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강국의 자존심 살린 토종 레이더 기술조선시대 이순신 장군에 의해 만들어진 거북선은 세계 최초의 철갑선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뾰족한 철침에서부터 불을 내뿜는 용머리까지 모두 이순신 장군의 지휘아래 조선의 수군(水軍)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렇게 탄생된 거북선은 임진왜란의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해낸다.
한국이 세계 최고의 조선강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뛰어난 설계·건조능력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전 세계의 바다를 누비는 대형 선박의 약 40%정도가 한국에서 만들어졌다. 조선업의 성장은 조선기자재 기술 개발을 유도했고 현재 조선기자재의 국산화율은 70%를 넘어서고 있다.
하지만 선박이 항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통신장비 등 핵심 IT 기자재 등은 여전히 유럽과 일본 제품이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섬이나 암초, 바다 밑에 가라앉은 배 등 바다 위와 아래의 위험물을 탐지해 피해갈 수 있게 해주는 선박용 레이더의 경우 연안어선 등에 사용하는 소형 레이더 장비는 대부분 국산화 됐지만 컨테이너선박, LNG선박과 같은 큰 배에 들어가는 대형 레이더 장비는 모두 외국에서 수입해 사용해왔다.
차세대 방식의 레이더를 개발하다 ETRI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대형 조선사, 중소 IT 기업과 손잡고 ‘선박의 눈’인 레이더를 디지털화 하는데 성공했다. 선박용 디지털레이더 시스템은 고수명에 고해상도, 자체진단(DS) 모니터링 기능까지 갖춘 첨단 제품이다. 기본 수입 레이더의 대체 수준을 넘어 디지털 방식의 차세대 레이더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국산 디지털레이더는 ETRI가 개발한 고출력 반도체 전력증폭기(SSPA: Solid State Power Amplifier)를 사용한다. ETRI가 개발한 SSPA는 높은 전류밀도와 높은 전력밀도, 높은 열전도도 특성을 갖는 질화갈륨 기반의 전력증폭 소자가 사용되었다. 기존의 마그네트론을 사용한 진공관 방식의 레이더에 비해 SSPA를 사용한 디지털레이더는 시스템 소형화를 비롯하여 전력증폭의 고효율화, 탐지 정밀도의 증가 및 시스템 수명연장을 실현시켰다.
기존 수입 레이더에 사용된 출력 소자의 경우 수명이 3,000여 시간에 불과했다. 소자의 수명이 다하면 레이더의 감지기능이 떨어지고, 화면에 나타나는 레이더 영상도 흐릿해져 4~6개월 간격으로 교체해야 했다. 그에 비해 SSPA 방식의 국산 디지털레이더는 감지 대상 식별력이 우수하고, 디지털 신호처리로 우천 시 등 악천후에도 해상도가 뛰어나다. 소모 전력은 낮고 내구성이 뛰어나 출력 소자 교체 주기는 무려 5만 시간(약 5년)에 달한다. 또한 디지털레이더는 악천후에도 10km 밖에 있는 79cm의 소형 물체를 탐지할 정도로 식별력과 해상도가 우수하고, 내비게이션 기능을 보강해 선박의 안전한 항해를 위한 근거리 및 원거리 탑지 능력을 높였다.
한편,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의 소수 선진 반도체기업에서 생산하는 질화갈륨 전력증폭 소자를 전량 수입하여 선박레이더를 개발하던 것을 국내 ETRI로부터 공급받아 새로운 레이더를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매우 크다. 뿐만 아니라, ETRI에서 개발된 질화갈륨 전력증폭 소자는 국방레이더, 우주·항공레이더, 기상레이더, 중계기 및 기지국 등의 통신용 전력증폭기에 응용할 수 있어 타 산업으로의 파급효과 또한 크다.
진정한 조선강국으로 거듭나다 그동안 국내 조선산업은 세계 1위를 유지해오면서도 핵심 기술에 대한 낮은 국산화율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더욱이 중국이 값싼 노동력을 내세워 뒤를 바짝 추격해오고 있는 시점에서 선박용 차세대 레이더 시스템의 개발 성공은 많은 의미를 갖는다. 순수 국산기술로 개발에 성공해 기술독립을 이룬 것은 물론 향후 첨단 산업분야로의 활용을 통한 경제적 산업파급 효과가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는 향해를 위한 핵심기술까지 모두 ‘Made In Korea’인 선박이 전 세계의 대양을 누비는 날이 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