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을 위한 고대 그리스의 무대
디오니소스 극장
Vol.247 January
인간의 희로애락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이야기가 기반이 된 드라마, 영화, 연극 등을 누린다.
이를 통해 울고 웃으며 위로와 용기를 받기도,
온전한 즐거움을 누리며 휴식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고대의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야기에 울고 웃으며 힘을 얻었다.
다만 한 공간에 모여 작품을 함께 감상할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야외에 극장을 만들어 즐겼다.
그 극장 중 최초의 극장이 있으니, 바로 디오니소스 극장이다.
그리스 아테네에 높이 솟은 아크로폴리스(acropolis)의 남쪽 절벽 아래에는 디오니소스 극장이 있다. 이 극장은 기원전 6세기 술의 신으로 불리는 디오니소스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성주의와 인간중심주의를 상징할 만큼 철학적 공론의 장이었던 아테네이지만, 아테네 사람들은 때때로 춤과 노래, 술로 근심을 내려놓고 새로운 힘을 충전하길 원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디오니소스 축제는 3월 말과 4월 초에 일주일간 성대하게 열렸다.
아테네 시민들과 여성, 노예, 고아, 외국인, 타 도시의 사절단 등 디오니소스 축제는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축제였다.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펼쳐진 메인 이벤트는 연극 경연이었다. 일주일의 축제 기간 중 5일이 연극 공연을 위해 쓰였다. 그중 3일 동안은 비극이 공연됐다. 공연을 보며 사람들은 극의 내용에 야유를 던지기도 하고, 호응하기도 하며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그리스 시민을 울고 웃게 만든 ‘연극’이 바로 이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시작됐다. <오이디푸스왕>, <안티고네> 등으로 유명한 소포클레스의 작품이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공연됐다. 이 외에도 아이스킬로스, 에우리피데스, 아리스토파네스 등 초대 희곡 작가들의 작품이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공연됐다. 귀족들과 왕실의 전유물이었던 연극이 대중화되는 데 영향을 끼친 의미 있는 공간이라 볼 수 있다.
17,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디오니소스 극장은 16,000여 좌석을 구비한 고척 스카이돔과 비슷하고,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의 4배가 넘는 규모를 자랑한다. 초창기에는 목조 구조였으나 수 세기에 걸쳐 개조와 확장을 반복해 석조 건물로 보존됐다. 극장 정면 중앙에는 반원형 무대 오케스트라(orchestra)와 본무대인 스케네(skene)로 구성되어 있고, 이를 둘러싼 관람석(auditorium)이 부채꼴 모양으로 감싸안고 있는 형태다. 관람석은 무대에서부터 점차 경사가 높아지는 계단형이라 모든 관람객이 무대를 볼 수 있게 배치됐다.
이러한 구조는 디오니소스 극장을 시작으로 그리스 전역으로 퍼져 극장 건축의 근간이 됐다. 이중 주목할 것은 음향 효과에 있다. 당시에는 스피커와 마이크와 같은 기계 없이도 소리가 잘 전달됐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무대 중앙에서 동전을 떨어뜨려도 객석의 끝에서 그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이런 현상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계단식 반원형 구조와 오케스트라의 존재, 건축 재료 덕분이었다. 스케네와 객석 중간에 있는 오케스트라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는데, 이것이 공명판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무대에서 발생하는 소리가 이 거대한 공명판을 거쳐 탄력을 얻고, 계단식으로 둘러싸인 관람석이 소리가 퍼지는 확성기의 역할을 하기에 관람객은 자연스럽게 작은 소리도 잘 들을 수 있게 된다.
더불어 석회암과 같은 객석의 돌이 웅성거리는 관객의 저주파를 흡수하는 역할을 해 배경 소음을 줄이는 역할을 했다. 이 외에도 당시 배우들 가면을 쓰고 연기를 했는데, 이 가면 안에 소리를 증폭시키는 장치를 달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현재 디오니소스 극장은 좌석의 일부분만 보존되어 있다. 그래서 현재 공연이 진행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이 있다. 디오니소스 극장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5,000명을 수용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복원이 잘 되어 있어서 매년 6월 예술축제인 에피다우로스 축제가 이곳에서 진행된다. 연극, 오페라, 음악, 무용 등 다채로운 공연을 고대 극장에서 직접 관람할 수 있어 아테네에 방문 시 시기를 잘 맞춰 간다면 특별한 경험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