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존재하는 시각장애우들의 가장 큰 불편이자 가장 큰 축복. 시각을 잃었지만 누구보다 밝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이들의 감각은 세계를 다른 방법으로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이 됐다.
시각장애우로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만만한 일이 아니다. 몇 걸음이 멀다하고 도로에는 방지턱이 즐비하며 신호등을 건너려고 해도 색을 알 수 없으니 언제 발걸음을 내디뎌야 할 지 고민이다. 하지만 시각장애우 역시 비장애인이 누리는 편리를 향유할 권리가 있기에 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고민은 과거부터 계속 돼 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 눈앞에 시각장애우들의 삶을 새롭게 안내해 줄 시스템이 등장했다.
눈(眼)으로 접근할 수 없다면 귀(聽)로 접근하자는 발상에서 시작된 연구. ETRI는 지하철역과 보도, 버스정류장 등 시각장애인들이 이 땅의 곳곳을 거침없이 다닐 수 있도록 스마트 안내 시스템을 개발했다. 인간과 로봇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윤호섭 박사팀이 숫자와 기호, 문자와 객체를 자동으로 추출·인식하고 안내해 주는 기술을 만들어낸 것이다.
온 마음으로 응원하는 그들의 홀로서기
기존에도 시각장애우들의 일상생활을 돕기 위한 기술은 존재했다. IC 칩과 식별장치의 무선통신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는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 시스템이 그것으로, IC 칩을 갖고 있는 시각장애우가 접근하면 판독기가 칩을 인식한 후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시각장애우가 지니고 있는 IC 칩이 판독기를 인식하지 못하면 결국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문제점이 있었다. 때문에 곳곳에 식별장치를 설치해야 하는 번거로움에 효율성이 떨어졌고 결국은 시스템이 갖춰져 있음에도 시각장애우들은 맹도견이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이동해야만 했다.
기존의 한계를 보완해 새롭게 등장한 ETRI 스마트 안내 시스템은 시각장애우의 온전한 홀로서기를 돕는다. 별도의 IC 칩이나 식별장치를 필요로 하지 않도록 제작함으로써 기술 활용에서 부딪칠 수 있는 난점을 대폭 줄였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은 다양한 공공장소에서 시각장애우가 걷고 있는 길의 방향과 위치정보, 더불어 탑승해야 할 대중교통 번호를 알려준다. 심지어 만남을 약속한 사람의 정보까지 일러줘 생활의 불편함을 직접적으로 줄였다. 시각장애우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은 채 씩씩하게 홀로 걸어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준 셈이다.
따뜻한 기술이 만드는 기적 같은 이야기
ETRI의 시각정보 스마트 안내 시스템은 시각장애우에게 필요한 정보를 음성으로 즉각 지원한다는 장점이 있다. 이외에도 USB 카메라 두 대를 모자 형태로 장착시켜 사물인식을 명확히 하는 등 기술적으로 다양한 기능을 더해 시스템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시각장애우들의 눈이 되어 보다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각정보 스마트 안내 시스템. 그 기저에는 인간과 기술의 따뜻한 공존을 꿈꾸는 ETRI의 믿음이 깔려 있다. 인간을 위한 착한 기술, ETRI의 기술은 모든 이들의 꿈을 응원하고 가능성을 열어주는 동반자로서 우리 곁에 함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