 한 마리가 배를 깔고 누워있다. 절에 사는 고양이답지 않게 이름은 ‘망고’이다. 사람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반기고 있는 모양새가 이 절의 터줏대감인 모양이다.
푸를 ‘청(靑)’ 볕 ‘양(陽)’ 의 한자어를 지닌 청양은, 그 이름처럼 푸르고 볕이 가득한 곳이었다. 고즈넉한 길은 정겨운 고향의 얼굴로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칠갑산의 푸르름이 역사, 문화와 함께 절묘하게 어우러진 청양은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